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사고 현장에서도 두드리는 계산기

지난 26일 서소문 고가 철거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가 컸다. 많은 이들이 놀랐고 안타까워했다. 그날 새벽 철거 공사 중 발견된 이상 징후에 안전진단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에 더 가슴 아파했다. 그런데 사고 소식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온라인 곳곳에 올라온 몇몇 글은 이들의 반응과는 달랐다.
누구 탓이냐는 말들이 쏟아졌다. 물론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날 올라온 글 상당수는 원인 분석이 아니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와서였을까.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의 채현일 의원은 사고 직후 상대 후보 탓을 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가 삭제했다. 정 후보 지지자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서는 ‘호재’라는 말도 나왔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고 앞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안타까움이나 안전이 아니라 선거 판세라는 데 섬뜩하기까지 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박강수 국민의힘 마포구청장 후보는 유세 중 해당 사고를 언급하며 “마포는 4년 동안 큰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걸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가 뭇매를 맞고 사과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누군가의 동료였을 사람들이 그날 돌아오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날이었다. 그러나 그 무게는 생각지 못하고 표부터 계산했다.
선거는 원래 냉정한 계산의 영역이다. 그러나 최소한 인간에 대한 감각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사고는 사고이고, 비극은 비극이다. 그것을 진영의 득실표로 환산하는 순간 정치는 삶을 보호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성을 마비시키는 게임이 된다. 우리 사회가 정치에 지나치게 잠식당한 건 아닌지 우려도 든다. 지난 18일 스타벅스에서 텀블러 이벤트를 했다. 텀블러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사용해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표현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탱크 투입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나왔다. 비판받아 마땅했다. 고의였다면 정말 문제이고, 고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역사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행동이었다. 소비자는 즉시 지갑을 닫았다. 스타벅스는 당일 이벤트를 중단하고 사과했다. 대표 해임으로도 이어졌다.
문제는 다음이다. 잘못을 짚는 목소리가 채 모이기도 전에 진영 싸움으로 번졌다. 논란 이후 정치권 인사들이 공개 반응에 나서면서 논쟁은 더 빠르게 진영 대결 구도로 번졌다. 스타벅스의 잘못을 비판하는 자리가 어느새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전장이 됐다. 여기에 정부까지 가세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스타벅스 불매 선언을 했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이 국회에 나와 (윤 장관이) 개인 소신을 밝힌 것이라고 했지만 행안부 내부에선 이미 스타벅스와 거리를 두고 있다. 소비자들이 하는 불매운동과 정부가 하는 불매운동은 엄연히 다르다.
서소문 고가 사고도, 스타벅스 탱크데이도 본질은 따로 있다. 하나는 안전이고, 하나는 역사적 감수성이다. 선거철엔 그 본질이 금세 증발한다. 어떤 사건이든 진영이라는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나오는 건 결국 하나, 상대방 탓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선거철엔 그 경향이 임계점을 넘는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감정이 이성의 회로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정치가 삶의 일부를 넘어 삶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하면 사회는 병들기 시작한다. 민주주의는 원래 상대를 증오하는 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끼리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장치다. 선거를 앞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분노보다 이성인지도 모르겠다.
황인호 사회2부 차장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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