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맞은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마술은 상상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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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반 대중이 '마술'이라는 장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인물은 이은결(44)이다. 이은결은 2000년대 초반 한국 마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다.
이은결이 올해 마술을 시작한 지 30주년을 맞아 오는 22일부터 9월 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기념 공연 'ONE OF ONE'(원 오브 원)을 개최한다.
끝으로 이은결에게 앞으로의 30년에 대한 전망을 묻자 그는 "지난 30년간 남들이 만든 마술 도구를 사서 이용하는 편한 방법 대신, 세상에 없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었다. 어떤 장면은 아이디어를 구현하기까지 5~10년이 걸린 것도 있다. 힘들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면서 "관객들이 제 공연을 보고 단순히 '신기하다'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감정과 이미지라는 '풍경'을 가슴에 담아가도록 일루셔니스트로서 경계를 계속 확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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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반 대중이 ‘마술’이라는 장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인물은 이은결(44)이다. 이은결은 2000년대 초반 한국 마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다. 이은결이 등장하기 전 국내 마술은 단발성 이벤트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이은결은 트릭을 연속해서 보여주는 마술쇼 대신 음악, 조명, 서사, 연출이 어우러진 콘서트 스타일의 ‘매직 콘서트’ 브랜드를 정착시켰다.
그런데 이은결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마술사 대신 ‘일루셔니스트’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마술의 테두리를 벗어나거나 아예 해체하는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엔터테이너로 인기 있는 이은결 대신 ‘일루셔니스트 EG’라는 이름으로 실험적인 공연을 선보인 것은 대표적이다. 이은결은 마술을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활용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환상을 연출하는 것으로 스펙트럼을 확장해 왔다. 지난해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을 무대화한 동명 뮤지컬에서는 그가 총감독을 맡아 마술을 활용한 무대 연출로 아동용 뮤지컬의 틀을 깨고 부모 관객까지 사로잡았다.

이은결이 올해 마술을 시작한 지 30주년을 맞아 오는 22일부터 9월 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기념 공연 ‘ONE OF ONE’(원 오브 원)을 개최한다. 공연을 앞두고 이은결을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나 30주년에 대한 소회와 함께 전환점이 된 순간들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30년간 활동하면서 첫 번째 모멘텀은 2001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마술대회 우승이에요. 당시엔 국제대회가 높은 ‘벽’ 같았고 입상을 기대하지 않았었거든요. 하지만 우승이라는 결과를 내면서 제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게 됐습니다. 그 믿음 덕분에 제 커리어 30년 중 초반 10년은 ‘한국 마술사들이 할 수 없다는 걸 깨보자’는 마음으로 라스베이거스 수준의 대형 공연까지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 중3 때 마술을 시작한 그는 2001년 일본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해외 마술대회를 잇따라 석권했다. 장신과 긴 손가락을 이용한 화려한 퍼포먼스 마술은 그의 장기다. 마침내 그는 마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계마술연맹(FISM) 주최 마술 월드컵에서 한국인 최초로 2003년 종합 2위, 2006년 제너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2007년 4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제작된 매직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술로 승승장구하던 것과 달리, 그는 불공정 계약 소속사와의 소송을 치른 뒤 군에 입대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군 복무 시절이던 2007년에 두 번째 전환점이 왔는데요. 2003년 첫 매직 콘서트를 시작하고 목표했던 무대들을 이루고 나니 ‘전 세계적으로 나는 그저 수많은 마술사 중 한 명(One of them)이 아닌가? 나만의 독창적인 게 있나?’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무대만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기준점으로 두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공연, 마술쇼의 프레임을 바꾸는 공연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은결에 따르면 마술계에는 크게 초월주의와 표현주의의 두 노선이 있다. 초월주의는 점점 더 신기한 마술을 펼쳐 트릭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쪽이다. 이때 마술사의 아우라가 커지면서 최면술사의 성질을 가진 멘탈리스트(심리 마술사)로 나아가기도 한다. 반면 표현주의는 마술에 연출과 서사를 더해 퍼포먼스를 강조한다. 마술계 전체에서 표현주의는 소수인데, 마술이 서사 속으로 들어가면 마술사 개인의 아우라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은결은 마술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거치며 표현주의로 방향을 정했다.
“마술은 기본적으로 휘발성이 높고 공연에 하나의 주제를 담지 않는 편입니다. 미녀를 상자에 넣고 자르거나 손끝에서 불꽃이 나오는 등 기존 마술은 신기함을 주지만 공연이 끝난 뒤엔 그 감정이 사라지죠. 개별 마술들이 마술사의 아우라를 높이기 위해 나열될 뿐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이나 인공지능(AI)에 물어보면 마술의 트릭(비밀)이 금방 밝혀지는 시대입니다. 신비주의에만 의존하던 마술은 트릭이 밝혀지는 순간 힘을 잃고 희화화되기 십상입니다. 저는 관객과 ‘누가 트릭을 밝혀내나’ 대결하는 구도를 원치 않습니다. 신기함은 마술의 기본으로 놓되, 그 뒤에 서사와 메타포라는 층위를 두어 관객이 더 깊은 잔상과 풍경을 가져가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마술을 목적이 아닌 표현 수단(언어)으로 삼게 된 그는 ‘일루션’(illusion) 개념을 확립했다. 2010년부터 선보인 ‘디 일루션’은 단순한 마술의 나열이 아니라 이은결의 자전적 이야기와 철학을 담아 10년 이상 발전시켜 온 그의 대표 브랜드 공연이다. 전반부가 시그니처 퍼포먼스와 화려한 손기술 등 오락성이 강하다면, 후반부는 자전적 서사와 미장센을 통해 감동을 준다.
그런가 하면 이은결은 2009년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와 협업해 영화와 마술을 결합한 융복합 공연 ‘시네매지션’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마술사 출신으로 초기 영화제작 기술의 발전을 이끈 선구자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이후에도 이은결은 멜리에스를 오마주한 ‘멜리에스 일루션’을 통해 마술의 본질을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초기에 그는 일루셔니스트 EG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올렸는데, 마술에 대한 오락적 선입견이나 이은결이라는 이름이 주는 사전 편견을 깨고 작품 자체로 대면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멜리에스 일루션’ 외에도 마술을 표현 수단 삼아 철학적, 미학적 실험을 시도한 작품으로는 ‘디렉션’, 가상과 현실을 묻는 ‘메타’, 마술사의 역사를 담은 ‘트랙’ 등이 있다.

“나이가 들면 감각이 무뎌질 수 있고 감각만으로는 창작에 한계가 오기 때문에, 이론화를 시켜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FISM 등 국제 매직컨벤션의 세미나에서 이러한 창작 이론과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면 기술을 기대하고 온 젊은이들은 나가기도 하지만 마술을 오래 해온 분들은 깊이 공감해주십니다.”
이번 30주년 기념 공연 ‘ONE OF ONE’은 이은결이 선보였던 공연들의 시그니처 장면과 클라이맥스를 모은 작품이다. 그는 “공연의 제목은 최고(Number One)를 꿈꿨던 내가 나만의 정체성을 가진 단 하나의 존재(Only One)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면서 “이번에 아이와 바다에 갔던 기억과 어릴 적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소라껍질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가 관객으로 하여금 경험으로 확장되는 환상적인 장면을 구현해 보려고 막바지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총감독 겸 제작을 맡았던 뮤지컬 ‘사랑의 하츄핑’의 큰 인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어린이용 공연을 피하던 그는 ‘티니핑’ 제작사 측의 제안으로 동명 애니메이션을 무대화했다. 그는 “탈을 쓰는 정형화된 캐릭터 뮤지컬 대신 ‘워호스’나 ‘라이온킹’처럼 퍼펫(인형)을 활용해 배우의 감정 연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내에 대형 퍼펫을 만들 곳이 마땅치 않아 밤을 새워가며 저희 팀이 직접 제작했다”면서 “아이들의 생애 첫 뮤지컬로서 온 가족이 감동을 느끼는 가족극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최근 개봉한 속편 ‘사랑의 하츄핑: 고래보석의 전설’에 맞춰 내년 새로운 공연을 올리기 위해 상하이 서커스 학교 등 해외 기술 자문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은결에게 앞으로의 30년에 대한 전망을 묻자 그는 “지난 30년간 남들이 만든 마술 도구를 사서 이용하는 편한 방법 대신, 세상에 없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었다. 어떤 장면은 아이디어를 구현하기까지 5~10년이 걸린 것도 있다. 힘들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면서 “관객들이 제 공연을 보고 단순히 ‘신기하다’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감정과 이미지라는 ‘풍경’을 가슴에 담아가도록 일루셔니스트로서 경계를 계속 확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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