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가 대형 야외 놀이터가 됐네... 힐링의 공간, '그라운드 청도'

최우혁 2026. 6. 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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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하초등학교의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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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혁 기자]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주말이면 늘 어디로 외출하느냐가 고민이다. 고민이 별로 안 되는 가정도 있겠지만, 우리 집은 그렇다. 인근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공원을 돌다 보면 레퍼토리가 바닥나기 일쑤다. 그럴 땐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눈을 돌린다. 대구 수성구와 가까운 경북 청도군은 최근 몇 년 사이 펜션이나 풀빌라, 대형 베이커리 등이 부쩍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곳은 또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라 조금 더 한가한 곳이 없나 찾아보게 된다. 아내의 제안으로 가본 곳이 바로 청도의 한 폐교였다.

수성구에서 청도군 매전면까지는 차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타고 청도군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풍경이 달라진다. 온통 초록으로 덮인 들판, 논과 밭에 가득한 농작물, 맑은 하늘.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의 햇살은 따사롭지만 아직 한여름의 무더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늘에 들어서면 덥지 않다고 느낄 만큼 습도도 낮았다. 운전대를 잡은 채로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길이었다.

목적지는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청려로 3017, 공식 명칭은 '청도군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다. 마을 아이들이 다니던 관하초등학교가 폐교된 뒤, 건물은 어린이 단체급식시설을 지원하는 센터로 탈바꿈했고, 옛 운동장은 대형 야외 놀이터로 새 단장했다. 이곳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라운드 청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플레이그라운드청도
ⓒ 최우혁
 청도 어린이 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 건물에선 이날 6.3 지방선거 투표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 최우혁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운영하는 제도로, 영양사를 별도로 고용하기 어려운 소규모 어린이집·유치원 등의 단체급식소를 대상으로 위생·영양 관리를 지원한다. 전문 영양사가 급식소를 직접 방문해 식단을 제공하고, 위생 점검과 조리법 지도, 교육 프로그램 운영까지 맡는다. 쉽게 말하면, 작은 어린이집도 체계적인 급식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뒤받침하는 기관이다. 청도군에서는 이 역할을 구 관하초등학교 건물이 맡고 있다. 폐교를 그냥 방치하는 대신 지역사회에 필요한 기능으로 되살린 것이다.
 출입구 옆 텃밭
ⓒ 최우혁
도착해보니 마침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이었다. 정문에는 투표소 안내 표시가 붙어 있었고, 지역 주민들이 간간이 드나들었다. 옛 교실들이 어떤 모습으로 쓰이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투표가 한창인 터라 기웃거리다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봐 슬며시 단념했다. 화장실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가운데 우뚝 솟은 대형 미끄럼틀이다. '저걸 타려면 초등학교 고학년은 돼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높다. 주위로 모래놀이터, 작은 동산, 그네, 정글짐, 짚라인 등 다양한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 회전 놀이기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두세 명이 타고 있었는데, 서로 모르는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도 타도 돼?"라는 말 한마디에 자리를 양보해주는 아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형이 동생들을 위해 기구를 힘껏 밀어주는 모습. 수십 년 전 골목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들이 어울려 놀던 그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요즘 아이들이 그럴 줄 몰랐다는 게 아니라, 그런 모습을 오랜만에 목격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아이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이었다.
 운동장 가운데 높게 솟은 미끄럼틀
ⓒ 최우혁
 바닥으로 꺼져있는 트램펄린
ⓒ 최우혁
건물 앞 수도 옆 바닥에서는 시커먼 동그라미 하나를 발견했다. 동네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지만 우리 동네에서 어릴 때 '봉봉'이라 불렀던 트램펄린이었다. 실내 놀이터에서 흔히 보는 것보다 탄력이 훨씬 강했다. 체중이 가벼운 어린아이는 오히려 잘 안 튀어 오를 정도였고, 성인이 살살 뛰어도 거뜬히 버틸 만큼 튼튼해 보였다. 다만 크기가 작아 두세 명이 올라서면 금세 꽉 찼다. 함께 쓰려면 양보가 필수다.
이 놀이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나무였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커다란 나무들이 놀이기구 사이사이에 그대로 서 있었다. 조성 과정에서 베어내지 않고 살려둔 것이다. 덕분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한낮에도 아이들이 크게 덥지 않게 뛰어놀 수 있었다. 뒷동산 숲에서는 새들이 쉬지 않고 지저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새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도심의 소음에 지쳐 있던 귀에 그 소리가 참 반갑게 느껴졌다.
 학교가 보낸 세월만큼 오래됐을 것으로 보이는 큰 나무들이 폐교가 된 놀이터 여전히 자리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 최우혁
 학교가 보낸 세월만큼 오래됐을 것으로 보이는 큰 나무들이 폐교가 된 놀이터 여전히 자리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 최우혁
방문 당일 운동장에는 10명이 채 안 되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선거일 특수인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한적했다. 4~5 가족 정도가 나와 있었는데, 도심 놀이터에서 흔한 주차난이나 자리 경쟁은 전혀 없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먹을 것을 반드시 챙겨와야 한다는 것이다. 부지 안에 쓰레기통이 없어 나온 쓰레기는 스스로 가져가야 한다. 그게 시민의식이기도 하다. 정문 건너편에 슈퍼마켓이 하나 있어 과자나 음료수 정도는 살 수 있지만, 카드 결제는 되지 않는다. 가게 안쪽 벽면에 계좌번호가 굵직하게 적혀 있어 계좌이체는 가능하니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도 소액 현금을 조금 준비해 두면 더 편리하다.
 플레이그라운드 청도
ⓒ 최우혁
도심의 놀이터는 주말이면 아이들로 넘쳐난다. 주차 자리를 찾아 한참을 돌고, 기구 하나씩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멀지 않은 곳에 이런 한적한 야외 놀이터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갑다. 아이에게는 새소리와 흙냄새와 그늘을, 부모에게는 잠시의 여유를. 국도 옆 초록 풍경을 달려가는 그 길까지 포함해서, 꽤 괜찮은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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