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도둑맞으면 끝” 기업들 인재 사수·방어막 고도화 사활
② 필사의 보안 전쟁

국내 산업계는 국가 핵심기술이나 영업비밀 사수를 위해 ‘총성 없는’ 보안 전쟁을 치르고 있다. 기술스파이들의 표적은 시대적 흐름과 산업 트렌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2000년대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집중 타깃이었다면, 2010년대 들어서는 자동차와 조선, 디스플레이로 과녁이 옮겨갔다. 현재는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분야로 노림수가 집중되는 상황이다. 기술 탈취 위협에 상시 노출돼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은 유출 피해를 겪으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보안 방어막을 고도화하고 있다.
최우선 과제는 인재 사수다. 기업 핵심 인재의 머릿속에는 정형화된 데이터에서 얻을 수 없는 수년간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축적돼 있다. 사람 한 명을 빼앗기면 제품 기획부터 양산에 이르는 기술 구현의 전 과정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특정 국가에서는 아예 정부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인재 영입을 시도하는 상황이다.
이에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인재 이탈을 차단하기 위해 전사적 차원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기술 개발 핵심 인력은 아예 별도 그룹으로 묶어 집중 관리한다. 조직 리더를 필두로 한 정기 심층면담 등 ‘밀착 관리’ 체계를 가동해 우수 인재풀(Pool)이 흔들리지 않도록 총력을 다하는 것이다.
정서적 유대감과 더불어 인재를 지키는 또 다른 방패는 ‘확실한 보상’이다. 해외 경쟁사들이 국내 우수 인력을 꾀어낼 때 앞세우는 무기가 바로 파격적인 연봉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술 유출 범죄에 가담한 이들의 주된 범행 동기를 보더라도 금전적 이익(연봉·인센티브·기업 지분 등)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평상시 업무 환경에서는 사내 보안 규정과 물리적 보안망이 빈틈없이 가동된다. 거의 모든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기업 직원들은 입사와 동시에 비밀유지 의무와 경업금지 약정이 포함된 보안 계약을 체결하고, 매년 강도 높은 정기 보안감사를 받는다. 만약의 사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별 정보보안 사고 대응 가이드라인 또한 마련돼 있다. 외부인의 무단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사업장 외곽에 첨단 감지센서를 탑재한 울타리를 구축한 곳도 다수다. 출입문을 드나들 때도 예외는 없다. 전문 보안요원들이 신원 및 소지품 확인은 물론 스피드게이트, 엑스레이, 금속탐지기 등 정밀 장비를 동원해 자료 반출 여부를 철저히 검색한다. 도감청 감지 시스템을 통해 내외부인 상시 모니터링도 이뤄진다.
조직 전반의 보안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신고포상 제도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국내 한 디스플레이 기업은 보안 위협 상황을 접수하는 전담 신고센터를 상시 운영한다. 기술 유출 제보에 국한하지 않고 보안 시스템 내 취약점이나 운영상 허점을 신고한 경우에도 심사를 거쳐 포상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2024년부터는 포상금 한도를 최대 5억원으로 올려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고의성 없는 단순 실수에 대해서는 자진신고 후 교육을 이수하면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 장치도 마련했다.
보안망의 사각지대로 꼽히는 협력사 관리 역시 엄격해지는 추세다. 자회사나 협력사는 상대적으로 보안 인프라가 취약한 곳이 많아 원청이 직접 사업장 보안 점검을 실시하고 개선 작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나아가 전체 자회사·협력사를 대상으로 보안협의회를 열고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등 공급망 전체의 보안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퇴직자 관리는 다른 보안 영역보다 난도가 높다. 사기업이 독자적으로 퇴직자의 동향을 감시·추적하기에는 법적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국내 한 에너지 기업은 현실적 방안으로 퇴사 예정자에 대해서는 퇴직 전 일정기간 행적을 정밀 분석해 기술 유출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만약 퇴사자에게서 국가 핵심기술 유출 정황이 포착되면 전직금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형사고소한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각종 보안장치들도 다수 운영하고 있지만 ‘도둑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처럼 마음을 굳게 먹고 일탈을 감행하는 이들을 막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며 “그럼에도 기술이 뚫리면 기업 생존이 위태로워진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선영 양윤선 기자 pom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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