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의 로앤비즈]클레비냐 레이어냐…'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독점계약 운명 쥔 룩셈부르크 법원
클레비 측 "레이어 무효인 이중계약"
국내 법원 진행 가처분·1심 레이어 이겨
관할지 룩셈부르크 법원서 '해지 유효성' 판단 중
전문가 "계약 당시 클레비 대표 권한 유무에 달려"
전윤경 전 대표 복귀로 사태 새국면
서울 명동, 강남역, 성수동 등 국내 패션의 중심지에서 프랑스 패션 브랜드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이하 마리떼) 제품이 서로 다른 2개 회사가 운영하거나 위탁 판매하는 매장에서 동시에 판매되며 소비자들이 혼선을 빚고 있다.
두 회사는 마리떼 본사인 룩셈부르크 우르츠부르크와 2023년 2월 국내 전용 사용계약(라이선스 독점 계약)을 체결한 주식회사 클레비와 같은 해 10월 역시 우르츠부르크와 국내 전용 사용계약을 체결한 주식회사 레이어다.

클레비는 자신의 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되거나 취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레이어가 체결한 계약은 '이중계약'에 해당돼 무효라는 입장이다. 반면 레이어는 클레비와의 계약이 정상적으로 해지된 이후에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자신이 유일한 국내 전용 사용권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국내에서 진행된 법정 공방에서는 레이어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그런데 2023년 2월 마리떼 창업주인 프랑소와 저버, 마리떼 바슐르히 부부를 프랑스에서 직접 만나 국내 전용 사용계약을 체결했던 전윤경 전 클레비 대표이사가 자신을 모함해 회사에서 몰아냈던 이모 전 공동대표를 소송을 통해 사내이사에서 해임하고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데 성공하면서 사태는 새로운 반전을 맞게 됐다.
전 전 대표는 "마리떼 상표권을 둘러싼 모든 분쟁의 궁극적인 해결은 마리떼 본사가 위치한 룩셈부르크 법정에서 가려질 문제"라며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했다. 결국 관건은 레이어보다 앞서 체결된 클레비와 마리떼 간 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됐는지 여부다.

애초 마리떼 국내 판매권은 2019년부터 모던웍스라는 브랜드 라이선싱 회사가 갖고 있었다. 레이어는 모던웍스로부터 판매 권한을 위탁받은 업체였다. 두 회사 모두 대명화학 계열사다. 그런데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모던웍스의 매출 누락, 로열티 미지급 이슈가 발생하면서 마리떼 본사가 모던웍스를 상대로 매출 실사를 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분쟁이 발생했다.
전 전 대표는 이 무렵 프랑소와, 마리떼 부부로부터 모던웍스나 위탁 판매처인 레이어의 한국 및 아시아 시장에서의 브랜드 운영 현황에 대한 정보 수집과 미지급된 국내 로열티와 전용 사용권 관련 분쟁 해결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의류 사업을 할 당시 이탈리아 지인을 통해 프랑소와를 소개받아 친분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유통 상황과 매출 누락 등을 나름대로 조사해 알려줬고, 결국 마리떼 본사는 2022년 12월 모던웍스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전윤경 100% 지분 클레비, 마리떼와 계약2023년 2월 21일 전 전 대표는 프랑스 파리에서 마리떼, 프랑소와 부부와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3월 12일부터 기본 5년에 추가 5년까지 최장 10년간 국내에서의 독점적 상표 사용과 제품 생산·유통은 물론 중국 시장 진출 시 우선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이었다.
당시 전 전 대표는 클레비 주식 100%의 실질적 소유자였다. 다만 등기부상 대표는 직원 명의로 돼 있었는데, 전 전 대표는 이 같은 사실을 프랑소와 부부에게 사전에 분명하게 고지하고 자신이 클레비의 창업주이며 최대 주주라는 점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같은 사실은 전 전 대표가 프랑소와 부부, 그리고 함께 마리떼 업무를 처리하던 아들 올리비에 바슐르히 등 3명에게 대표이사가 민모씨로 기재된 클레비 사업자등록증을 첨부해서 보낸 이메일 등 증거를 통해 뒷받침된다.

문제는 해외에서 사업을 하던 전 전 대표가 국내 사업 운영을 위해 믿고 주식을 맡겼던 이 전 대표의 배신이었다. 전 전 대표는 자신의 주식 50%를 이 전 대표에게 매매 형식으로 넘겼고, 나머지 50%를 명의신탁했는데, 마리떼와의 계약 체결 이후 본격적으로 브랜드 전개를 준비하던 때 이 전 대표가 형식상 자신의 명의로 돼 있는 보유 주식을 빌미로 단독으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전 전 대표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전 대표는 전 전 대표를 회사에서 몰아내기 위해 그에게 누명을 씌워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고소까지 한 뒤, 이 같은 사실을 마리떼 측에 알리며 전 전 대표를 배제한 채 자신이 단독 대표가 된 클레비와 계약을 유지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했다.
하지만 전 전 대표를 믿고 계약을 체결했던 마리떼 측은 ▲전 전 대표가 클레비의 유일한 소유주, 설립자가 아니다 ▲라이선스 계약을 무단으로 양도·매각하려 했다는 등 그를 모함하는 이 전 대표의 얘기를 듣고 결국 클레비와의 계약 해지 내지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과 달랐고 전 전 대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된 소송에서는 레이어가 모두 이겼다. 전 전 대표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한 뒤 이 전 대표는 레이어를 상대로 여러 건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과 상표권 관련 소송을 냈지만 전부 패소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62민사부는 레이어가 클레비를 상대로 낸 상표전용사용권 침해금지 등 청구 소송에서 레이어의 손을 들어주며 클레비에게 40억원의 손해배상을 명했다. 원고 일부승소 판결에 대해 레이어와 클레비 양측 모두 항소한 상태다.
클레비가 레이어를 상대로 낸 전용사용권 설정등록 말소 청구 소송 역시 지난 2월 클레비가 패소한 뒤 항소해 현재 특허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들 국내 법원의 판단은 마리떼 측과 클레비와의 계약이 유효하게 해지됐다는 사실을 전제로 이뤄졌는데, 그에 대한 판단 권한은 계약서상 전속관할로 지정된 룩셈부르크 법원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법원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해당 재판부는 클레비와 마리떼와의 계약이 일응 유효하게 체결된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2024년 3월 6일 서울중앙지법 60민사부는 클레비가 모던웍스와 레이어를 상대로 낸 상표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도 "클레비가 2023년 3월 20일 우르츠부르크에 2023년 로열티를 지급했던 점과 전 전 대표가 이 전 대표에게 계약 체결 진행 상황을 보고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전 전 대표는 클레비로부터 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계약(클레비와 우르츠부르크의 등록상표에 관한 전용사용권 설정계약)은 일응 유효하게 체결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다만 이 사건 계약은 룩셈부르크 법률을 준거법으로 하므로 계약이 적법하게 체결됐는지, 취소 또는 해지됐는지는 룩셈부르크 법률에 따라 판단돼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계약의 효력은 본안 소송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리해 확정될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 전 대표 50% 지분 탈환클레비가 레이어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잇단 패배를 당하는 사이, 전 전 대표는 자신을 배신한 이 전 대표를 회사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서울중앙지법 22민사부는 지난 4월 "이 전 대표를 클레비 사내이사 직에서 해임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2023년 2월 전 전 대표가 자신의 클레비 주식 2000주 중 1000주를 이 전 대표에게 양도하고, 나머지 1000주에 관해 주주명부상 명의를 신탁하기로 하는 주식명의신탁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인정했다.
해당 계약서에는 클레비의 주주총회에는 전 전 대표가 주주로 참석하며, 전 전 대표가 명의신탁 주식의 반환을 요청할 경우 이 전 대표는 무상으로 반환하고 즉시 명의개서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담겨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미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확정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이 전 대표가 2023년 3월 유상증자로 발행한 10만주 중 50%에 해당하는 5만주는 전 전 대표가 명의신탁한 1000주에 대해 발행된 것이므로, 클레비 총 발행주식 10만2000주 중 절반인 5만1000주에 대해서는 전 전 대표가 실질적인 소유자라고 결론 내렸다.
이 전 대표를 해임하며 법원은 직무대행자 선임 결정을 내렸다. 전 전 대표는 해당 재판부에 이사 선임 권한 회복을 신청하고, 이 전 대표를 상대로 주식 양수도대금 미지급과 주주간계약서 위반 등 사유로 나머지 50% 주식에 대한 양도계약 해제 소송도 진행 중이다.
현재 이 전 대표는 모해목적 증거인멸, 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잇따라 고소를 당해 수사를 받고 있다.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검찰이 약식기소했지만 이 전 대표가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전 전 대표의 완전한 경영권 회복이 가까워지면서 마리떼 본사와 레이어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큰 변수가 발생했다.
룩셈부르크 법원 '해지 유효성' 판단이번 사태의 궁극적 해결은 현재 룩셈부르크 현지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판 결과에 달려 있다. 해당 재판부는 마리떼 본사가 클레비에게 한 해지 통지로 적법하게 국내 전용사용 계약이 해지됐는지, 아니면 여전히 유효한지를 살펴보고 있다.
클레비 측은 ▲대표이사가 교체됐다는 사실이나 ▲전 전 대표의 횡령 의혹 등은 양자 간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해지 사유가 아니며 ▲계약 체결 당시 전 전 대표의 대표권에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에 관한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국내 시장에서의 혼선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한변협 지정 IT·지식재산권 전문변호사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이 사건의 본질은 우르츠부르크의 해지가 '계약 위반에 따른 해지'가 아니라 '서명자의 무권한·기망을 이유로 한 소급 무효(취소)' 주장이라는 점"이라며 "따라서 핵심 쟁점은 2023년 2월 서명 당시 전 전 대표의 대표권 유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권한에 대한 판단은 룩셈부르크법이 아니라 한국 회사법의 문제이고, 설령 무권대리였더라도 회사의 추인으로 치유될 수 있다"며 "클레비는 계약 이행과 후속 경영진의 계약 추인 정황을 갖고 있어, 무권한 하자를 치유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또 구 변호사는 "기망 주장은 창업주인 전 전 대표가 본사와 직접 조건을 협상한 정황으로 상당 부분 반증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우르츠부르크에 있다"며 "전략의 핵심은 '무권한이었더라도 이후 추인으로 치유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구 변호사는 "국내 가처분이나 1심 재판의 결과는 계약의 유효성에 대한 본안 판단이 아니라 등록 우선·대항요건에 따른 잠정·절차적 결론이며, 계약 자체의 운명은 전속관할인 룩셈부르크 본안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예단하기는 이르나 클레비에 유리한 정황이 적지 않다"고 전망했다.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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