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의 번역, 이 땅에 도래한 천국의 감동을 살리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는 한국에서 가장 애창되는 찬송 중 하나다. 작사자 찰스 F 버틀러에 관해서는 1890년대에 활동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작곡자 제임스 M 블랙(1856~1938)은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을 배웠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의 감리교회에서 평생을 주일학교 교사로 1500곡이 넘는 찬송을 남겼다. 그는 1898년에 출판한 찬송집 ‘찬양의 합창(The Chorus of Praise)’ 11장에 이 찬송곡을 처음 수록했다.

이 미국발 복음성가가 한국교회 성도들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명작으로 각인된 결정적인 계기는 근대 한국 문학의 거장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천재적인 번역 덕분이었다. 이 곡은 1919년 성결교의 ‘신증복음가’ 109장에 처음 수록됐으나, 당시에는 원문의 직역에 치우친 서툰 가사 탓에 영적 감동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했다. 신증복음가의 가사를 현대 문법에 맞춰 소개한다.
“죄악에서 구원 얻어 중한 짐을 벗고 보니/ 나의 마음에 이 세상도 천국같이 감각되네/ 오 할렐루야 예수의 죄사하심 밝히 알고/ 주 예수와 동행하면 어디든지 천국일세.”
원문을 직역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있지만, 우리말 가사로서의 어색함이 역력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장로교 ‘신편 찬송가’ 편집위원회는 당대 최고의 문학가 춘원 이광수에게 번역을 의뢰했다.

그 결과 1935년 이 찬송집 358장에 수록된 그의 번역은 한국 찬송가 역사상 가장 유려하고 시적인 개사로, 찬송의 번역 수준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오 할렐루야 주 예수 지난 죄는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영어 원문의 내용은 “세상의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을 아는 것은 천국이다”라는 객관적이고 덤덤한 서술이다. 그러나 이광수는 이를 “내가 죄 사함 받고 보니 슬픔 많은 세상이 천국으로 변했다”는 체험적이고 고백적인 영성의 언어로 풀어냈다. 환경의 변화가 아닌 내 심령의 대전환을 통해 세상이 밝게 변해 보이고, 척박한 슬픔의 한복판에서도 이미 도래한 천국을 맛보며 산다는 이 간증적인 가사는 모진 고난의 시대를 버텨내던 민중의 시린 마음에 따뜻한 위로와 강인한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이러한 고백은 2절 가사에도 이어진다. 원문 가사의 내용은 “예수님이 미소 짓는 얼굴을 보여주시기 전까지는 천국이 너무 멀리 있었네. 이제 내 영혼 속에 시작된 천국은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평면적인 고백에 머물러 있다. 이것을 이광수는 4·4조의 음수율에 얹어 ‘멀리 뵈던 하늘나라’가 내 맘속에 이뤄져 ‘날로 날로 가깝도다’라는 역동적인 영적 체험으로 전환 시켰다. 원문이 천국의 영속성을 말한다면, 이광수의 노랫말은 천국의 현재성과 확장성을 노래한다.
내가 천국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내게 매일 새롭고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발상의 전환은 3절에 가서 정점을 찍는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영어 원문의 오두막집(cottage)과 호화저택(mansion)이라는 단어를 우리 정서에 맞게 ‘초막’과 ‘궁궐’로 대조시킨 점도 춘원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 이러한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 환경의 제약을 뛰어넘는 천국 생활, 즉 임마누엘 신앙을 단 두 줄의 완벽한 4·4조 음수율로 압축해 낸 그의 문학적 역량 또한 놀랍다.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구원의 신비한 체험을 함축적인 단어로 표현한 이 번역 덕분에 당시 성도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환경을 극복하고 주님과 함께 천국 생활을 누리게 됐다.
춘원은 음악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후렴 부분에서 멜로디와 가사의 강약을 정확히 일치시켰다. “오 할렐루야 주 예수”에서 ‘루’를 강박에 둠으로써 ‘할렐루야’라는 단어의 악센트와 일치시켰고, “주 예수”에서 ‘주’가 강조되도록 배치했다. 이는 지금의 “할렐루야 찬양하세”로 수정된 것보다 훨씬 뛰어난 번역이다.
춘원 이광수의 기독교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는 1917년 ‘청춘’에 발표한 논문 ‘금일 조선 교회의 결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 글을 통해 교회가 단순히 저 세상의 천국만을 갈구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과 희생 정신을 본받아 작금의 피폐해진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 문명을 계몽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개혁적 기독교관은, 그가 왜 가사 속에서 내세의 천국보다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천국과 현실을 변화시키는 하늘나라의 역동성에 주목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이 찬송에는 한국 교회사의 고비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수많은 신앙 선배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우리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임마누엘의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거친 세상에서도 천국을 일구어내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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