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화려해" 인어공주 꿈꿨던 7살 딸의 변화

서나연 2026. 8. 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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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딸이 한 말이다. 화려해서 좋다던, 화려한 것만이 좋다던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편한 신발을 신고, 너무 화려한 옷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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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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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나연 기자]

"너무 화려해서 부끄러워."

일곱 살 딸이 한 말이다. 화려해서 좋다던, 화려한 것만이 좋다던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공주병이 끝나는 걸까?

그녀의 꿈은 인어공주다. 유치원에선 생일 파티에서 '나의 꿈'을 발표한다. 장래희망과 어울리는 옷을 파티날 입혀 달라는 요구에, 인어공주에 걸맞은 옷을 몇 주간 찾았다. 진짜 인어공주 옷은 수영복에 가까워서 딸의 생일인 11월에 입기엔 곤란했다.

당근마켓을 뒤진 끝에, 가슴에는 인어의 비늘처럼 햇빛에 영롱하게 빛나는 작은 판들이 박혀 있고 치마는 지느러미처럼 매끈한 실루엣의 드레스를 찾았다. 반팔이긴 했지만 하얀 목폴라 위에 레이어드해서 입으면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어공주가 다리가 생겨 사람이 된다면 입을 것만 같은 드레스였다.
 딸의 인어 공주 드레스.
ⓒ 본인
그게 불과 지난해 겨울이었고, 지난 금요일에 오랜만에 그 드레스를 꺼냈다. 남편이 웬일로 재즈 공연 예약을 했다며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드레스를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왔다. 옷걸이째 딸에게 들고 가서 선물을 보여 주듯 "짜잔"하고 말했다. 그러자 돌아온 그녀의 대답이었다.

"너무 화려해서 부끄러워. 이건 내 생일 파티에나 입을래."
"아니야, 좀 화려해도 예쁜데. 그래서 예쁜 거야."
"너무 눈에 띄잖아. 조금 평범한 옷 입을래."

나는 두 번째로 눈에 띄는, 딸기가 그려진 하얀색 드레스를 들고 나왔더니 딸은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징조는 이미 있었다. 얼마 전부터 딸은 보석이 박혀 있는 구두 대신, 별이 그려진 운동화를 줄곧 신기 시작했다. 청바지를 입는 날에도, 튜튜 치마를 입는 날에도 그 신발을 신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게 제일 편하다고 했다. 다섯 살 때까지만 해도 "오늘 많이 걸어야 해. 운동화를 신자"고 말하는 게 신발장에서의 관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도 언젠가 비슷한 관문을 지나왔다는 게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매년 생일마다 레이스가 겹겹이 달린 원피스를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해엔 처음으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겠다고 우겼다.

엄마는 서운한 얼굴로 "그래도 생일인데"라며 원피스를 내밀었지만, 나는 그게 유치하다고, 애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편한 옷이 좋아진 것뿐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대단한 선언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딸의 옷장 앞에 서서야, 나도 그렇게 화려함을 하나씩 걸어 잠그며 자라왔다는 걸 알았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는, 서른다섯이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제 엄마 아빠가 안아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유모차를 탈 나이도 아니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변화일 것이다. 편한 신발을 신고, 너무 화려한 옷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그건 나와도 닮아 있었다. 어른인 나는 편한 게 중요하고, 무난한 무채색 옷을 즐겨 입는다. 딸을 낳고 기르면서 좋았던 건, 그 어릴 때의 나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어린 딸이, 어쨌든 조금 자라고 성장했다는 것이 이날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아이는 계속 자랄 것이다. 이십 대 후반에 낳은 딸과 나는 같이 나이가 들고 있다. 아이는 일곱 살이,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되었고, 내년이면 딸은 초등학생이, 나는 학부모가 된다. 재즈 공연이 끝나고 돌아온 밤, 딸기 드레스를 옷걸이에 다시 걸며 그 옆의 인어공주 드레스를 오래 만져보았다. 내년 생일에도 저 드레스가 딸에게 맞을지, 문득 알 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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