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부터 읽지 마라…영화 ‘오디세이’가 살린 고전의 진짜 재미

2026. 8.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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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로 본 고전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여했던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야기다. 사진은 튀니지의 바르도 국립박물관에 있는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을 묘사한 모자이크. [사진 위키백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작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되면서, 그 원작인 『오뒷세이아』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오뒷세이아』를, 그리고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는 요구가 쏟아진다.

세 번째 문제부터 보자.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대개 “읽지 않아도 된다”고 답한다. 세상에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란 없다. 그저 읽으면 좋은 책이 있을 뿐이다. 고전은 ‘읽으면, 많이 좋은 책’이다. 글자 발명 이래로 쏟아져나온 수많은 책 가운데 눈 밝은 이들이 가려 뽑은 것이고, 긴 세월의 시험을 견딘 책들이다. 하지만 고전은 읽기가 쉽지 않다. 그 어려운 책을 무작정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요즘 청소년 중에 책 읽기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로, ‘독후감 요구’를 꼽는 독서 교육 전문가도 있다. 자꾸 학생들에게 감상문을 써내라고 강요하니, 책 읽기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전과 관련해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나는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 잠재 독자를 아예 잃어버릴까 두렵다. 대신 나는 ‘고전을 알자’를 표어로 내세운다. 영화든 만화든, 아니면 청소년용 번안물이든 그 어떤 통로를 통해서라도, 줄거리와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는 정도면 일단 ‘통과’다. 원작은 다른 계기에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찬찬히 읽어보면 된다.

현재서 과거로 가는 ‘플래시백’ 처음 나와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한 장면.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한데 구체적으로, 고전을 읽으면 어떤 점에서 좋은가. 나는 노년층에게는 ‘치매 예방’을 내세운다. 고전 작품에는 낯선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그것을 소리 내어 읽자. 그러면 평소에 쓰지 않던 혀의 근육, 평소에 자극이 가지 않던 뇌의 특정 부위에 자극이 가해져 두뇌 전체의 기능이 활성화된다(고 나는 주장한다). 청소년층에게는, 책을 많이 읽으면, 특히 고전을 읽으면 말과 생각이 가지런해진다고 강조한다. “당신이 채용담당자라면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펼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누구를 뽑겠느냐”고도 묻는다. 청장년층에게는, 고전은 일종의 국제통화여서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모인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요긴하다는 걸 강조한다. 보라, 놀란의 영화 한 편으로 온 세상이 좋은 대화 실마리를 하나 얻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가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고전이 지닌 비일상성이다. 고전은 대개 나온 지 좀 된, 묵은 책들이고 대개는 현재의 다급한 문제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주제 자체가 일상을 벗어나 있다. 표현도 우리가 늘 쓰는 것이 아니다.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고, 우리의 삶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게 한다. 인간의 본성과 운명,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이나 생각이 막힐 때면 고전 작품을 아무 데나 펼쳐서 아주 약간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고전은 계발을 기다리는 아이디어들의 보물창고다.

두 번째 문제를 보자. 『오뒷세이아』를 왜 읽어야 하냐고? 지금 그 작품에 관해 설명해 달라는 요구가 밀려온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그 작품을 읽을 필요성을 입증한다. 『오뒷세이아』는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이고, 그 안에 앞으로 되풀이될 거의 모든 이야기 요소를 담고 있어서, 그것을 읽으면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도 좋고 이미 나온 작품을 분석하기에도 유리하다. 원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변형될 때 새로 담기는 의미를 미묘한 수준까지 감지할 수 있다.

이제 첫 번째 문제에 당도했다. 『오뒷세이아』는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그런 엄청난 잠재력을 품고 있단 말인가.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여했던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그는 바다에서 괴물과 마녀, 기이한 종족들과 마주치고, 고향에서는 악당들과 싸워 집안을 되찾아야 한다. 흥미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주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려다 실패하는 사람이 많다. 대개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이야기가 연결되는 같은 작품의 1부와 2부인 줄 알고서, 먼저 『일리아스』를 읽으려다 실패한다. 나로서는 『오뒷세이아』로 직행하기를 권하고 싶다. 『일리아스』 내용은 몰라도 된다. 그냥 얼마 전에 큰 전쟁이 있었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오뒷세이아』 완독 실패의 두 번째로 흔한 사유는 작품의 구조 자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주제 두 가지는 바다에서의 모험과 고향에서의 투쟁이지만, 중요 주제가 하나 더 있다. ‘젊은이의 성장담’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나서고, 아버지가 겪는 것과 같은 종류의 시련을 간접 체험하는 내용이다. 한데 하필이면 이 부분이 작품 맨 앞에 놓여 있다. 사건 진행이 느리고 자극도 약하다. 격한 모험을 원하는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그 부분이 지나면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등장하지만 바로 모험 이야기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의 모험은 이미 과거의 일이고, 그것을 들으려면 먼저 이야기를 들어줄 인물들이 있는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 대작은 결말을 늦추는 경향이 있다.

평화로운 결말, 인류 정신의 고양 보여줘
그러니 그냥 제9권부터 읽는 게 좋다. 거기에 모두가 좋아하는 모험 이야기가 모여 있다. 이스마로스에서의 해적질, 로토스 먹는 사람들, 외눈박이 괴물 폴뤼페모스, 바람들의 왕 아이올로스, 식인 거인족 라이스트뤼고네스, 사람을 돼지로 만드는 마녀 키르케, 저승여행, 노래로 유혹하는 세이렌들, 거대한 소용돌이 카륍디스, 머리 여섯 달린 괴물 스퀼라, 태양신의 섬, 오디세우스를 7년간 붙잡아두는 칼립소 등. 영웅의 모험담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이다. 이 일화들은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을 떠나 나우시카아의 섬에 도착해서 그곳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들어있다. 라이스트뤼고네스는 오디세우스의 10년 방랑의 마지막 며칠을 보여주면서, 등장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채워 넣는다.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 기법이 최초로 사용된 사례다.

모험 부분을 다 읽고 나면 계속 다음 부분을 읽어 나가도 좋고, 다시 작품 맨 앞으로 돌아가도 좋다. 우선 그 뒷이야기를 보자. 나우시카아의 아버지 알키노오스가 제공한 배로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아테네 여신의 도움으로 늙은 거지로 변하고, 우선 충직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간다. 늙은 거지와 돼지치기는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정을 나눈다. 귀족들의 고고한 세계에 머물던 『일리아스』적 시각이 서민의 수준으로, 피지배자의 시점으로 내려서는 순간이다.

그리고 거기서 오디세우스는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 텔레마코스와 마주친다. 두 줄기로 진행되던 이야기 흐름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다. 아테네 여신은 잠깐 오디세우스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준다.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고, 집안 사정을 보고한다. 그의 집에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무리가 들끓으며, 그녀를 압박하기 위해 날마다 집안 재산을 먹어치우고 있다. 이들은 주인이 돌아오면 죽이려는 음모까지 꾸미고 있다. 이제 오디세우스는 단독으로 이들 108명의 건장한 사내들과 싸워야 한다.

아들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이어서 오디세우스도 자기 집으로 찾아간다. 늙은 개 아르고스가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치다 죽는다. 오디세우스는 구걸하며 동정을 살핀다. 이 집주인의 행방을 알고 있다며 아내 페넬로페와 단독 면담 기회를 얻게 되지만 자기 신분을 밝히지는 않는다. 늙은 유모가 오디세우스의 발을 씻다가 흉터를 발견하지만, 역시 주인의 신분은 공개되지 않는다. 다음날 페넬로페가 남편감을 결정하기 위해 활쏘기 시합을 열었을 때,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활로 도끼 12개를 꿰뚫고 이어서 활과 창으로 구혼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린다. 그 후에 아내가 그를 알아보고, 늙은 아버지와의 만남이 이어진다.

마지막엔 죽은 구혼자의 친척들이 몰려와 잠깐 전투가 벌어지지만 아테네의 중재로 화해하고, 작품이 끝난다. 학자들은 피의 복수의 악순환이 중단되고 평화로 끝나는, 인류의 정신이 한 단계 올라서는 걸 보여주는 결말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기초 지식을 갖고 보면 놀란 감독이 원작을 얼마나 놀랍게 변용했는지, 새롭게 도입된 현대적 관점은 무엇인지 쉽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도 더욱 풍성히 즐기고 원작을 읽어볼 계기도 얻으시길 기원한다.

강대진 서양고전학자. 그리스·로마 원전 연구 학술단체인 정암학당 연구원. 서울대 철학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일리아스』로 문학 박사. 네이버·EBS·JTBC 등 출연, 인문학 강의를 하곤 한다. 『잔혹한 책읽기』 『신화와 영화』 『그리스 로마 신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읽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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