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월드컵 경기력인가

박린 2026. 6. 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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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의 테킬라 샷


남아공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주저앉아 괴로워하는 이강인. 안정환 해설위원은 이강인의 고군분투를 높이 사면서도 한국의 전술·전략·의지·팀워크 부재를 두루 꼬집고 “이 정도 경기력은 감독 책임”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정현 기자

월드컵에서 이렇게 답답한 경기가 또 있었을까. 이번 대회 3경기 중 최악이었다. 참혹했다. 아무것도 못했다. 의욕도 없어 보였다.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전술? 없었다. 전술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은 손흥민을 후반전에 상대의 힘이 떨어질 때 쓰려고 했던 것 같다. 나도 선수 시절 승부처에 교체로 들어간 적이 많다. 그런데 안 먹혔다.

손흥민 대신 선발 출전한 오현규는 전반 막판까지 볼 터치가 단 6번 뿐이었다. 황인범과 백승호의 중원 조합도, 윙백의 크로스도 아쉬웠다.

이강인이 혼자 공격을 이끌고 수비도 정말 열심히 해줬다. 그런데 상대 두세 명에 둘러싸였다. 우리나라가 1, 2차전을 치르면서 상대는 우리를 다 안다. 이미 전술이 노출됐다. 전술은 한 가지만 가지고 가면 안 된다. 상대에 따라 변화를 줘야 한다.

지고 있는데도 모험을 걸거나 포메이션이나 전술 변화가 없었다. 골을 넣으려면 박스로 올라가야 하는데, 뒤쪽에 숫자가 너무 많았다. 남아공도 매 경기 다른 전술을 쓰고 실패를 겪으면서 변화를 준 끝에 결국 이겼다. 난 대회 전부터 남아공이 약하지 않다고 말해왔다. 월드컵 무대에서 도대체 1승 제물이 어디 있나.

절실함도 없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도 아니다. 이게 월드컵인지 모르겠다. 한 골 넣기가 이렇게 힘든 거다. 2002년엔 모두가 절실하게 뛰었다. 남아공이 목숨 걸고 뛰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기나.

손흥민이 남아공전 실점 후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뉴시스


대표팀 내부 사정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선수로 뛰어봤으니 뭔가 문제가 있거나 곪아 터진 것처럼 느껴졌다. 컨디셔닝 조절 실패일까.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원팀을 보여주지 못했다.

월드컵마다 매번 이슈는 있었다. 이겨내느냐, 못 이겨내느냐의 차이였다.

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 도중 짐을 싼 적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철이 없고 생각이 짧았다.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열심히 했다. 그때 잘못 판단했다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았을 거다. 경기 뛰는 선수도 중요하지만, 뒤에 있는 선수들도 중요하다. 축구는 개인이 아닌 팀이 하는 거다. 제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메시를 보유한 아르헨티나도 자기를 버리고 희생한다.

남아공 선수들이 믹스트존을 크게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면서 우리 선수와 충돌도 했다던데, 실력에서 진 데다 자존심까지 상한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강정현 기자

우리나라는 아직 떨어진 건 아니고 확률상 기회는 있다. 각 조 3위 팀 중 상위 8개 팀에 들 수 있을지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 토너먼트 진출 기회가 남아있다는 게 오히려 더 굴욕적이다.

32강에 행운으로 올라가든, 나아가 16강에 가더라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바꿀 건 싹 다 바꿔야 한다.

감독 책임이 맞다. 선수들의 개성이 있다고 해도, 결국 팀을 만드는 건 감독이다. 카를로 안첼로티나 등은 분위기를 잡고 매니징을 하며, 전술은 주로 코치들이 짠다. 32강에 올라가든 어떤 성적을 내든, 경기력만 따져보면 책임은 불가피하다.

과거 실패 후 시간이 있었는데도 이 모양이다. 다 완전히 깨끗이 청소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거다. 일본을 보면 부럽고 질투가 난다. 미리 철저하게 준비했으니, 결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손흥민의 교체 타이밍을 두고 논쟁이 오가는데, 손흥민을 아꼈다고 해서 선발로 들어간 선수가 안 좋은 선수라는 뜻인가. 그런 식의 비난은 해당 선수에게 자괴감이 들게 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대회 전부터 대표팀을 주위에서 너무 흔들어 놓은 건 아닐까. 저부터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대표팀을 흔든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일각에서 ‘광탈(광속 탈락)할 거다’, ‘2패할 거다’라는 등 악담을 퍼부었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지만, 일부 소수가 심적으로 선수들이 다 지길 바라는 듯한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졌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개선하고 바꿔야 할 점을 지적해줘야 한다.

안정환 해설위원

정리=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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