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 or 보기] 3738일을 견뎌 일궈낸 승리가 주는 삶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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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세계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순간은 단번에 정상을 차지하는 천재의 화려한 등극이 아니다. 정상을 맛본 뒤 찾아온 지독한 슬럼프와 길고 긴 무명의 터널을 묵묵히 버텨내고 다시 일어서는 자의 숭고한 복귀다. 지난 26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ISPS 한다 스코틀랜드 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신지은의 승리가 바로 그렇다.
멈춤의 시간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다시 가슴속에 불꽃을 피워 올린 그의 고백은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져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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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슬럼프 이겨낸 숭고한 복귀
현재에 집중·주변의 믿음이 원동력

스포츠의 세계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순간은 단번에 정상을 차지하는 천재의 화려한 등극이 아니다. 정상을 맛본 뒤 찾아온 지독한 슬럼프와 길고 긴 무명의 터널을 묵묵히 버텨내고 다시 일어서는 자의 숭고한 복귀다. 지난 26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ISPS 한다 스코틀랜드 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신지은의 승리가 바로 그렇다.
2016년 5월 텍사스 슛아웃에서 첫 승을 거둔 이후, 다시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3738일이다. 1라운드부터 단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지만, 그 과정에 담긴 10년의 세월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한때는 골프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고 깊은 번아웃과 방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으며 마침내 스코틀랜드의 거친 바람 속에서 통산 2승째를 일궈냈다. 신지은의 이번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 이상의 의미와 삶의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첫 번째 교훈은 ‘스스로에 대한 당위성의 발견’이다.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신지은은 10년 전 첫 우승과 이번 우승의 차이를 이렇게 밝혔다. “첫 우승 때는 내가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우연히 얻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내 힘으로 일궈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뜻밖의 행운이나 빠른 성공을 만났을 때, 그것이 진짜 내 실력인지 의심하며 불안해하곤 한다. 하지만 수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한 뒤 얻어낸 성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확단(確斷)과 자긍심을 선사한다. 10년이라는 기나긴 기다림은 그에게 어쩌면 트로피 하나보다 훨씬 더 소중한 ‘스스로 자격이 있음을 믿는 단단한 마음’을 선물해 줬을 것이다.
두 번째는 ‘열정을 잃었을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지혜’다. 신지은은 코로나 팬데믹 시절 투어가 중단됐던 시기를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았다. “6개월 동안 직업이 없는 상태로 지내면서 매일 골프를 치기는 했지만,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못한다는 괴로움을 겪었다. 골프를 사랑하지만 이 직업은 어렵고 애정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 힘든데, 그때 다시 열정을 찾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성과에 대한 압박 속에서 직업적 열정을 계속 유지하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멈춤의 시간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다시 가슴속에 불꽃을 피워 올린 그의 고백은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져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시 도약하기 위한 숨 고르기일 수 있다.
세 번째 교훈은 ‘위기의 순간,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가짐’이다. 최종 4라운드에서 5타 차 선두로 출발했지만, 신지은은 중반 3개 홀 연속 보기를 범하며 거센 추격을 받았다.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던 순간, 그는 캐디에게 불안감을 털어놨다.
그때 캐디는 “지금 이곳에 나와 함께 머물러라. 나를 보고, 공을 보고, 이번 주 내내 해온 것을 믿고 실행하라”고 조언했다. 신지은 역시 스스로에게 “계속 경기 안에 머물자. 배를 가라앉히지 말자”고 되뇌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삶의 위기 순간에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니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하나의 공, 지금 내가 서 있는 발밑의 현장에 온전히 집중하는 ‘현재성’이다. 신지은은 지나간 보기에 연연하지 않고 바로 다음 샷에 집중함으로써 파 퍼트를 성공시켰고, 결국 우승이라는 고지를 지켜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지은의 우승은 ‘나를 믿어주는 든든한 조력자들과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다. 경기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그에게 코치는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상관없다. 네가 올바른 사람들을 곁에 두고 지금의 팀을 만든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며, 너는 이미 그 자리에 설 자격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흔들릴 때 묵묵히 자격과 가치를 상기시켜 주는 주변의 믿음이야말로 10년의 세월을 버텨낸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었다.
3738일. 누군가에게는 포기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지은에게 그 시간은 포기의 이유가 아닌, 골프와 인생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이 됐다. 트로피를 품에 안고서도 곧바로 다음 대회를 위해 스윙 연습을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의 자세를 본다.
인생이라는 긴 필드 위에서 지독한 슬럼프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신지은의 우승은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 힘들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라.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빛나는 결실로 돌아올 것”이라고.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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