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력에 나도 당황", 절망·분노 부른 홍명보 감독의 현실인식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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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에 답하는 홍명보 감독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남아공에 패해 32강 합류를 위해 다른 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25일(현지시간) 팀 베이스캠프인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돌아와 사포판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회복훈련을 했다. 훈련에 앞서 홍명보 감독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26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에 위치한 치바스 바예 베르데 베이스캠프에서 조별리그를 결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은 전날인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로 충격패를 당하며 1승 2패(승점 3) 조 3위로 추락, 32강 자력 진출이 무산된 상태다.
남아공전은 한국축구 역대 월드컵 도전사에서 손꼽힐 만한 최악의 경기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역대 최고의 조편성이라고 불릴만큼 많은 기대를 받았고, 특히 남아공은 경기 직전 피파랭킹 60위로 한국이 가장 반드시 잡아야할 1승 상대로 전망된 팀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경기 내내 의미 없는 점유율만 높았을 뿐 남아공의 효율적인 역습 공세에 일방적으로 고전했다. 앞선 두 경기와 달리, 선수들의 몸상태와 경기력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볼 터치와 패스에서 실수가 반복됐고, 경기 내내 시원한 슛 한 번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심지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후방에 남아 멀뚱멀뚱 서 있었다.
"이기려고 한 경기가 맞나 싶다"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하나같이 깊은 충격에 빠졌다. 해설진과 축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기려고 한 경기가 맞나 싶다"며 경악을 금지못했다. 취재진 사이에서도 '선수단 사이에서 집단 식중독이라도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까지 나올 만큼 월드컵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경기가 펼쳐졌다.
자연히 조별리그 기자회견에서는 대표팀 사령탑인 홍명보 감독의 입장표명에 관심이 쏠렸다. 대체 월드컵에서 어쩌다 이런 경기력이 나왔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수장이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날 보여준 홍명보 감독의 현실인식은 축구팬들을 또 한 번 절망과 분노에 빠뜨렸다.
"데이터를 봤을 때 멕시코전보다 뛰는 양은 조금 줄었지만 고강도는 조금 더 많았다.앞선 경기들과 체력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는데 선수들이 굉장히 느려 보였다. 데이터나 전술적으로는 모두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선수들의 몸 상태와 경기력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솔직히 왜 갑자기 이런 경기력이 나왔는지 조금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
남아공 부진의 원인에 대한 질문에 홍명보 감독의 답변이다. 경기가 끝난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팀의 수장이 아직 제대로 된 원인을 파악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남아공전이 열린 멕시코 몬테레이의 '찜통더위'를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경기 전날까지만 해도 인터뷰에서 "덥다고 느낄 수 있지만, 경기하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면서 "비겨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선수들에게 반드시 이기겠다는 마음을 가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를 패배한 후에는 슬쩍 말이 바뀌었다. 홍 감독은 "선수들의 심리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 그 다음에 날씨가 갑자기 확 더운 상태에서 뛰었는데 그것이 선수들과 잘 맞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동떨어진 현실 인식
일각에선 홍명보 감독이 남아공전을 대비한 대비가 부실했던 게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홍 감독은 남아공전보다 앞선 두 경기에 더 초점을 맞춰 조별리그를 준비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지난해 조추첨을 통하여 고지대(1,2차전이 열린 멕시코 과달라하라 아크론 스타디움)과 고온다습한 도시(3차전 몬테레이)에서 경기를 치르는게 확정됐다. 어느 곳에 초점을 둘까 했는데 1,2차전에 맞추는 게 더 낫다고 견해를 모았다. 1차전은 잘 됐는데, 멕시코와의 2차전이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다. 승점을 땄으면 3차전은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됐다. 결과적으로 가장 좋지 않은 시나리오로 왔다."
2차전을 비겼더라면, 남아공과의 3차전을 부담없이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대인 남아공은 최종전에서 동일한 기후조건에다가, 한국을 반드시 이겨야만하는 더 불리한 상황에서 반전을 이뤄냈다. 남아공의 휴고 브로스 감독은 경기 후 "한국은 예상한 대로 경기를 했다. 우리가 준비한 전술이 잘 통했다"고 진단하며 철저한 연구와 준비에 의한 승리였음을 강조한 바 있다. 2차전 멕시코전 패배를 탓하며 '스노우볼'이 되었다는 홍 감독의 진단은, 결국 남아공전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는 변명에 불과하다.
현재 선수단 분위기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뒷말이 나오고 있다. 주장 손흥민의 선발제외, 김민재의 남아공전 교체 과정, 설영우의 악플러 고소 선언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대표팀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에 와서 안팎으로 뒤숭숭하지 않은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 브라질 대회 나갔을 땐 지금의 50배정도는 어려웠다"며 여론의 분위기와 다소 동떨어진 현실인식을 드러냈다.
홍명보 감독의 전술, 과연 문제 없었나
특히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홍명보 감독의 전술과 경기운영능력이었다. 남아공전에서 후반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공격가담을 주저하거나, 페널티박스에 볼을 투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전술변화나 작전지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국내는 물론 외신에서도 '한국이 이런 경기력으로는 32강에 올라가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다'며 혹평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말로는 '결과는 감독의 책임'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전술이나 경기운영상의 문제가 언급될 때는 '일반론'을 꺼내는 것으로 회피하며 말을 돌렸다.
"축구가 모든 게 준비한 대로 되지 않는다. 훈련 때는 잘 되다가도 실전에서는 안될 때도 있다. 나도 선수 생활했지만 선수들이 어떤 멘탈을 가지고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 코치진에서 모든 걸 준비시키지만 경기장에서 얼마나 나올지는 우리도 모른다. 수십 개의 상황을 두고 준비하나 여러 돌발변수가 나올 수 있다. 그걸 대처하는 건 선수가 해야 한다. 다만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것이다."
결국 홍명보 감독의 기자회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감독이니까 책임은 져야하는데, 우리가 왜 못했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로 요약된다. 이날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 최악의 월드컵(남아공 쇼크, 조별리그 탈락위기)을 초래한 것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대회 준비 부족이나 전술적 실패에 대한 성찰이나 인정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제3자인 축구평론가가 남의 팀을 평가하는 듯한 '유체이탈식 화법'은 성난 여론에 오히려 기름만 부었다.
국내외 축구전문가들은 이번 부진의 책임이 홍 감독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겨냥하고 있다.국가대표 출신의 많은 전문가들, 박지성을 포함해 이영표, 이천수, 이을용, 이근호, 김영광, 그리고 신문선 명지대 교수 등이 이구동성으로 비판에 가세했다. 영국의 'BBC', 미국의 'ESPN'과 '디 애슬레틱' 등도 한국의 남아공전 부진을 집중분석하며 홍명보 감독의 잘못된 경기운영을 부진의 원인으로 꼬집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은 이미 12년 전에 실패한 홍명보 감독을 온갖 절차적 논란을 일으켜가며 선임한 대한축구협회의 책임론과 함께, 홍 감독 경질 요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지도자로서의 권위와 신뢰 등을 잃은 홍명보 감독은, 32강 진출 여부와 별개로 더 이상 대표팀을 이끌 자격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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