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종전 기대보다 ‘한은의 경고’ 새겨야
물가와 빚투 경계하고
햇볕 비칠 때 지붕 고쳐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합의가 임박했다고 밝히자 세계 금융시장이 일제히 환호했다. 뉴욕 증시는 급등했고 국제유가는 하락했다. 코스피도 12일 단숨에 4.63% 오르며 8000선을 회복했다. 이란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시장은 벌써 전쟁이 끝난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번 사태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전쟁은 수천㎞ 떨어진 곳에서 벌어졌지만 그 충격은 곧바로 한국 경제와 산업 현장으로 전달됐다. 한국이 중동산 원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번 종전 합의가 공식화되면 한국 경제를 짓눌러온 최대 대외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한국이 체감할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대이란 해상봉쇄 해제다. 국제유가가 내리면서 인플레이션 부담 완화와 환율 안정세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중동발 위기가 진정될 조짐을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대외 악재가 걷혔다고 낙관하기엔 국내 경제 사정이 엄중하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창립 제76주년 기념사에서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며 시장에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생활물가 상승세와 수요 압력으로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물가 상승의 부담이 저소득층에 더 크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물가 안정은 민생을 지키기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장의 안도감이 빚투와 부동산 투기 심리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는 다시 확대되고 있고, 수도권 집값도 꿈틀대고 있다. 대외 불확실성 완화로 늘어난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며 자산 거품을 키우는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신 총재가 “햇볕이 비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황이 좋을 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시장이 환호할 때일수록 위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진다. 종전이 현실화되더라도 포성이 잦아든 자리를 또 다른 부채와 투기의 불씨가 채우게 놔둬선 안 된다.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훈풍이 아니라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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