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자연과 시간이 손을 잡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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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쓴 해변의 여인일까. 작가는 해안에 떠밀려온 선체 조각을 이리저리 붙여서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형체를 만들었다. 아니면 작가와 자연의 합작품일까. 물론 통영 바닷가에 떠밀려온 선체 조각을 폐기물이 아니라 자연의 무늬가 생성된 재료로 '발견'한 것은 캔버스의 표면 자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오랫동안 주목해온 작가의 태도 덕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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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쓴 해변의 여인일까. 분홍색과 하늘색이 섞여 화사한 챙 있는 모자. 스커트는 어떤 염색 전문가도 만들기 쉽지 않을 듯 갈색 무늬가 오묘하다. 배경의 다홍색으로 인해 인체 형상의 의상이 한껏 경쾌해 보이는 이 작품은 인간만이 만든 것일까.
서울 성북구 우손갤러리 서울점에서 하는 이안리(41) 작가의 개인전 ‘선체 이후’에 나온 이 부조 작품은 우리에게 이런 낯선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모래를 섞은 안료로 추상화를 주로 해 왔다. 그러다 수년 전 지인의 고향 통영에 갔다가 바닷가에 떠밀려온 폐선박 잔해에 눈길을 주게 됐다. 전시장에 나온 ‘물과 뭍’ 연작은 그곳에서 줍거나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준 선체 잔해를 가지고 만든 신작들이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선체에는 미생물이 달라붙어 막(바이오필름)이 형성되고 거기에 따개비 등이 붙어서 산다. 소금기에 부식되고 물살에 쓸려가며 한때 인간이 매끈하게 만든 선체의 표면에 자연에 의해 새로운 무늬가 만들어진다. 작가는 해안에 떠밀려온 선체 조각을 이리저리 붙여서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형체를 만들었다. 때로는 통영에서 배운 옻칠의 검은색을 칠해 색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이인리 작가의 ‘물과 뭍’ 연작은 오롯이 작가의 작품일까. 아니면 작가와 자연의 합작품일까. 작가가 아무리 애를 써도 따개비와 소금기와 물살이 만든 무늬를 흉내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작품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 심지어 사물까지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포스트휴머니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통영 바닷가에 떠밀려온 선체 조각을 폐기물이 아니라 자연의 무늬가 생성된 재료로 ‘발견’한 것은 캔버스의 표면 자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오랫동안 주목해온 작가의 태도 덕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남다른 표면을 만들기 위해 종이 위에 수없이 연필 선을 반복해 긋거나 모래를 캔버스 표면 위에 문질러 바른 뒤 지우고 다시 덮는 과정을 반복하기도 한다. 캔버스에 모래와 아크릴 물감을 섞어 그림을 그리는 이전의 추상화 작업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또 새롭게 선보이는 타원형 회화는 기존의 사각 프레임을 벗어났을 뿐 아니라 캔버스 표면에도 보다 유기적인 움직임을 만든다. 완결된 이미지라기보다 물결에 의해 계속 번지고 있는 상태를 환기시킨다. 7월 25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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