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에게 부여한 집단지성…앤트밀 앞 현대 사회[슬레이트]

이종길 2026. 5. 2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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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신작 '군체', 감염자들 개미처럼 소통
집단지성으로 AI 시대 맹목적 동조 경고
친절한 복선 제시로 예견 가능한 전개는 흠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는 좀비의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한다. 집단지성으로 인공지능(AI) 시대의 맹목적 동조 현상을 경고한다.

서울 도심 초고층 빌딩에서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가 발생한다. 짐승처럼 기어 다니던 감염자들은 점점 진화한다. 인간을 식별하고 두 발로 걷더니 무리를 지어 생존자를 공격한다. 생명공학 교수 권세정(전지현)과 생존자들은 백신을 가졌다고 알려진 생물학 박사 서영철(구교환)과 함께 구조대가 기다리는 옥상으로 향하지만,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군체' 스틸 컷.

개미처럼 소통하는 좀비, 예견된 전개

좀비들의 행동은 개미와 많이 닮았다.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화학 신호를 남겨 정보를 교환한다. 중앙 집중식 통제 없이도 주변 개체와의 국소적 상호작용만으로 최단 경로를 찾아내고 터널을 짓는다. 그 덕에 제한된 인지 능력에도 군집 전체는 거대한 지능을 발휘한다.

영화는 이 생태학적 원리를 좀비에게 이식했다. 감염자들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하얀 점액질이 페로몬처럼 정보 교류의 매개체가 된다. 개체 수가 늘어날수록 사고 속도는 빨라지고 지성은 강화한다.

세포를 통한 소통과 데이터 축적의 결과다. 연상호 감독은 "하나의 노래를 연주하는 손가락 열 개"라고 비유했다.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동시적이고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의도를 구현한다. 특히 하얀 점액질로 엮여 생존자를 에워싸고 쫓는 연기는 자연의 협력 시스템을 공포로 구체화한다.

영화는 새로운 설정의 배경을 초반부터 친절하게 알려준다. 강우철(김종태) 체인스 바이오 대표가 콘퍼런스에서 개미의 집단지성을 예로 들어 발표한다. "이것을 인간의 뇌에 적용하게 되면, 사람과 사람 즉 개인 간의 정보전달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설명에선 좀비들이 영리해지고 조직적으로 변할 것이며, 결국 개별성과 집단성의 충돌로 귀결된다는 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좀비들이 어떻게 파멸을 맞을지에 대한 복선도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개미들이 페로몬 오류로 원을 그리며 끝없이 돌다 집단 폐사하는 '앤트밀(Antmill)'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압축돼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영화 '군체' 스틸 컷.

맹목적 동조가 초래할 파멸

생명공학자인 권세정은 불의를 참지 못해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인물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염자들의 패턴을 읽어내고 능동적으로 생존자들을 이끈다. 연 감독은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 샷이나 바스트 샷으로 자주 포착한다. 생존자 그룹에서 가장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맹목적 동조나 이기심과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홀로 질문하고 도덕적 고뇌를 이어가는 개인의 얼굴로 진정한 휴머니즘을 구현한다.

보편적 사고의 총합이 압도하는 시대에 필요한 가치다. 현대인들은 방대한 정보가 교류하는 인터넷 속에서 주체적 판단을 내린다고 믿는다. 실제로는 알고리즘과 특정 여론이 형성한 흔적을 비판 없이 추종하기 일쑤다. 마녀사냥, 확증 편향, 집단적 광기가 그 결과다. 서영철의 신호에 맞춰 타인을 공격하는 감염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런 현상은 개인의 데이터를 축적해 인간보다 영리한 결론을 도출하는 AI를 새로운 집단지성으로 받아들이면서 더 강해진다. 실제로 로봇 공학이나 분산 컴퓨팅 시스템은 개미 군집의 분산 처리 원리를 모방해 발전해왔다. 인간 조직을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도덕적 판단력과 사유의 의무를 시스템에 양도하게 만든다.

영화 '군체' 스틸 컷.

선두가 방향을 잘못 잡아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외부 개입 없이는 스스로 오류를 인지할 수 없다. 집단지성에 의존한 나머지 사회 전체가 앤트밀에 빠질 수 있다. '군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묻는다. 효율과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주체적 사유를 멈출 때,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는가. 다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좀 더 우회적이고 여운을 남기는 형태였다면, 한층 깊은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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