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美대법원의 반전…“우편투표 유효”, 트럼프 성추행 재검토 요청 기각

김형구 2026. 6. 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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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대법원 건물에서 대법관들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의 부임 후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 존 로버츠 대법원장, 새무얼 앨리토 대법관,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윗줄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닐 고서치 대법관, 브렛 캐버노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우편투표의 유효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편투표는 통상 민주당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우편투표의 선거 조작 가능성을 주장해 온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방대법원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연루된 과거 성추행 사건 재검토 청구도 기각했다. 정부 독립기관 인사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 권한은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 해임에는 제동을 걸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공화당 전국위원회(RNC)와 미시시피주 공화당이 낸 미시시피주 우편투표법 관련 소송에서 “연방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관은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보수 우위 구도인데,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과 같은 쪽에 서 다수 의견을 구성했다.


“선거일 후 도착 우편투표도 유효표”


미시시피주 선거법은 선거일까지 소인이 찍힌 우편투표는 선거일 이후 5근무일 이내 도착한 경우 유효표로 포함한다. 공화당 전국위는 “연방법은 단일 선거일을 규정하고 있어 선거일 당일까지 투표용지가 도착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은 반대로 미시시피주법이 연방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봤지만, 상고심(연방대법원)은 결국 원고 주장을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우편투표를 줄곧 부정선거 원인으로 지목해 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잖은 정치적 부담이 될 전망이다. 우편투표는 민주당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투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CNN은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이라며 “공화당의 11월 중간선거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고 짚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의 투표용지 처리 센터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주(州) 예비선거 투표용지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투표법 개정안 처리 필요성 더 커져”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밀어붙이고 있는 이른바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SAVE America Act, 투표자격보호법) 처리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공세적으로 나섰다.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은 유권자 등록 시 시민권 증명, 투표 전 신분증 제출을 의무화하고 우편투표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을 통해 “오늘 연방대법원에서 유권자 권리와 관련해 엄청난 패배가 있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나눈 대화에서도 “(이번 판결에) 다소 놀랐다. 모든 유권자는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 시민권 증명서를 제시해야 하며, 예외가 아니면 우편투표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 요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이 공화당 주장을 기각하면서 현행 우편투표 제도는 11월 중간선거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미시시피주를 포함한 14개 주와 워싱턴 DC는 선거일 이후 일정 기간 도착한 투표용지를 유효표로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 트럼프의 연방거래위원 해임에 “적법”


연방대법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권과 관련해서는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민주당 추천 인사였던 레베카 켈리 슬로터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을 해임한 데 대해 6대3으로 적법 판결을 내렸다.

정부 독립기관 인사는 부정행위, 근무 태만 등 명백한 사유 없이 정책적 입장차를 이유로 해임할 수 없다는 1935년 판례를 사실상 뒤집는 판결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30년대부터 미 대통령들이 추구해 온 결정”이라며 “대통령 권한과 관련해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라고 환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연준 이사 해임 건엔 “소송 종결까지 직 유지”


대법원은 그러나 연준 이사 해임 건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주택담보대출 관련 사기 의혹을 이유로 리사 쿡 연준 이사를 해임한 데 대해 “당사자에게 충분한 해명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본안 소송이 끝날 때까지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에 보수 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같은 의견을 냈는데, 로버츠 대법원장은 “미국의 (그리고 전 세계의) 가장 중요한 금융기관 중 하나인 연준의 지위와 관련해 대중을 불확실한 상황에 방치하거나 의구심을 심어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사실상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반영한 판결로 풀이된다.

이번 판결에 쿡 이사는 “(대통령이) 조작된 구실로 해임을 시도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비위 인사에 대해 즉각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후속 조치 착수 의지를 드러냈다.


트럼프 패소 과거 성추행 사건, 원심 유지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패소한 성추행 사건의 판결을 재검토해 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게 500만 달러(약 77억원)를 배상하도록 한 원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캐럴은 1996년 뉴욕의 한 백화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민사소송을 내 1·2심에서 성추행이 인정돼 승소했다. 캐럴은 이와 별도로 제기한 명예훼손 위자료 소송에서도 1·2심에서 위자료 약 8330만 달러(약 1285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후 “나를 겨냥한 정치적인 사법 무기화와 법적 공격, 터무니없는 명예훼손 주장에 맞서 계속 싸우겠다”고 했다.

이날 판결들은 보수 우위 구도의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과 권한 등을 일방적으로 추종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상당수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쪽에 의견을 내면서 곧 선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시민권 제한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의제에 다시 제동을 거는 판결이 나올지 주목된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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