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스나이퍼도, 악마 교관도…센 언니들이 돌아왔다

최민지 2026. 8. 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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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유부녀킬러'에서 유보나 역을 맡은 공효진. 일명 '킹피셔'로 불리는 스나이퍼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MBC]


최악의 아동 성범죄자 표규철(허형규)이 자신을 쫓던 ‘두루미 전자’ 일당을 따돌리고 밀항을 위해 배에 올라탔다. 그가 안심한 순간 저 멀리 등대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일명 ‘킹피셔(물총새)’로 불리는 ‘두루미 전자’의 에이스 유보나(공효진)가 쏜 한 발이 표규철의 머리에 꽂혔다. 목표물의 죽음을 확인한 유보나가 나지막하게 동료들에게 말했다. “미팅(미션) 종료.”

방송가가 하반기 텐트폴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드라마들이 잇따라 시청자들을 찾고 있다. 스타급 여배우들이 액션물, 심리전, 범죄극의 중심에 서면서 여성 서사도 확장되고 있다.

공효진을 주연으로 내세운 ‘유부녀 킬러’(MBC)는 지난 8일 방영된 4회에서 9.4%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치를 경신했다. 공효진은 집에서는 육아와 시집식구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평범한 워킹맘이지만, 살인 청부 회사 ‘두루미 전자’에서는 전설의 스나이퍼 ‘킹피셔’로 불리는 유보나 역을 맡았다. 그는 직장 동료와의 주량 대결부터 성인 남성과의 패싸움에서도 지지 않는 체력·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설정을 구현하기 위해 맨손·칼·총 등을 활용한 액션 연기를 펼치고 있다.

'재벌X형사2'에서 주인공 진이수의 파트너 주혜라 역을 맡은 정은채. [사진 SBS]


‘김부장’ 후속작인 ‘재벌X형사2’(SBS)에서는 배우 정은채가 강인한 여성 경찰 캐릭터를 선보인다. 정은채는 안보현이 연기하는 진이수가 경찰대생이던 시절, ‘악마 교관’이라 불렸던 선배 주혜라 역을 맡았다. 당시 주혜라는 유도 대련을 신청했던 진이수를 단번에 메치며 굴욕을 줬다. 이후 경찰청 대테러부서에서 근무하던 주혜라가 도심 한 가운데 설치된 시한폭탄으로 위기에 처한 진이수를 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강하경찰서 강력1팀장으로 부임해 진이수와 수사 공조에 나선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2’에서는 극을 이끄는 주인공과 빌런이 모두 여성이다. 배우 정윤하는 극 중 킬러 조직 ‘바빌론’의 동아시아 지부장 ‘쿠사나기’ 역을 맡아, 쇼핑몰의 새 대표 정지안 역의 배우 김혜준과 대립각을 세운다. 김혜준은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시즌 1과 달리 직접 총을 들고 상대를 압박하며 협상 테이블을 주도한다.

'킬러들의 쇼핑몰2'에서 글로벌 범죄 조직 '바빌론'의 동아시아 지부장 '쿠사나기' 역을 맡은 배우 정윤하.


액션뿐 아니라 심리·복수극에서도 ‘센 언니’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지난달 31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블랙코미디 드라마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쿠팡플레이)에서는 김혜수·조여정이 주연을 맡았다. 동네 이웃인 둘의 신경전은 이사 떡을 돌리는 일상에서부터 불륜, 자녀의 살인 혐의 은닉 등으로 이어진다. 10일부터 시작되는 KBS 드라마 ‘욕망의 덫’에서는 배우 장서희가 살인 누명으로 인생을 뺏겼다 복수에 나서는 주미란 역을 맡아 강렬한 악역을 선보인다. tvN 드라마 ‘오싹한 연애’의 주인공 천여리(박은빈)는 귀신을 보는 저주에 걸린 재벌 상속녀로, 귀신을 무서워하는 검사 마강욱(양세종)의 수사를 돕는다.

보다 과감하고 대범해진 여성 캐릭터에 대해 전문가들은 변화한 시청자들의 취향, 방송가의 치열한 경쟁 상황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공희정 평론가는 “고부갈등, 결혼과 자아 실현 정도에 머물던 여성들의 갈등 서사가 이제는 복수극, 범죄심리전, 액션물까지 확장하고 있다”며 “여성들의 활약 분야가 괄목성장하고 있는 사회 변화 속에서, 보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킬러들의 쇼핑몰2'에서 주연을 맡은 킬러 정지안 역의 배우 김혜준. [사진 디즈니플러스코리아]

정덕현 평론가는 “업무 상 적수가 아닌, 가정 문제로 더 큰 내적 위기를 겪는 ‘유부녀 킬러’의 공효진 캐릭터에서 보듯 각종 장르물에서 여성 주연, 악역이 처하는 위기 상황이 남성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시청자가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최근 드라마에서 조명하는 여성 캐릭터가 정말로 주체적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여전히 이성애 로맨스, 모성에 집착하거나 남성 주인공의 성별만 바꿔 놓은 유형으로 재현되는 등의 모습은 오히려 퇴행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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