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렸다”던 홍명보, 그가 버린 건 ‘한국 축구’였다

박린 2026. 6. 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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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5일(현지시간) 남아공전 패배 이후 베이스캠프인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돌아와 사포판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회복훈련을 하기 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한국 축구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어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2년 전 홍명보(57)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수락하며 던진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버린 건 자신이 아니라 한국 축구였다.

48개국으로 확대된 월드컵에서 32강조차 오르지 못했다. 과거 32개국 체제로 환산하면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는 치욕이다. 손흥민·이강인·김민재라는 역대급 황금세대를 손에 쥐고도 이 지경이 됐다.

문제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가 감독을 맡은 2014년(1무 2패)과 이번 월드컵은 2002년 이후 24년간 6번의 월드컵에서 한국이 거둔 성적 중 최하위 1, 2위다. 유리한 조 편성에 타 팀 대비 압도적으로 짧은 이동 거리까지 감안하면, 의리 축구 논란을 낳았던 2014년보다 이번이 더 나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아공전을 본 팬들은 홍명보호에 전술이 있나 의아해했다. 선수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이강인에게 공을 주고 나 몰라라 하는 듯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 패스 횟수 1853회로 전체 48개국 중 스페인·독일에 이어 3위를 기록했지만 오히려 불명예다. 홍명보가 고집하는 스리백 축구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안전하게 볼을 돌리는 의미 없는 백패스이기 때문이다. 자리 지키기, 실점 안 하기에 가까웠다.

홍 감독이 강조한 건 “포켓에 있는 사람들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줘야 해”였다. 팬들 사이에서 전술 ‘라볼피아나’가 ‘나 볼 피하나’로 패러디됐고, ‘뒤키타카(뒤+티키타카)’라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페널티 박스 안에 선수가 없었다. 후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때 이강인이 코치에게 다급하게 뛰어가 무슨 말을 했다. 입 모양을 읽은 이들에 의하면 “재성이 형 지금 들어와야 돼, 나중에 들어오면 늦어요”라는 내용인 듯했다. 선수가 감독의 작전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읽혔다.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3차전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기에서 패한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은 이강인을 오현규가 다독이고 있다. 강정현 기자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에는 홍 감독이 경기를 앞두고 ‘FIGHT’ 한 단어만 띄워 놓고 “싸워, 오늘 경기장 나가서 싸워”라고 한다. 세계 무대 전술 회의가 아니라 중학교 체육 선생님의 훈시에 가까웠다. 대회 두 달 전, 주앙 아로소 수석코치가 포르투갈 매체 인터뷰에서 “대한축구협회는 한국 감독이 팀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내게 원했던 역할은 필드 코치”라고 밝혀 ‘홍명보는 얼굴마담’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고지대 적응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도 패착이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18일 솔트레이크시티 사전 캠프부터 한 달 넘게 이어진 장기 합숙으로 선수단 체력이 고갈됐고, 저지대 전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해발 540m의 고온다습한 몬테레이에서 치러진 남아공전에서 고전했다. 조별리그 기간 한국의 이동 거리는 640㎞로 남아공(약 4000㎞), 체코(4500㎞)에 비해 압도적으로 짧았다. 국경도 넘지 않았다. 그래도 뛰지 못했다. 홍 감독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선수 기용에서도 문제가 보였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주전 윙백으로 뛰며 공격포인트를 꾸준히 쌓아온 옌스 카스트로프는 오로지 월드컵을 위해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그러나 홍 감독은 체코전, 멕시코전 내내 그를 벤치에만 앉혔다. 남아공전 후반에야 45분을 뛰었지만 너무 늦었다.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3차전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기. 손흥민이 0-1로 남아공에게 패배 후 아쉬워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남아공전 교체 투입 후 기자가 “감독에게 특별한 지시를 받았냐”고 묻자 손흥민은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고 답했다. 세계적인 공격수를 후반에 투입하면서 별다른 지시도 하지 않은 것이다.

김민재는 교체 직후 양팔을 벌리는 제스처로 코치진에 대한 불만 의혹을 샀다. 편지로 해명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팀은 내내 삐걱거렸고 연령대별로 따로 논다는 얘기는 대회 내내 들렸다. 홍 감독이 선수단을 장악하지 못했다. 32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진 뒤 김진규 등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두가 머리를 박고 뛰겠다”고 했다. 이전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추정이 가능한 말이었다. 설영우는 남아공전이 끝난 지 1시간 만에 악플 법적 대응을 선언했다가 “오버래핑보다 고소 선언이 빠르다”는 조롱을 받았다.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이유를 찾기 쉽지 않다”고 했다. “2014년 때는 지금의 50배는 어려웠다”는 말도 했다. 자신이 감독을 맡은 두 번의 월드컵 모두 조별리그에서 짐을 싸고도 나오는 말이 이것이었다.

30일 귀국길에는 8명의 선수만 동행하고, 손흥민을 포함한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 개별 입국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귀국 행사가 전면 취소됐다. 2014년엔 팬들이 던진 호박엿을 맞으며 고개를 숙였던 홍 감독이다. 이번엔 그 자리조차 피했다. 이것이 두 번 월드컵에 다녀온 홍명보호의 마지막 장면이다.

과달라하라=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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