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나서자 靑도 “사실 아냐” 참전...한·미 진실 게임 번진 쿠팡 사태

미 하원 법사위원회의 ‘한국의 미국 기업 차별’ 보고서에 대해 2일 외교부가 유감을 표하고 국정원이 정면 반박한 데 이어 3일 청와대도 “사실과 매우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이 2일(현지시간) “이재명 정부는 쿠팡을 콕 찍고 있다”며 보고서 주장에 힘을 싣는 입장을 내자 청와대가 직접 나선 모양새인데, 쿠팡 정보 유출 사태가 기업의 불법 행위를 넘어 한국 정부 대 미국 의회 및 행정부 간 진실 게임으로 번지는 이례적 상황이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쿠팡 조사가 차별적이고 표적화돼 있으며 부당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서는 사실과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보고서의 핵심 쟁점인 청와대의 사전 인지 및 관여 여부에 대해 “마치 대통령을 포함해 청와대가 사전에 쿠팡에게 장비 현지 회수를 지시한 걸 알고 있는 것처럼 기술돼 있는데, 이것 또한 사실이 전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어 “청와대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정보 장비를 중국에서 회수해 온 것을 사전에 알거나 지시·관여한 바 없다”며 “12월 중순께 쿠팡 관계자로부터 ‘이를 회수했다, 굿뉴스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미 정부의 시각은 정반대다. 백악관 당국자는 2일(현지시간) 한국 언론 질의에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가 미국 기술기업들을 차별적으로 표적으로 삼는 상황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어떤 합리적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이재명 정부는 쿠팡을 콕 찍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행정부가 사실상 하원 법사위 보고서의 지적을 합당하다고 수용한 셈이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청와대의 관여 정황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쿠팡 직원이 지난해 12월 15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국정원과 공조해 상하이에서 용의자와 장비를 확보했다”고 알렸고, 이 관계자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튿날 해당 관계자가 대통령 보고 사실을 확인하며 쿠팡 측에 “국정원 지시를 따르라”고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개인정보 유출 규모를 놓고도 양측 입장은 갈린다. 위 실장은 “해당 기관 조사에 따르면 3300만 건 이상의 인적 정보가 유출된 것”이라며 “쿠팡 측과 용의자 측은 3000건 정도 정보만 빼내 갔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단순화해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보고서는 전직 직원이 훔친 키로 최대 3370만개 계정에 접근 가능했지만, 실제 보관한 정보는 약 3000개 계정 분량의 저민감도 데이터란 쿠팡 측 설명에 무게를 실었다.
국정원의 관여 수준과 방식도 양 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국정원은 지난 2일 “쿠팡 측 요청을 전달받기 전까지 실무 직원은 물론 어느 누구도 IT 장비의 존재와 확보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미 “지난해 11월 30일 박대준 당시 쿠팡 대표와 김창섭 국정원 3차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전직 직원이 고객 데이터를 저장한 기기의 회수 필요성이 논의됐다”고 적었다. 이어 12월 1일 국정원 관계자들이 쿠팡 본사를 찾아 “국정원이 이 기기들을 돌려받는 데 큰 관심이 있다”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회수 과정에서 강압으로 볼 만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도 평행선이다. 국정원은 “안전한 국내 이송을 지원했을 뿐 지시·명령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고서는 국정원이 12월 2일 국가정보원법 5조를 명시한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구했고, 이를 쿠팡 측 로펌들은 “형식은 요청이나 한국법상 선택 사항이 아닌 의무”로 판단했다고 적었다. 또 국정원이 같은 달 6일 전직 직원에게 보낼 이메일의 “구체적인 내용과 어조까지 지시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정부가 대응 수위를 높이는 것도 이처럼 보고서가 쿠팡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근거로 한국 정부에 대한 왜곡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날 박일 외교부 대변인이 보고서에 대해 “사실과 다른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유감을 표명한 뒤, 국정원은 약 4시간 뒤 “명백한 허위”라며 별도 입장을 냈다. 이어 이날 백악관과 청와대까지 나서면서 사안은 쿠팡과 국내 기관 간 공방을 넘어 미 정부 및 의회와 한국 정부 간 충돌 양상으로 확산했다.
보고서는 JD 밴스 미 부통령이 지난 1월 김민석 국무총리를 만나 쿠팡을 포함한 미 기술기업을 표적으로 삼는 문제를 거론하며 “경고했다”고도 적었다. 반면 김 총리는 당시 회동 직후 “밴스 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응하는 한국의 법적 시스템을 이해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한국은 “국내법에 따른 비차별적 조사”라고, 미국은 “미국 기업 차별”이라고 보는 간극이 이때부터 명확했던 셈이다.
한국 정부가 제기한 ‘쿠팡 대미 로비’ 프레임이 또 다른 불씨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미 정치권에서는 미국 의원들이 돈 몇푼에 특정 기업의 편을 들었다는 뉘앙스에 반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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