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호남 반도체 서두르면서 왜 원전 증설은 멈칫거리나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과 관련해 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원전 증설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김 장관은 어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호남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이 6.3GW 정도라며 “현재의 전력원을 추가로 조금만 보충하면 채울 수 있는 양”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현재 계획 수준에선 서남권의 기존 한빛원전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감당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김 장관은 호남 반도체 단지가 현재 계획된 팹 4기 수준이 아니라 용인 클러스터급으로 규모가 커질 경우에는 원전 증설도 고민해 볼 영역이라고 했다. 이 역시 지역 수용성을 전제로 달았다.
전력 주무장관의 이런 인식은 반도체 업계의 판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반도체 업계는 단순히 전력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보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력은 안정적인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원전 확대와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 발전 추진 등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내세우지만, 재생에너지는 시간대와 자연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제각각이다. 전력이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하는 반도체 산업에선 안심하고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선 기저 전원인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게 업계 요구의 핵심이다.
게다가 전력은 비단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각지에 계획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엔 18.4GW의 전력이 필요하고,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는 아직도 3GW를 확보하지 못했다. 다 합치면 원전 20기가 필요한 규모다.
정부는 국가의 명운을 건 사업이라며 이번 메가 클러스터 계획을 주도했다. 기업에는 위험이 따르는 대규모 투자를 서두르라 해놓고, 정작 정부가 책임져야 할 핵심 인프라 조성에 추상적이고 모호한 입장을 보이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사업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에너지 정책 기조를 전향적으로 수정하고, 주 52시간 근로 등 업계의 발목을 잡는 규제 해소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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