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의 ‘황당한 오판’…설마 사과만? [신율의 정치 읽기]

2026. 6. 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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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보수 성향 단체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비판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침내 이번 지방선거가 끝났다. 그런데 선거 막판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터졌다. 투표 종료 직전에 투표용지가 부족한 투표소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 12곳, 강남과 광진 각각 1개 투표소 등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투표하러 간 유권자들이 투표용지가 없어 투표하지 못했다는 말은, 수십년간 정치학을 전공하고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해온 필자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세계적으로도 매우 ‘기괴하고’ ‘희귀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이 알려진 직후 선관위는 6시 이후에도, 6시까지 도착한 유권자에 한해서는 투표하게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이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왜 투표용지가 부족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선관위 설명에 따르면, 유권자 수에 딱 맞춰 투표용지를 인쇄할 경우에는 버리는 용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과거 선거를 기초로 투표율을 예측해 투표용지를 인쇄하고 배포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송파구의 경우 유권자의 50%에 해당하는 정도의 투표용지를 준비했는데 부족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들으면 궁금해지는 점이 있다. 지난 선거를 기준으로 투표율을 예측한다면, 지난 선거와 지금의 정치적 상황, 선거 프레임 등이 동일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인지 하는 부분이다. 투표율은 워낙 변수가 많아 정치학자들도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투표율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일단 선거 구도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유권자들이 분노할 사안은 존재하는지, 프레임 전쟁은 어느 정도 치열한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선관위가 과연 이런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투표용지를 준비했는지 의문이 든다. 한마디로 선관위가 예측 기준을 어떻게 설정했는지 아리송하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선거 관리는 과학적으로 해야지, 대충 예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버리는 투표용지가 많아서 예측치를 토대로 투표용지를 준비했다는 설명 역시 문제라는 점이다. 설령 투표용지를 버리는 상황이 초래되더라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유권자 수에 맞는 투표용지를 준비했어야 했다.

세 번째 문제는, 투표용지가 없어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6시 이후에 투표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은 사전 투표 시작 직전에 시작됐다. 여론조사 공표가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시기에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했다. 만일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보도하면, 이는 처벌 대상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로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 투표하게 한 선관위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네 번째 문제점은, 투표용지가 추가로 ‘배달’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집 혹은 일터로 돌아간 유권자들의 숫자가 과연 어느 정도 되는지를 선관위가 알고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투표할 뜻이 있었지만 투표용지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발길을 돌린 유권자들의 수를 알 수 없다면, 이는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송파구청장이나 시의원 혹은 구의원이 근소한 격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혹은 차이가 크더라도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투표했더라면 당락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후보들이 존재한다면, 이들은 선거 무효 소송을 낼 가능성이 크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서울 지역 개표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또한 선거를 연기할 것을 정식으로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국민의힘 입장은 일부 후보들의 선거 결과 불복뿐 아니라, 윤 어게인을 외치거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에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도 크다. 부정선거 가능성을 전혀 믿지 않지만 중앙선관위의 이런 식의 ‘희한한’ 실수가 반복되면, 많은 이들은 중앙선관위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사회적 신뢰가 가장 근본을 이뤄야 하는 체제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존재 목적은 유권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인데, 작금의 상황을 보건대 선관위는 스스로의 존재 목적을 부정한 셈이다. 자신들의 실수로 일부 유권자의 투표할 권리를 빼앗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패배를 인정한 점이다. 만일 정원오 후보 역시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선관위의 기가 막힌 선거 관리를 지적했다면, 사안은 더욱 복잡해질 뻔했다.

정원오 후보 덕분에 큰 혼란은 피했다고 하더라도, 이번 선관위의 실수와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양한 법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면 이것만으로도 과정의 정통성은 성립하기 힘들다. 결과의 정통성도 결여돼 송파구나 다른 지역 기초의회 낙선자들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런 ‘난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선관위는 빠른 판단력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해 사태를 오히려 키운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사무총장이 책임지는 선에서 끝날 문제는 아니다. 이는 중앙선관위라는 기관에 대한 신뢰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에 대한 불신과도 연결돼 중앙선관위원장은 물론 중앙선관위원 전원이 사퇴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특히 이런 문제에 대해 ‘높으신 분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지금 발생한 불신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이번 사태 때문에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선거 결과에 대한 주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도에 대한 신뢰 측면을 생각하면 해당 사태가 단순히 서울 지역선거, 그것도 강남과 송파, 광진 지역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해당 사태가 어떻게 번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한 것은, 해당 사태를 부정선거 음모론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부정선거를 주장할 경우 이번 사태의 논점이 흐려지고, 이런 심대한 문제가 희화화돼 해당 사태에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도피처를 만들어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선관위 ‘윗분’들에게 법적으로 최대한 책임을 지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들을 사퇴시키는 데 그치지 말고 파면, 즉 ‘탄핵’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다양한 실수와 허술함이 반복돼도 책임지지 않았던 그들에게,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3호(2026.06.10~06.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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