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사람을 먹이로 인식"...무서워서 집밖에 못 나가는 일본 주민들
[박은영 기자]
"무서워서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어.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근처에도 나왔다니까."
작년 초 도쿄에서 아키타현으로 이주한 지인이 전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은 예년보다 일찍 시가지에 출몰하고 있는 '곰'이다.
일본은 지금 곰과의 전쟁 중이다. 특히 아키타현, 후쿠시마현 등의 도호쿠(東北) 지방의 피해가 크다.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일본 전역에 곰에 의한 부상자는 238명, 그중 13명이 사망했다. 사고가 가을에 집중되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5월부터 곰에 의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사를 가야 할지 고민이야."
나는 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아직 걸어서 통학 중인 어린 자녀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아이가 통학길에 곰과 마주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와 대화하며 이미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 곰은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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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키타현의 한 주택가에 출몰한 곰. 해당 지역 시민이 차 안에서 촬영한 사진. |
| ⓒ ABS NEWS |
같은 달에 일본 3대 절경으로 꼽히는 교토의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에도 곰이 출몰했다. 곰은 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다를 헤엄쳐 해변으로 올라왔다. 당국은 일대를 전면 통제한 뒤, 밤늦게야 마취총으로 곰을 포획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관광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할 경우에도, 해당 지역이 곰이 출몰하는 곳인지 사전에 조사하고 주의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환경성 등의 추계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는 약 5만 6000마리 정도의 곰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에서 일본보다 곰이 많은 나라는 캐나다와 러시아, 미국 정도에 그친다. 국토 면적을 고려하면 일본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곰 밀집 국가'다.
일본에 거주 중인 곰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혼슈와 시코쿠를 중심으로 거주 중인 '일본반달가슴곰'과 홋카이도 지역에 한정적으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에조불곰'이다.
일본반달가슴곰과 에조불곰
최근 일본 사회를 달구는 뉴스의 주인공은 대부분 일본반달가슴곰이다. 몸무게는 수컷 기준 60~120kg 정도로 날카로운 송곳니와 단단한 앞발을 갖춘 맹수다. 순간 시속은 40~50㎞에 달해, 사람이 마주쳤을 때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달가슴곰보다 더욱 위협적인 존재는 에조불곰이다. 이들은 현재 일본에 존재하는 가장 큰 육상 포유류다. 수컷은 보통 200~400kg, 큰 개체는 500kg을 넘기도 한다. 몸집과 힘이 일본반달가슴곰보다 훨씬 커 한 번 사람을 공격하면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에조불곰에 의한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지난해 7월 홋카이도 후쿠시마초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자전거로 새벽 신문 배달을 하던 50대 남성이 에조불곰의 습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주민은 "곰이 사람 위에 올라타는 것을 봤고, 사람을 수풀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라고 증언했다.
경찰은 수십 미터 떨어진 숲에서 피해자를 발견했다. 시신에는 전신에 발톱 자국과 복부를 중심으로 심한 교상이 남아 있었다. 사건 발생 엿새 후 경찰은 인근 주택에서 해당 곰을 발견해 사살했다. 이후 DNA 분석으로 해당 곰이 4년 전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주민을 숨지게 했던 개체인 것이 확인됐다. "한번 인간의 생활권에 접근한 경험이 있는 곰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학계의 분석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발생한 곰 관련 사고는 대부분 산 속이나 민가로 내려온 곰과 인간이 갑작스럽게 조우하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발적이라 하기 어려운 빈도로 민가에 출몰하는 곰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왜일까?
민가 출몰 곰 증가 이유는?
전문가들은 먼저 곰의 개체수가 늘어난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1960~1980년대까지만 해도 무분별한 포획과 산림 개발로 일본 전역의 곰 개체 수가 크게 감소했었다. 환경성은 이후 곰을 멸종위기 개체군으로 지정해 보호해 왔다. 그러나 이 보호 정책이 오히려 곰의 개채수가 급속히 회복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기후 변화로 곰들의 먹을거리가 줄어든 것도 이유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물고기가 줄고, 숲에는 도토리나 너도밤나무 같은 열매가 없어졌다. 각지에서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곰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곰들이 자연 생태계에서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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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전형적인 사토야마중 하나인 교토의 미야마(美山). 인구 감소로 사토야마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
| ⓒ 요미우리 테리비 화면 캡쳐 |
곰 대처 용품 판매 급증
일본 정부는 대응 마련에 고심 중이다. 지난 2024년에는 일본반달가슴곰을 보호 대상에서 '지정관리조수'로 바꿨다. 이제 각 지자체의 판단으로 곰의 숫자를 관리,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곰에 의해 인간의 생명이 위협 당할 경우, 지자체의 판단으로 신속하게 포획, 사살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했다.
곰 퇴치를 위한 각종 상품들도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곰에게 사람의 존재를 알리는 방울과 곰 퇴치 스프레이 등은 이미 전국의 100엔 숍 등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이 외에도 전기 울타리나 감시카메라, 곰 전용 드론 등이 연이어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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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 퇴치를 위해 활용되는 늑대형 로봇 |
| ⓒ 닛테레 뉴스 화면 캡쳐 |
곰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진 일본. 자연환경의 변화와 인구 감소가 만들어낸 이 새로운 위기를 일본 사회는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곰과 사람이 공존 가능한 해법을 찾기 위한 일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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