가족의 영광만 선택? 진짜 필요한 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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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밝힌 가족사가 역사 논쟁으로 번졌다. 하영이 증조부로 소개한 인물이 일제강점기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과거 행적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영광만을 선택해 기억하고, 그 이면의 역사는 모른다고 말해도 되는가.
그러나 조상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물려받은 것을 어디에 사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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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기자]
최근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밝힌 가족사가 역사 논쟁으로 번졌다. 하영이 증조부로 소개한 인물이 일제강점기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과거 행적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소속사는 처음에는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가,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답변했다며 사과했다.
역사적 사실과 책임의 범위는 자료를 통해 엄밀하게 가려져야 한다. 한 사람의 조상이 논란의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후손까지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가문의 성취를 대중 앞에서 자랑스럽게 꺼냈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우리는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영광만을 선택해 기억하고, 그 이면의 역사는 모른다고 말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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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가족을 통해 번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내면풍경 [독서] 일제시대, 우리 가족은 표지 |
| ⓒ 출판사 황소자리 |
책의 중심에는 저자의 아버지 나경석이 있다. 일본에서 화학을 공부한 그는 물산장려운동을 이끌고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그의 누이동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로 불리는 나혜석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저자에게 영어를 가르친 사람은 훗날 친일의 길로 들어선 춘원 이광수였고, 저자의 어머니가 젊은 시절 마음에 품었던 이는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었다.
김성수와 송진우, 김사국과 김약수, 박열, 신익희, 김수임과 박마리아까지 교과서에서 보았던 이름들이 이 책에서는 누군가의 친구와 친척, 스승과 손님으로 등장한다. 거대한 역사가 가족의 식탁과 거실, 병실과 피란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이 책의 미덕은 가족을 영웅으로 꾸미지 않는 데 있다. 저자 나영균은 아버지의 독립운동과 사회 참여를 기록하면서도 그의 좌절과 무력함을 감추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식민지 시대의 선택이 선명한 흑백으로만 나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 제국의 제도 안에서 직책을 맡으면서도 독립운동가의 피신과 무기 반입을 돕는 사람이 있었고, 한때 독립을 외치다가 훗날 일제에 협력한 사람도 있었다.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가 서로 다른 미래를 꿈꾸면서도 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만났다.
우리는 결과를 알고 역사를 읽는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결말을 모른 채 하루하루 선택해야 했다. 그렇다고 모든 선택을 시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같은 억압 속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재산과 지식을 독립운동에 내놓았고, 누군가는 권력에 협력해 지위와 부를 얻었다. 선택의 조건은 복잡했지만 선택의 결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방 뒤의 역사도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 책은 한국전쟁 중 벌어진 국민방위군 사건과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짧게 언급한다. 나라가 풍전등화에 놓인 순간에도 일부 권력자는 국민을 보호하기보다 군수품과 자금을 빼돌렸고, 국가권력은 무고한 국민을 희생 시켰다. 독립운동 경력이 있는 인물과 친일 경력이 있는 인물이 뒤엉킨 해방정국은 우리 역사가 '선한 편과 악한 편'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과거를 심판하는 책이라기보다 기억하는 태도를 묻는 책에 가깝다.
거부할 수 없는 질문
대한민국 헌법 상 조상의 죄는 유전되지 않는다. 연좌제는 없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직업을 포기하거나 사회에서 숨어 살아야 한다는 일부 주장은 대중의 공감을 받지 못한다. 다만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명예와 사회적 자산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려 한다면, 불편한 역사도 함께 살펴야 한다. 영광만 상속받고 책임에 관한 질문은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동안 가족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먼저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단정한 잘못을 인정하고, 공신력 있는 기록과 연구자의 검토를 거쳐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친일 반민족 행위로 형성된 재산이 현재까지 이어졌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사실이 확인된다면 변명보다 피해자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향한 사과가 먼저여야 한다. 이후의 기부나 공익 활동 역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조용히 지속되어야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오는 12월 3일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다시 가동된다. 새 특별법은 친일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뿐 아니라 이를 처분하고 받은 대가까지 국가 귀속 대상으로 명시했다. 물론 후손이 자신의 노동과 경제 활동으로 마련한 모든 재산을 환수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혈연이 아니라 재산의 형성 과정이다. 조상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통해 얻은 재산인지 묻는 것이다.
<일제시대, 우리 가족은>이 출간된 지 1년이 지났고 올해 광복절도 지나갔다. 그러나 이 책을 들춰볼 수 있는 시간은 지나지 않았다. 역사는 국가기념일에만 꺼내 읽는 오래된 기록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이름과 재산, 교육과 명예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 일이다. 나영균은 가족의 자랑뿐 아니라 모순과 상처까지 기록함으로써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상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조상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물려받은 것을 어디에 사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결국 한 사람을 평가하게 만드는 것은 조상의 이름이 아니라, 그 역사를 알게 된 뒤 그가 취하는 태도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네이버블로그(지구별시골쥐)에도 실립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김주영 기자 jooti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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