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 보기 전에 읽고 갑시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마침내 때가 왔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 원전 완역이라고 해서 구입했는데, 본문보다 각주와 해설이 더 많은 듯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버전이 많은 걸 보면, <오디세이아>를 읽고는 싶은데 여러 가지 이유로 못 읽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오디세이(odyssey)'는 <오디세이아>에서 유래해, 영어에서는 '길고 험난한 여정이나 모험'을 뜻하는 일반 명사로도 쓰인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지영 기자]
마침내 때가 왔다. 오랫동안 미루었던 책 이야기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 원전 완역이라고 해서 구입했는데, 본문보다 각주와 해설이 더 많은 듯했다. 게다가 각주의 글씨는 본문보다 훨씬 작았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신과 인간의 각각의 이름 또한 길기도 하다. 용기가 나지 않아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고 책꽂이 저 높은 곳에 꽂았다. 그러던 중, 몇 년 전 우리 집 화재로 인해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버려졌다.
|
|
| ▲ 양승욱의 <처음 읽는 오디세이아>(탐나는 책, 2024) '호메로스가 들려주는 오디세우스의 파란만장한 대모험'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각주와 해설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친절한' 책이다.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10년 간의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오디세우스의 힘과 용맹 그리고 지혜가 돋보인다. |
| ⓒ 탐나는 책 |
각주와 해설이 없는, 친절한 <처음 읽는 오디세이아>
양승욱의 <처음 읽는 오디세이아>에는 각주나 해설이 없다. 각주나 해설이 없어도 읽다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서사시라기보다는 소설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본문이 나오기 전에 등장인물 소개가 나오는데, 6쪽에 걸쳐 35명이나 된다.
읽다가 등장인물 소개를 찾아가기 뭣해서 미리 등장인물 소개를 복사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등장인물 소개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등장인물 소개를 굳이 찾지 않아도 읽는 동안에 저절로 숙지가 되었다. 옮긴이의 역량이 아닌가 싶다. 학술적 연구가 아닌, 줄거리와 재미를 위해서 읽기에는 매우 적합하다.
책 제목에서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오디세이(odyssey)'는 <오디세이아>에서 유래해, 영어에서는 '길고 험난한 여정이나 모험'을 뜻하는 일반 명사로도 쓰인다. 일반 명사로 쓰인 예로는 라디오 방송프로그램 '신혜성의 음악 오디세이' 또는 디즈니플러스 의학 드라마 <닥터 오디세이>를 들 수 있다.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 BC 8세기 경의 방랑시인 호메로스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에 전해져 오는 여러 신화나 전설 가운데, 오디세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서사시 형식으로 쓴 것이다.
이야기는, 오디세우스가 목마를 이용한 뛰어난 전략으로 트로이아와의 10년간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자기의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디세우스의 힘과 용맹성 그리고 지혜를 겸비한 그리스 전사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맞닥뜨리는 10년간의 긴 여정이 펼쳐진다. 왜 그렇게 험난한 귀국길이 되었을까. 그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항해 도중 이런저런 일로 부하를 모두 잃게 된다. 뗏목 위에서 노 대신 두 팔로 물결을 가르면서 열흘 째 표류하던 중, 신비의 섬에서 요정 칼립소를 만나게 된다. 칼립소는 자기와 함께 '낙원'에서 살기로 한다면 불멸의 신이 될 수 있다고 꾀인다. 죽음도 없고 영원히 편히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진심은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친다.
오디세우스는 오매불망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다. 무엇이 오디세우스로 하여금 안전한 영생을 버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격랑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게 했을까. 늙고 병들어 언젠가는 죽을지언정 나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주체적인 인간'이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자식과 처 그리고 부모가 있는 고향.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제우스는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놓아주라고 명령한다.
7년 동안 낙원에서 자신을 한결같은 사랑을 쏟아부어준 여신 칼립소와 오디세우스가 작별할 때였다. 칼립소가 앞으로의 고난을 예고하면서 영원한 삶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고 작별을 앞둔 오디세우스를 만류하자, 오디세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신이여,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없고, 그리운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다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고난을 헤쳐왔습니다. 또다시 신들께서 내게 큰 고난을 주신다고 해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감내하겠습니다." - 양승욱의 <처음 읽는 오디세이아>(129쪽)
이 대목에서 소름 끼치도록 놀라웠다. 죽음이 늘 곁에 있는 위험천만한 일을 겪은 사람인데도 안락한 삶을 게다가 불멸의 삶이라는 유혹을 뿌리칠 만큼 오디세우스의 간절한 소망과 강인함,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는 사실 말이다. 귀향을 포기하고 칼립소와 함께 지상 낙원에서 살고 싶을 텐데도 말이다.
불멸의 삶보다 필멸의 인간의 삶에 가치를 둔 호메로스의 '인간 존엄'에 대한 시각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죽음으로 삶을 마감할 인간의 제한적인 삶을 고귀하게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 아니었던가. 그만큼 '지금 오늘'의 가치는 소중하다.
고향에서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왕비 페넬로페는 여러 구혼자들로부터 수난을 겪는다. 구혼자들은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나도록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자 그가 죽었음이 분명하다며 왕비에게 강제로 구혼한다. 이들은 여러 해 동안 궁전에 머물며 잔치를 벌이고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축낸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왕비가 아니다. 그녀는 구혼자들에게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짤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청한 뒤,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몰래 그것을 풀어버리며 시간을 번다. 기지를 발휘하는 면에서 보면 과연 부창부수다. 막무가내로 거절했다가는 목숨마저 위태로움을 알았기에 왕비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낸다. 그동안 어렸던 아들 텔레마코스 역시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청년으로 성장한다.
이 세 사람(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그리고 아들 텔레마코스)이 수차례 고초를 겪고도 다시 만나고,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나라를 도로 찾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은 신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아테나는 무조건 오디세우스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디세우스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을 심어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준다.
'주체적 인간'의 길
이 대목에서 나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을 떠올렸다. 오디세우스가 역경을 딛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용맹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갖가지 유혹을 뿌리치고 인간적인 도리와 의리를 지킨 오디세우스의 감성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디세이아>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가 된다. 겉으로는 거창한 신들의 신탁, 바다 괴물과의 싸움, 마법사 키르케 같은 거창한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가정을 지켜내려는 한 가족의 역사'가 된다.
3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이런저런 이유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도 닮아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문제, 입학과 취업의 문제, 권력의 문제, 불안과 우울의 정서적 문제 등으로 고통받는 현대 한국인들은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과제가 남는다.
그 험난한 여정에서 우리에게도 아테나와 같은 존재가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아테나는 기적을 만들어 주는 신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려는 인간의 편에 서는 신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테나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먼저 일어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꿇어앉지 않아야 아테나도 돕는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1번의 구조 신호, '앙심' 두 글자로 요약한 재판부
- 역사에 남을 법원 판결... 기억해야 할 의미심장한 문장
- [단독] 배재고, '스벅 가야지' 학생 2명 중징계
- '돌려차기 사건' 농담한 서범수·진종오... "전적으로 잘못"
- "그냥 애만 던져요"... 국가가 민간 시스템을 지운 자리
- 야생화가 별처럼 쏟아지는 곳, 지구상에 이런 곳이
-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던 남편의 속사정
- 노동부·기후부 장관에 유감 있다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7개월 만에 '수도권 5만호 추가공급안' 나온다
- 민주당 "다카이치 내각 '독도 영유권 주장' 되풀이... 주권 침탈 야욕 드러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