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열어줬는데…이란, 핵사찰 부정하며 호르무즈 통행료 준비
미국과 이란이 진행한 전쟁 종식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 폐기를 위한 ‘스위스 협상’이 끝난지 불과 이틀만에 핵심 합의안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전날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원유 수출 관련 제재를 한시적으로 해제했지만, 이란은 사찰에 동의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에 대해서도 양측이 맺은 양해각서(MOU)에 따라 본협상이 진행되는 60일 이후엔 통행료를 징수하기 위한 준비 절차에 착수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핵사찰 완전히 동의…아니라면 회의 취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현장 일정을 위해 도착한 펜실베이니아 리딩 공항에서 IAEA 사찰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이란의 주장에 대해 “그들은 틀렸다. 그들도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만약 그들의 말이 맞다면 지금 당장 회의를 취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부에서 우리에게 (사찰 수용 의사를)알려줬고 우리는 그 내용을 100% 파악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사찰단의 방문 일정을 묻는 질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고, 적절한 시기에”라며 일정을 특정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도 “이란은 미래에 걸쳐(무한정!!!) 최고 수준의 핵사찰에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동의했고 이는 ‘핵 투명성(Nuclear Honesty)’을 보장할 것”이라며 “만약 이란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추가 협상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란은 IAEA의 핵사찰을 수용했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핵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을 수용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며 “사찰 재개 여부는 향후 (종전) 협상 과정과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의 중단’ 위협하면서도 “추가 봉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시설 사찰에 대한 이란의 전면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필요할 경우 해상봉쇄를 재개할 수 있도록 모든 함정은 현재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어제 해협을 통해 1900만 배럴의 원유가 빠져나왔다”며 “유가는 급락하고 있으며, 세상은 훨씬 더 안전한 곳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국제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호르무즈해협이 재차 봉쇄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해협 개방과 IAEA의 사찰 수용을 조건으로 60일간 허용하기로 한 이란의 원유 수출은 물론, 미국산 농산물 구입에만 쓰는 것을 전제로 한 이란의 동결자금 해제 계획에 대해서도 철회할 뜻을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동결자금은 미국이 통제하는 에스크로 계좌에 보관돼 무기 개발이나 테러단체 지원 등으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며 “(농산물 공급은)이란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물품들로, 인도주의적 위기인 만큼 너무 늦기 전에 지금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의 농민층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 꼽히지만, 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에 따른 비료 가격 폭등 등으로 지지세가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급한 제재 해제”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동결자금 해제를 통해 미국산 농산물의 수출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란은 미국이 해제를 약속한 막대한 동결자금의 사용처와 관련해서도 “이란은 (동결자금으로)미국산 농산물만을 구매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60일 뒤’ 호르무즈 통행료 시행되나
이런 가운에 이란은 이날 오만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호르무즈해협의 향후 통항 관리, 이와 관련해 제공될 서비스 및 국제 기준에 따른 관련 비용 청구 문제에 합의하기 위해 양국 외무부 산하 공동 실무 그룹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경제적 지원 계획을 고수하면서까지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미국과의 본협상이 끝나는 60일 이후부터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사실상 공식화한 의미로 풀이된다.
이란의 이러한 주장은 앞서 양측인 맺은 양해각서에 기반한다. 양해각서엔 “통행료는 60일 동안만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이란은 오만과 대화를 통해 호르무즈해협의 미래 행정 및 해상 서비스 체계를 정의할 것”이라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재차 협상의 지렛대로 쓰려는 이란의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이날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호르무즈해협은 국제수로라고 강조하며 “어떤 나라도 국제수로에 통행료나 수수료를 부과할 수 없고, 이것이 현존하는 국제법”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의 모든 국가가 우리와 뜻을 같이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루비오 장관은 양해각서에 이란의 미사일 역량 제한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그 문제는 향후 논의에서 분명히 제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란은 미사일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미국과) 우리의 회담 내용에 포함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 어떤 당사국과도 결코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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