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탑 창 너머] 관제사의 ‘평온한’ 하루

2026. 6. 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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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정 인천국제공항공사 관제사


항공교통관제사라면 누구나 일 년에 몇 번씩 정기 신체검사나 특수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단 몇 달 사이에 피를 몇 통씩 뽑아 가는 주삿바늘을 보면 진이 빠지기도 하지만, ‘아무 증상이 없을 때 몸을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체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통증이 없어도 내시경을 하고, 혈액을 뽑아 이상 유무를 수치로 확인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사람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일상에서는 당연한 사전 예방의 논리가 왜 산업 안전의 영역으로 오면 종종 사고가 터진 뒤 원인을 규명하는 ‘사후 대처’ 중심의 패러다임에 갇히게 되는 걸까.

비행기가 무사히 운항했고, 보고할 만한 항공 안전 장애가 발생하지 않은 관제사의 평범한 하루에도 사실 수많은 잠재적 위험이 지나간다. 순간적으로 방향을 착각해서 의도와는 다르게 발부한 관제 지시, 폐쇄 구역이긴 하지만 교신 없이 유도로에 진입해 있는 작업 차량, 이륙 직후 갑작스러운 비상 상황으로 인천공항으로 회항하는 항공기 등 현장의 변수는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가끔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근무가 끝났네’라고 안도하지만, 기억에 남지 않았을 뿐 관제석을 스쳐 간 위협이나 미세한 오류는 늘 존재한다.

이처럼 관제사의 평온한 일상에 숨은 위험 징후를 포착하는 제도를 ‘정상운영 안전표본조사’(NOSS·Normal Operations Safety Survey)라고 한다. 항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계적 요인으로 인한 사고는 많이 감소했지만, 사람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사고는 여전히 안전의 과제로 남아 있다.

NOSS는 조종실 관찰 프로그램인 ‘항공사 운항안전 감사’(LOSA·Line Operations Safety Audit)의 개념을 항공교통관제 환경으로 확장한 제도다. ‘사고가 나지 않는 정상 운항 상황에서도 수많은 위협과 실수가 일어날 텐데, 베테랑들은 이를 어떻게 관리하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NOSS와 LOSA다.

그렇다면 NOSS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제도의 핵심은 현장의 관제사를 평가하거나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관제석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있다. 관제사의 의도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다가오는 모든 잠재적 ‘위협’과 관제사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불완전한 행동인 ‘오류’가 관찰 대상이다. 관찰 중 관제사의 신원은 기록하지 않고, 기록된 모든 데이터는 기밀로 간주한다. 데이터를 절대 징계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가지고 잠재적 위험과 사고의 전조 증상을 식별하는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NOSS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현장의 실수 비율을 집계하는 것이 아닌 규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피드백에 있다. 예컨대 특정 절차를 지키지 않는 비율이 10%라면 개인의 문제일 수 있지만, 현장의 60%가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차나 운영 환경에 결함이 있다는 신호다.

NOSS는 이런 ‘이탈’을 잡아내 규정을 현실에 맞게 정형화하는 척도가 된다. 나아가 현장 관제사가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한 효율적인 ‘지름길’이나 ‘우회법’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역할도 한다. 엄격한 평가와 감시 앞에서는 숨겨졌던 관행 중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식은 조직 전체의 우수 사례로 공개하고, 안전 결함이 있는 우회법은 선제적으로 보완하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하는 것과 제도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 NOSS가 현장의 위험을 발견하는 안전망이 되기 위해서는 관찰 결과가 실제 제도 및 절차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만약 관찰은 이루어지지만 변화가 없다면, NOSS는 안전을 개선하는 제도가 아니라 안전을 기록하는 제도로 머물 수밖에 없다.

건강검진 역시 검진 결과를 확인하고 생활습관을 바꾸거나 치료받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항공 안전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표본조사를 했는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견한 위험 신호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했는가에 있다. 관제사의 평온한 하루를 의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찾으려는 것은 누군가의 실수가 아닌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현장에 존재하는 위험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날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다고 믿는 날’일지도 모른다.

민이정 인천국제공항공사 관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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