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탑 창 너머] 목소리만 아는 사이

2026. 8. 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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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이프런. 견인 1호입니다. 9번 주기장에서 50번 주기장 갑니다" "안녕하세요, 견인 1호는 후방 견인 후 대기하십시오."

막 출근해서 근무석에 앉으면 무전기 속에서 한국어로 정답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공항의 어딘가에서 스치듯 지나치면 서로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신기하게도 무전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도 견인 운전자 각자를 구분할 수 있다.

내일도 어김없이 무전기 속에서 "안녕하세요, 에이프런. 견인 1호입니다" 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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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정 인천국제공항공사 관제사


“안녕하세요, 에이프런. 견인 1호입니다. 9번 주기장에서 50번 주기장 갑니다” “안녕하세요, 견인 1호는 후방 견인 후 대기하십시오.”

막 출근해서 근무석에 앉으면 무전기 속에서 한국어로 정답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승객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비행기의 안전한 운항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 바로 견인 운전자다. 사람들은 비행기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하면 조종사만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공항에서는 견인 운전자도 견인차인 토잉카(towing car)를 이용해 비행기를 이동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토잉카가 견인하는 비행기는 승객이 타고 있지 않은 상태로 주기장에서 다른 주기장으로 이동한다. 인천공항에서 승객이 이용하는 탑승구는 1터미널과 탑승동, 2터미널을 모두 합쳐도 약 150개에 불과하다. 반면 하루 운항하는 여객기는 1000편을 훌쩍 넘는다. 그래서 공항에서는 하루에도 수차례 항공기를 다른 주기장으로 옮기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비행기 머리 아래쪽으로 노란색이나 흰색 트럭이 딱 붙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게 바로 비행기를 견인하는 것이다. 견인 항공기도 실제로 운항하고 있는 비행기 사이사이로 공항을 누벼야 하기 때문에 관제사와 실시간 교신하는 것이 필수다.

흥미로운 점은 교신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다. 조종사와 관제사는 영어로 교신하지만, 견인 운전자와 관제사는 한국어로 소통한다. 어딘가로 ‘이동하라’는 관제 지시를 발부할 때, 조종사에게는 “Taxi via Romeo”처럼 국제 공용어인 영어로 지시하고, 견인 운전자에게는 “로미오 유도로 이동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지시한다. 같은 공항, 같은 관제탑에서 오가는 무전이지만 상대에 따라 언어가 달라지는 셈이다.

그 짧고 익숙한 한국어 교신 속에는 계류장의 날것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견인 운전자를 무전으로 마주한다. 공항의 어딘가에서 스치듯 지나치면 서로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신기하게도 무전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도 견인 운전자 각자를 구분할 수 있다. 무전기 버튼을 누르는 버릇, 인사를 건네는 말투, 교신을 마무리하는 억양만으로도 누가 무전을 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얼굴이 아닌 목소리가 먼저 떠오르는 관계. 계류장에서는 그런 인연이 24시간 내내 이어진다. 마이크를 통해 서로의 일과 긴장을 공유하는, 우리는 말 그대로 ‘목소리만 아는 사이’다.

그 목소리는 계절의 온도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폭염이 이어지는 날, 아스팔트 복사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엔진 열기까지 덮쳐 숨이 턱턱 막히는 현장에서도 꿋꿋이 일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반대로 겨울에는 손이 꽁꽁 얼어붙어 무전기를 쥔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묵직하게 자리를 지킨다. 비가 내리치거나 강한 바람이 불어도, 함박눈이 쏟아지는 곳에서도 날씨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조용한 관제실에서 누리는 안락함은 사실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계절을 받아내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단순히 고생스럽다는 표현으로 다 담기지 않는 모습이다. 항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최첨단 항법 장비나 관제 시스템을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본 항공의 최전선은 결국 ‘사람’이다. 계류장에서도 그 원리가 적용된다. 계류장관제사는 공항 전체의 교통 흐름을 조율하지만, 견인 운전자는 활주로와 유도로, 주기장을 직접 누비며 가장 가까이에서 현장을 지킨다. 그래서 견인 무전은 단순히 이동 지시를 주고받는 수단이 아니다. 서로가 보고 있는 상황을 공유하고, 예상하지 못한 위험 요소를 함께 확인하며 안전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극심한 피로와 악조건 속에서도 단 하나의 실수를 막기 위해 무전기를 붙잡고 서로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그들의 집중력이야말로 비행기를 하늘로 띄우는 가장 단단한 방어선이다.

공항 창가에 앉아 비행기가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비행기 뒤편에서 폭염과 한파를 받아내며 서 있을 사람들을 한 번쯤 떠올려 주기를 바란다. 내일도 어김없이 무전기 속에서 “안녕하세요, 에이프런. 견인 1호입니다” 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길 바란다. 그 평범한 인사가, 오늘도 수많은 비행기의 안전한 출발을 가능하게 해 줄 테니까.

민이정 인천국제공항공사 관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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