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여행 첫날, 버스표 사다가 철렁했습니다

서부원 2026. 7. 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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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헝가리 여행 간다"고 하면 똑같이 하는 말에서 이어집니다.

여행지에 대한 첫 인상은 대개 공항에서 결정된다.

리스트 페렌츠라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름까지 내건, 헝가리를 대표하는 공항이라고 하기엔 사뭇 소박했다.

미니버스 요금으로 결제된 1만 포린트(Ft, 헝가리의 화폐 단위)면 한화로 4만 6000원 남짓이니, 공항부터 숙소까지의 거리를 고려하면 턱 없이 비싼 금액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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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헝가리 여행기] 돌발 상황의 연속, 그래도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을 쌓다

[서부원 기자]

(이전 기사 : "헝가리 여행 간다"고 하면 똑같이 하는 말에서 이어집니다.)

여행지에 대한 첫 인상은 대개 공항에서 결정된다. 오랜 비행 뒤 발을 내디딘 첫 땅인 공항은 사막으로 비유하면 여행자에겐 오아시스와도 같다. 기지개 한 번 제대로 켤 수 없는 비좁은 이코노미석에서 해방된다는 행복감은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설렘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헝가리와의 첫 만남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리스트 페렌츠라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름까지 내건, 헝가리를 대표하는 공항이라고 하기엔 사뭇 소박했다. 건물이 작고 허름한 데다 통로도 두 명이 교행하면 꽉 찰 만큼 비좁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 찾는 곳까지 가는 데 그 흔한 에스컬레이터도 없었다. 노약자를 위한 낡은 승강기 한 대가 전부였다.

입국 수속장과 짐 찾는 곳의 환경은 특히 열악했다. 가는 데마다 혼잡했던 건 여행자가 많아서라기보다 공간이 좁고 동선이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짐을 기다리는 사람과 짐을 끌고 출구를 찾는 사람, 심지어 바로 옆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겹쳐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몇 배 더 길었다. 다음에 헝가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팁이 될진 모르겠지만, 짐을 부치지 않을 만큼 줄이고 도착해선 서두르는 게 능사일 듯하다.

오후 4시, 아직 해가 중천인 데도 공항 밖은 의외로 선선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유럽 곳곳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는 뉴스를 듣곤 잔뜩 긴장했었다. 며칠 사이에 기온이 15도 가까이 널 뛰는 날씨가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래선지 거리에서 만난 이들의 옷차림이 두툼해 보이는 스웨터부터 어깨끈의 민소매 차림까지 천차만별이었다. 햇빛을 피해 그늘에 서면, 유럽의 폭염이 혹 가짜 뉴스 아니었는지 의심될 정도로 쾌적했다.

여행의 본령을 기억하며
 교통 수단을 막론하고 헝가리의 승차권엔 영어가 단 한 단어도 없다. 헝가리어를 모르는 외지인 여행자는 승차권을 확인하는 데도 스마트폰 번역기를 돌려야 한다.
ⓒ 서부원
공항을 빠져나오면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여기 해외여행에 관한 불문율이 있다. 미리 최근에 다녀온 이들이 남긴 여행기와 AI의 도움을 받아 꼼꼼하게 준비하면, 시간과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들이 알려준 대로 따라간다 해도 늘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그들만 믿었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설령 퍼즐 맞춰지듯 예상대로 들어맞는다 해도, 그것이 여행의 만족감으로 고스란히 치환되진 않는다. 여행의 본령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경험이어서다.

'100E'라는 암호 같은 숫자만 기억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부다페스트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의 번호다. 종점인 데아크 페렌츠 광장(Deak Ferenc Ter)에서 내려 도시 곳곳을 사통팔달 연결하는 지하철이나 트램으로 갈아타는 게 '정석'이라고 했다. 오로지 내 관심은 '검표 확인(Validation)'에만 쏠려 있었다.

참고로, '검표 확인(Validation)'이란 승차권을 구매한 후 탑승 전에 스스로 검표 절차를 거치는 걸 말한다. 버스나 지하철, 트램 정류장마다 검표기가 설치되어 있고, 승차권을 넣으면 검표 일시가 찍힌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승차권을 구매한 경우는 검표기에 적힌 QR 코드를 촬영하는 방식이다. 만약 이를 누락하면 부정 탑승으로 간주해 고액의 벌금이 부과된다.

문제는 공항의 셔틀버스는 이 절차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시내의 대중교통과는 별개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고액의 벌금'이라는 말에 꽂혀 여러 사람을 괴롭힌 셈이 됐다. 승차권을 사기도 전에 어디서 검표 확인하느냐고 묻는 이방인 여행자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지하철 역 내부에서도 영어를 병기한 안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의미는커녕 읽기조차 힘든 안내판은 길 찾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하면, 스마트폰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 서부원
결국 사전 준비 부족에다 어쭙잖은 지식이 겹쳐 사고를 치고 말았다.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똑같이 엉뚱한 영어 질문을 계속 던졌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 헝가리어 답변만 남기고 뒤돌아섰다. 틀림없이 공항의 셔틀버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한참을 헤매다 순간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를 뜻하는 헝가리어인 'Busz'가 큼지막하게 쓰인 창구가 보였다. 영어의 's' 발음과 표기를 헝가리어에선 'sz'로 쓴다는 걸, 리스트 페렌츠의 철자를 통해 알게 됐다. 리스트의 헝가리 철자법은 'List'가 아니라 'Liszt'다.

행선지에 관한 질문이 좀 이상하긴 했다. '100E'번 버스는 무조건 데아크 페렌츠 광장에 가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곳을 거쳐 숙소 근처인 레헬 테르(Lehel Ter)역까지 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뒤늦게 깨닫게 된 거지만, 사족처럼 덧붙인 이 장황한 대답이 화근이었다.

쉽지 않았던 헝가리와의 첫 만남
 숙소 근처 시장 입구의 안내판 모습. 장을 보러 갔다가 문을 닫은 뒤여서 허탕을 쳤다. 죄다 헝가리어여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요일은 오후 1시까지만 영업한다는 거였다.
ⓒ 서부원
자상하고 친절한 그의 표정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승차권을 구매했다. 그러고선 승차권을 손에 쥔 채 어디서 검표 확인하느냐고 또다시 동분서주하고 다녔다. 바로 그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행자의 '도움 아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그는 내가 구매한 건 '100E'번 버스가 아닌, 미니밴 승차권이라고 했다. 그제야 영수증에 찍힌 금액이 내가 알고 있던 요금보다 네 배 가까이 비쌌다는 걸 알았다. 결제 금액도 확인하지 않고 카드부터 건넨 내 불찰이었다. 애초 'Busz'만 봤지, 그 앞에 조그맣게 적힌 'mini'를 놓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 와중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헝가리 사람 대부분이 영어에 익숙지 않다는 것. 어느 나라에서든 국제공항은 영어가 상용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헝가리 여행을 위해 모두가 헝가리어를 배워올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껏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봤지만, 이곳만큼 공항에서 영어 소통이 불편했던 경우는 없었다. 그마저도 공항은 나은 편이었다. 부다페스트 시내에서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민을 만나기가 어려울 뿐더러 영어가 병기된 안내판 조차 보기 힘들었다.

이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니었다. 여행 중에 만난 한 독일 관광객도 "영어가 자유롭게 통하는 곳은 도심의 유흥 클럽 뿐"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스마트폰 앱의 도움 없이 헝가리 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스마트폰 앱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민과의 소통이 어렵다 보니, 교통편을 알아볼 수도 없고, 승차권을 끊는 것도 쉽지 않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기도,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어렵다. 식당의 메뉴판과 대형 슈퍼마켓의 상품 매대에도 온통 헝가리어 뿐이었다. 어딜 가든 스마트폰부터 켜고 번역기를 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여행의 피로를 배가 시켰다.
 1875년 헝가리에서 유럽 대륙 최초의 야외 육상 대회를 개최한 걸 기념하여 2000년에 세운 '헝가리 아틀레틱 클럽 기념비'의 모습. 대외적으로 자랑할 만한 유물인데도, 그 흔한 영어 안내판 하나 세워두지 않았다. 동판 아래에 적힌 글귀는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뜻의 헝가리어다.
ⓒ 서부원
미니버스 요금으로 결제된 1만 포린트(Ft, 헝가리의 화폐 단위)면 한화로 4만 6000원 남짓이니, 공항부터 숙소까지의 거리를 고려하면 턱 없이 비싼 금액은 아니다. 덕분에 1시간 넘게 편히 앉아서 도시 경관을 감상하는 사치를 누렸으니 됐다. 또 하나의 '특별한' 여행 경험은 덤이다.

"Köszönöm(쾨쇠넘)."

운전석에서 내려 짐까지 싣고 내려주는 초로의 미니버스 기사에게 부러 "Thank you(땡큐)" 대신 헝가리어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Szia(씨아)'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전 익힌 '유이한' 헝가리어다. 열악한 공항 시설과 영어 소통의 어려움이 대수랴. 헝가리인과의 첫 대면은 일단 성공이다. 여행도 결국 사람이 먼저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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