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교육과 정치가 분리될 수 있다는 착각

2026. 6. 8. 00:3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수경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

직선제는 교육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킨다는 이념으로 설계

후보도 모른 채 투표소에 가는
풍경이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이를 교육자치라 부를 수 있나

정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시민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새롭게 짜야 한다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전국 16개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가 10곳, 보수 성향이 5곳, 중도 성향이 1곳에서 당선됐다. 기존 진보 9 대 보수 8 구도가 진보 쪽으로 한 발 더 기운 셈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도’로 분류된 세종의 당선인이다. 여러 언론은 그를 중도보수로 분석했지만 당선인은 ‘보수’ 이름표를 떼고 굳이 ‘중도’를 내세웠다. 보수 색채가 표심에 불리하다는 계산이었을 수도, 진영 논리를 넘어서겠다는 의지였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후보가 스스로 정치색을 지우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교육감 선거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교육과 정치는 과연 분리될 수 있는가.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법률로 보장하도록 규정한다. 교육감 직선제는 이 조항을 근거로 교육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이념 위에 설계되었다. 정당 공천이 금지된 유일한 선거가 교육감 선거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공천이 없다고 정치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후보가 진보 아니면 보수로 분류되는 순간 선거는 양대 정당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번 결과 역시 최근의 정치 지형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진영 색채를 지우려는 시도 자체가 역설적으로 교육감 선거가 얼마나 정치에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교육과 정치의 분리는 제도적 선언에 머물 뿐 유권자의 표심까지 갈라놓지는 못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유권자의 무관심이다. 직선제의 정당성은 주민이 직접 교육 수장을 뽑는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교육감 무효투표율(4.0%)은 시·도지사(1.6%)의 2.5배에 달했다. 경남에서는 1, 2위 후보의 표차가 7165표였는데, 무효표는 그 10배인 7만1333표였다. 무효표의 상당수는 무관심의 산물이다. 단체장 후보 이름은 외워도 교육감 후보는 모른 채 기표소에 들어서는 풍경이 선거마다 되풀이된다. 이런 현실을 교육자치라 부를 수 있을까.

교육감 선거제도 논쟁은 지방선거 이후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다.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한 팀으로 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 직선제를 폐지하는 임명제 등이 거론됐지만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반론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이번에도 서울시교육감 후보 8명 전원이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러닝메이트제, 정당 추천제, 직선제 보완 등 해법을 두고는 진영별로 갈렸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방향은 합의하지 못한 채 선거가 끝나면 떠올랐다가 다음 선거 전까지 가라앉는 일이 줄곧 되풀이된다.

교육과 정치의 완전한 분리는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이었는지 모른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교육의 목적은 올바른 시민을 길러 정의로운 국가를 만드는 데 있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학’에서 교육이 공동체의 성격에 맞게 이루어져야 하며, 국가가 교육을 방치하면 국가 자체가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한다. 현대 교육철학자 존 듀이의 대표 저서 제목은 아예 ‘민주주의와 교육’이다. 듀이는 그 책에서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교육의 의미를 분석했다. 무엇을 가르칠지, 어떤 교육과정을 짤지, 누구를 어떻게 지원할지를 묻는 일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원리와 사회적 판단을 포함한다. 세종 당선인이 스스로를 ‘중도’라 부른 것 또한 교육을 정치에서 떼어내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이지만 그 열망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다.

분리가 불가능하다면 논점을 바꿔야 한다. 분리가 아니라 ‘균형’이다. 교육 전문성과 민주적 책임성이 균형을 이루고, 정치 바람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시민의 판단을 진지하게 반영하는 구조, 그것이 교육자치의 진짜 과제다. 이 과제는 비단 교육감 선출 방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논쟁에 갇혀 있는 사이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어느덧 35년이 흘렀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을 어떤 역량을 갖춘 시민으로 길러낼지, 학교는 어떻게 바꿀지, 지방정부는 이를 어떻게 뒷받침할지를 두고 활발한 토론과 합당한 비전이 오가야 한다. 듀이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했다. 교육이 삶이라면 그 삶을 둘러싼 정치와 교육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이제 ‘교육과 정치는 분리될 수 있다’는 착각에 마침표를 찍을 때다. 분리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을 위한 교육자치’의 출발점이다.

남수경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