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과 똑같지요"... 하영 증조부 안상호 발언 살펴보니 [김종성의 '히,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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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안하영)이 지난 7일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가문인 집안 내력을 언급한 일로 인해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논란이 불거졌다.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의사이자 한국 근대의학(서양의학)의 선구적 그룹에 속하는 안상호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등재된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하나는 아니다.
이정은 책임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안상호는 일본 체류 시절에 친일파 구연수(1866~1925)의 중매로 가와구치 이소코와 결혼했다.
안상호가 일본 옷만 입고 일본식 음식만 먹는 것 자체는 친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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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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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 |
| ⓒ KBS |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의사이자 한국 근대의학(서양의학)의 선구적 그룹에 속하는 안상호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등재된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하나는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4389명의 친일파 중 하나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친일파다 아니다, 결론지을 수는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는 친일파의 일부만을 다뤘을 뿐이다. <친일인명사전> 역시 전부를 다 다룬 게 아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아버지인 김용주(1905~1985) 전 전남방직 회장은 위 보고서와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 그러나 김용주 친일 논란이 불거진 뒤인 2015년 9월 17일, 민족문제연구소는 기자회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씨는 명백히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판단을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가 한국인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 및 조선임전보국단 등의 간부를 역임한 사실, 군용기 헌납운동을 주도한 사실, 강제징병을 찬양한 일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친일인명사전>은 2009년에 발간됐다. 김용주가 그처럼 명백한 친일파라면 이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해명됐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2009년 출간 당시에는 재원과 자료의 부족으로 해외 및 지방의 전면 조사가 불가했다"고 밝혔다.
"일본 사람과 똑같고 조선 옷도 입지 않는다"
1872년 혹은 1874년에 지금의 서울에서 출생한 안상호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해인 1894년에 관립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8년부터 도쿄자혜의원학교에서 공부한 뒤 서른 살 무렵인 1902년에 일본 의술개업시험을 통과했다. 그런 다음에 귀국해 개인 병원을 개업했다. <한국민족운동사연구> 2007년 제53권에 실린 이정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 '최초의 근대 개업의(開業醫) 안상호의 생애와 활동'은 귀국 이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안상호는 진료소를 운영하는 한편, 황실의 촉탁의로서 창덕궁·덕수궁의 광무황제, 순종황제, 황태자, 각 비빈, 내관 등 궁내부 관리와 그 가족들의 진료도 했다. 특히 의친왕궁에는 거의 전속되어 있는 형편이었고, 부호들이 사는 북촌, 남촌의 대가(大家)들에서도 안상호를 초치하여 진료를 받았다."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는 물론이고 한양 부자들까지 안상호를 찾았다. 서양문명이 독일·프랑스에서 일본을 통해 유입되던 시절에 일본 의사면허를 획득한 안상호는 이처럼 잘나가는 의사였다.
그렇게 형성된 기반을 토대로 그가 국권 상실 6년 뒤에 가입한 단체가 있다. 요시히토 일왕의 연호인 대정(大正, 다이쇼)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다. 1916년 12월 1일 자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정미칠적 겸 경술국적인 친일파 조중응이 회장이고 친일 기업인인 조진태가 부회장인 이 단체에서 안상호가 임원의 일종인 평의원(評議員)이 됐다고 알려준다.
친일파들이 회장·부회장이라고 해서 친목단체에 불과한 모임을 친일단체로 볼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친목회라는 글자가 일으키는 편견에 불과하다. 위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제17권 조중응 편은 대정친목회 활동을 조중응의 친일행위 중 하나로 분류하면서 이 단체가 "내선융화를 목표로 활동하였다"고 기술한다. 실업인 상호간의 융화가 아닌 내지인과 조선인의 융화를 도모하는 단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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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년 12월 10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일선동체의 가정, 안상호씨 내외와 그자녀들" |
| ⓒ 한국연구원 |
이는 당시 일본이 어떤 의미로 일선동체나 내선융화를 운운했는지를 알려준다. 한일 두 민족의 장점을 융합하자는 의미로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안상호는 일제가 자기 가정을 그런 의미의 내선융화 모델로 치켜세우는 일에 대해 적극 호응했다. <매일신보> 기자가 살아가는 일이 재미있으시냐고 질문하자, 그는 자신은 일본 사람과 똑같고 조선 옷도 입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됴션 옷은 한 벌도 업슴니다. 그리고 음식도 매운 것은 죠곰도 못 먹어요. 일본 사람과 똑갓지요. 그리하니가 불편한 뎜은 조곰도 업셔요."
부인인 가와구치 이소코는 자신이 한국에 11년간 살았지만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한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내선일체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를 두 부부가 꽤 인상적인 화법으로 식민지 한국인들에게 홍보한 셈이다.
한국에서 의료 활동을 하고 그것으로 먹고 살면서 한국인들과 거리를 두는 안상호의 모습은 그가 대정친목회 활동을 하게 만든 배경 중 하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 문화를 깔보는 태도도 그 배경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안상호가 일본 옷만 입고 일본식 음식만 먹는 것 자체는 친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일본식 생활양식을 바람직한 식민지인의 행동양식으로 홍보하는 식민당국의 선전전에 가담했다는 점이다. 내선융화를 추구하는 대정친목회 간부가 되고 그런 활동에 적극 가담했다는 것은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그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고종 독살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 없어
한편, 안상호는 죽기 전의 고종을 진찰한 일 때문에 고종 독살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의혹을 입증할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위 논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고종의 며느리이자 영친왕의 배우자로 내정됐다가 일본 왕족인 이방자에 밀려 파혼 당한 민갑완(1897~1968)도 고종이 사망한 1919년 1월에 56세 된 아버지 민영돈을 잃었다. 안상호는 동래부사(부산시장)와 주미공사 등을 지낸 민영돈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구설수에 오를 만했다.
민갑완 회고록인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에 따르면, 민씨 가족들은 민영돈을 살리기 위해 여러 의사들을 찾았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데가 안상호다. "할 수 없이 마지막으로 안 전의(典醫)의 약을 가져왔다"고 회고록은 말한다.
"그런데 이 무슨 고변이란 말인가. 안 전의의 약을 잡숫자마자 선지와 같은 피를 마구 토하셨다. 이젠 말씀도 못하고 차차 몸이 식어가셨다. 땅을 치고 울어보아도 아버님은 말씀 한마디 못하신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민영돈과 고종 같은 인물들이 안상호의 치료를 받은 뒤에 그해 1월 5일과 21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구설이 생길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의료상의 책임을 인정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안상호가 고종 독살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는 없지만, 그가 친일단체 간부가 되어 내선융화 선전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나 <친일인명사전> 같은 데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친일 논란을 피하기 힘든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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