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올리는 것도 허가받아야”… 선관위 갑질 쏟아낸 의원들
바뀐 선거법 모르고 단속해 실랑이
현수막 문의땐 유권해석 들쑥날쑥
여야 모두 선관위법 개정 착수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고강도 개혁 요구에 직면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파행을 예방하기는커녕 되레 선거운동에 혼선만 부추겨 왔다는 정치권 증언이 잇따랐다. 현역 국회의원에게 잘못된 선거법을 적용해 일방적으로 제지하는 등 고자세를 보여 갈등을 빚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여야는 선관위의 전문성·책임성 결여가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 선관위원장 상근화 등 선관위법 개정에 착수했다.
9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정치권에서는 “선관위가 복지부동의 대명사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한 초선 의원은 “선관위에 선거법 위법 여부를 물으면 ‘법률에 의거해 합법적으로 해 달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고 말했다. 한 서울시 의원은 “선관위 직원은 문제를 예방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채증(증거수집)에 몰두하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라는 식”이라고 전했다.
느리고 들쑥날쑥한 유권해석도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한 국회의원 비서관은 “현수막 문구나 문자 발송 같은 사소한 사안도 일일이 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지역 선관위에 물으면 중앙 선관위에 물어보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고 지적했다.
선관위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사례도 다수 제기됐다. 수도권 한 재선 의원은 “지난 총선 때 선관위 지도계장이 바뀐 선거법도 모르고 단속하려 해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며 “전문성도 없이 무지막지한 권한을 휘두르는 게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동료 의원을 따라 페이스북에 투표 인증 글을 올리려 했는데 ‘사전 허가가 없었으니 안 된다’며 제지당해 황당했다”고 전했다. 한 의원 보좌관은 “명함 이력 한 줄이 잘못됐다며 규정에도 없는 소명서까지 요구하길래 항의했더니 결국 선관위가 사과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여야는 전날 국회에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며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개별 의원 차원에서도 선관위법 개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선관위 관련법 발의를 준비 중인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을 맡는 구조를 추천위원회를 통한 임명 방식으로 바꾸고 상근 선관위원장을 두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관위 직원 중 법률가 비중을 높여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내외부 견제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현재 선관위는 리스크 대응 분야의 전문 공무원이 거의 없고 자원봉사자와 행정직 공무원 위주라 대응이 부족하다”며 “이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성이 작동하는 조직·거버넌스 구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선관위원장을 포함한 중앙선관위 위원을 상임위원으로 전환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9명 위원 중 8명이 비상임이라 책임감이 없고 조직이 방만해진다”며 “선거 준비도 1~2년 전부터 교육·훈련을 통해 실전 감각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를 찾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접견하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국회 차원의 엄중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 실장은 “이번 일은 민주주의 근간인 참정권이 침해된 중대한 사태로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 규명, 세밀한 제도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고, 조 의장은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을 신속하고 철저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오주환 윤예솔 천양우 이형민 기자 joh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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