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어려운 신약 개발 ‘이룸의 법칙’

노승욱 매경이코노미 기자(inyeon@mk.co.kr) 2026. 7. 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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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파마도 잇딴 임상 실패

7월 21일 코오롱티슈진 주가가 개장과 동시에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TG-C(옛 인보사)’의 미국 임상 3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도 나란히 하한가로 직행했다. 회사 측은 예상을 크게 웃돈 위약 반응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번 하한가로 인해 코오롱티슈진은 코스닥 시총순위 10위권 이내에서 15위로 크게 밀렸다.

약가 인하 정책에 제약업체들이 신약 개발로 선회하는 가운데, 신약 개발의 구조적 어려움이 핵심 리스크로 떠올랐다. 신약이 나올수록 후속 신약 개발 성공률이 낮아지는 ‘이룸의 법칙(잠깐용어 참조)’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약가 인하 정책에 제약 업체들이 신약 개발로 선회하는 가운데, 신약 개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룸의 법칙’이 핵심 리스크로 떠올랐다. 사진은 ‘신약 개발의 AI 대전환’을 주제로 진행된 세계지식포럼 모습. (매경DB)
이룸의 법칙이 뭐길래

신약 승인, 갈수록 줄어든다

반도체는 시간이 갈수록 집적도(효율)가 높아진다. ‘무어의 법칙’이다. 신약은 정반대다. 갈수록 약 하나 만드는 데 더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 이를 무어(Moore)를 거꾸로 쓴 ‘이룸(Eroom)의 법칙’이라 부른다.

이룸의 법칙은 2012년 학술지 네이처 리뷰 드러그 디스커버리에 실린 잭 스캐널 등의 논문에서 정식화됐다. 1950년 이후 R&D 투자 10억달러당 승인된 신약 수가 물가를 반영해도 약 9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관찰이다. 반세기 넘게 누적된 이 하락 곡선이, 최근 약가 인하로 인해 신약 개발로 선회 중인 제약·바이오 산업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이룸의 법칙은 최근의 임상 실패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천문학적인 자금과 기술, 심지어 이미 검증된 블록버스터 약물을 동원하고도 후기 임상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보노디스크의 비만·당뇨 치료제 ‘세마글루타이드’다. 이 회사는 세마글루타이드를 알츠하이머병으로 적응증을 넓히려 임상 3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3800명이 넘는 환자에 투약하고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효과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난해 11월 공식 발표했다. 이미 시장에서 성공한 약물조차 새 적응증 앞에서는 똑같이 실패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존슨앤드존슨과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개발하던 항응고제 밀벡시안은 효능 부족으로 임상 3상이 조기에 중단됐다. 이 시험은 1만6000명을 모집해 올해 말 완료를 목표로 했던 대형 프로젝트였다. 화이자는 겸상적혈구병 치료제 인클라쿠맙이 혈관 폐색 위기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2억6000만달러의 손실이 확정됐고, 54억달러를 들여 인수한 글로벌블러드테라퓨틱스의 투자 회수도 불투명해졌다. J&J도 지난해 3월 우울증 후보물질 아티카프란트가 위약 대비 우월한 효과를 보이지 못하자 개발을 중단했다.

국내에선 한올바이오파마와 이뮤노반트가 개발하던 자가면역 항체 ‘바토클리맙’이 지난 4월 갑상선안병증 임상 3상에서 1차 평가변수를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담도암 후보물질 ‘토베시미그’도 임상 2·3상 연계 시험에서 반응률은 달성했으나 핵심 생존 지표는 입증하지 못했다. 개발은 이어지지만 시장은 사실상 실패로 받아들였고, 주가는 하루 만에 19% 넘게 급락했다.

신약 승인 9년마다 반 토막

빅파마도 임상 조기 중단 잇따라

신약 개발의 어려움은 숫자로 확인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기준으로 임상 1상 통과율은 약 63%인데, 2상에서 약 31%로 뚝 떨어진다. 2상이 가장 좁은 관문으로, 대규모 3상을 뒷받침할 유효성 근거를 확보하지 못해 여기서 절반 넘게 걸러진다. 이 고비를 넘긴 3상 통과율은 약 58%다. 결국 임상에 진입한 후보물질이 최종 승인까지 도달하는 비율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후보물질 탐색부터 시판까지 통상 10~15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약 개발은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쏟고도 대부분 실패로 끝나는 ‘고위험 고수익’ 사업인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임상 3상까지 진행한 신약 개발의 실패 비용은 수조원에 달한다.

핵심은 ‘낮게 달린 열매’가 사라졌다는 데 있다. 개발이 용이한 신약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만큼, 기존 명약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압박이 계속해서 커진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약 자체가 부족해 새 약물이 차별성을 입증하기 수월했다. 지금은 주요 질환마다 1차·2차 표준치료제가 겹겹이 존재한다”며 “후발 신약은 기존 치료제 대비 동등 이상, 또는 명확히 우월한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출발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은 인공지능(AI)을 통한 신약 개발이다.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최적화를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기대다. 올 초 임상 단계에 들어간 AI 발굴 신약 프로그램은 173개를 넘어섰다. 단, 이는 전체 신약 개발 과정의 앞 단계에 국한된다. 사람에게서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임상 1~3상은 여전히 시간과 자원이 통째로 드는 병목으로 남아 있다.

이에 업계는 기존 방식과 다른, 새로운 기전의 약을 개발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표적항암제’에서 ‘면역항암제’로 항암제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 대표 사례다. 그럼에도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임상 설계는 복잡해지고 비용과 시간이 늘어나는 이룸의 법칙은 여전히 신약 개발의 숙제로 남는다.

美 FDA도 임상 규제 완화 움직임

빅파마 기술 이전 쇼핑 기대감↑

이룸의 법칙은 자본 시장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국내 증시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올 상반기, 코스피가 크게 뛰는 동안 제약·바이오주는 소외됐다. KRX헬스케어지수에 포함된 제약·바이오 기업 67곳 중 절반이 넘는 34곳이 연초 대비 주가가 하락했다. 미국의 약가 인하 압박과 관세, 금리 변수 등이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지만, 그 저변에 이룸의 법칙이 자리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약가 인하로 수익성이 압박받자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로 무게중심을 옮겨 왔는데, 정작 그 신약 개발의 성공 기대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

증권가는 최근 섹터 부진의 한 요인으로 ‘후기 임상의 연이은 실패’를 지목하며, 불확실한 R&D 전망에만 기댄 구조로는 주가를 지탱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신약 개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이, 제약·바이오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규제당국도 신약 개발의 문턱을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FDA는 지난 2월 1962년 이후 60여년간 사실상의 표준이던 ‘두 건의 임상시험’ 관행 대신, 하나의 잘 통제된 임상시험에 확증적 근거를 결합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6월에는 이를 구체화한 개정 초안 가이던스도 공개했다.

물론 법정 기준인 ‘실질적 유효성’이라는 잣대 자체는 그대로 두고, 그 근거를 구성하는 방식만 현대화하는 것이라며 안전판은 남겨뒀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혁신 신약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룸의 법칙이 국내 제약 업계에는 양극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다. 신약 개발 난도가 높아지며 바이오텍 전반에 대한 투자는 위축되는 반면, 기술력이 검증된 업체에는 러브콜이 이어지는 것. 빅파마들도 유망 신약 후보에 대한 기술 이전에 적극 나서는 만큼, 상위 기업들에는 기회의 문이 더욱 열릴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김현석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2015년부터 대형제약사의 임상 개시 건수는 전임상 단계를 통틀어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성장을 위해서는 대형제약사들의 M&A나 라이선스 계약과 같은 아웃소싱에 대한 의존도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향후 구조적으로 더 많은, 더 큰 규모의 신약 확보를 위한 계약들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잠깐용어*이룸의 법칙(Eroom‘s Law) | 신약 개발이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비용이 커지는 현상. 반도체 집적도가 약 2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Moore)의 법칙’에 빗대어, 철자를 거꾸로 쓴 ‘이룸(Eroom)’으로 명명했다. R&D 투자 10억달러당 승인 신약 수가 약 9년마다 반 토막 난다는 분석에서 비롯됐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9호(2026.07.22~07.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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