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여섯 가지 모순을 조화시킨 미학의 정원
지난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다녀온 3박 4일 일본 여행기. <기자말>
[전갑남 기자]
잘 가꿔진 정원을 산책하는 것은 자연과 교감하는 즐거움 외에, 운동을 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에 있을 때 나는 선유도공원, 석촌호수, 일산호수공원처럼 깨끗하고 정갈한 분위기의 공원을 산책하길 좋아했다. 한 시간 남짓 걷는 동안 피어난 꽃들을 만나고 새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함께 맑아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일본 도야마 여행 사흘째. 어제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에서 봄 속에 펼쳐진 겨울이라는 특별한 풍경을 만끽했는데,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을 내게 보여줄까? 일본 3대 정원 가운데 하나인 겐로쿠엔 탐방이 무척 기대된다.
"오늘 날씨, 우리나라 5월 날씨나 다름없네."
"그러게. 신록 우거진 계절의 여왕이 여기도 찾아왔나 봐."
여행에서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다는데, 오늘 일본의 하늘은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어제 알펜루트의 차가운 설원에서는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감싸야 했지만, 오늘은 한결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을 나선다. 발걸음마저 가볍다.
|
|
| ▲ '특별명승 겐로쿠엔'이라 정갈하게 적힌 가나자와 겐로쿠엔 가쓰라자카 입구의 나무 현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소나무와 돌담이 차분하게 관람객을 맞이한다. |
| ⓒ 전갑남 |
정갈한 풍경 속에 흐르는 사람들의 지극한 마음
정원 안으로 들어서자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넓은 연못 위로 초록빛 나무 그림자가 잔잔하게 드리워지고,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소나무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서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깊게 닿았음에도 억지로 꾸민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다듬어 놓은 느낌이었다.
|
|
| ▲ 단정한 교복을 입고 겐로쿠엔 정원 안으로 들어서는 일본 학생들의 모습. 일본 3대 정원인 이곳에는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
| ⓒ 전갑남 |
|
|
| ▲ 리를 굽혀 대나무 빗자루로 산책로를 정성스럽게 쓸고 있는 관리인의 뒷모습. 담배꽁초 하나 없이 정갈한 겐로쿠엔의 풍경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모여 완성된다. |
| ⓒ 전갑남 |
"어디 이렇게 정갈할 수가 있어? 담배꽁초 하나, 휴지 조각 하나 안 보이네."
"그러게. 먹고 마신 테이크아웃 컵 하나 함부로 버려진 게 없잖아."
|
|
| ▲ 수면을 향해 길게 가지를 뻗은 고목 소나무와 이를 지탱하는 수많은 나무 받침대들. 자연의 경이로운 자태와 이를 보존하려는 인간의 세심한 정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
| ⓒ 전갑남 |
정원 한쪽을 걷고 있을 때 가이드의 설명이 잔잔하게 들려왔다. 일본에는 '3대 명원(名園)'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오카야마의 고라쿠엔, 미토의 가이라쿠엔, 그리고 바로 이곳 가나자와의 겐로쿠엔이 그 주인공이란다. 이 정원은 에도시대 가나자와를 다스리던 마에다 가문이 무려 수백 년에 걸쳐 가꾼 곳이라고 했다. 한 가문이 대를 이어 이토록 거대한 정원을 지켜왔다니, 그 지극한 정성 앞에 절로 숙연한 마음이 일었다.
이름에 담긴 뜻도 흥미롭다. 송나라 시인 이격비가 쓴 <낙양명원기>에서 유래했다는데, 정원이 갖추기 어려운 여섯 가지 상충하는 아름다움을 모두 겸비했다는 뜻에서 '겐로쿠엔(兼六園)'이라 불린단다. 보통 넓으면 고요하기 어렵고, 사람의 손길(인공)이 닿으면 옛 정취(고색)가 사라지며, 물이 많으면 탁 트인 조망을 얻기 힘든 법인데, 이 모든 모순을 하나로 조화시켰다니 이름에 담긴 철학적인 깊이와 완벽함이 실로 놀라웠다.
풍경을 빌려오는 미학 속에서 돌아보는 삶의 품격
|
|
| ▲ 오랜 세월의 무게를 증명하듯 땅 위로 단단하게 뻗어 나온 거대한 고목의 뿌리. 짙은 초록빛 이끼와 흙을 움켜쥔 뿌리에서 대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
| ⓒ 전갑남 |
|
|
| ▲ 정원 바닥을 융단처럼 빽빽하게 메운 푸른 이끼와 그 사이로 곧게 뻗은 소나무들.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에도 인위적이지 않고 깊은 숲속에 들어온 듯한 평온함을 준다. |
| ⓒ 전갑남 |
|
|
| ▲ 잔잔한 연못 위로 투명하게 내려앉은 정자와 소나무의 반영. 맑은 하늘과 푸른 나무가 물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한 폭의 완벽한 수채화를 그려낸다. |
| ⓒ 전갑남 |
|
|
| ▲ 청명한 하늘 아래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는 겐로쿠엔의 분수. 정원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 맑은 소리를 더하며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
| ⓒ 전갑남 |
연못가 벤치에 앉아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참 신기하지? 나무 한 그루도 그냥 서 있는 게 없네."
"그러게. 오랜 세월 사람 손이 끊임없이 닿았을 텐데도, 결국엔 다시 거대한 자연 그대로처럼 보여."
우리는 한동안 벤치에 앉아 연못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잉어들, 바람 따라 흔들리는 소나무, 그리고 천천히 걷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이 거대한 정원의 완벽한 일부였다.
|
|
| ▲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청동상과 그 주변을 둘러싼 울창한 소나무들. 정원의 역사적 깊이와 웅장함을 더해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
| ⓒ 전갑남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원한을 해결해 드립니다? 마을 제일 오지라퍼가 하는 일의 정체
- 외국인들이 칭송한 한국 카페...이래도 스타벅스 가시렵니까?
- 가뭄 대응 질타받은 강릉시, '물관리 최우수기관' 선정?
- 보건소는 어디에 서 있는가? 20년 만에 돌아온 숙제
- 17명의 어르신과 '장례식' 약속...그런데 기뻐하셨습니다
- "네타냐후 체포, 유럽 대부분 국가 동의" 이 대통령 발언, 검증해 보니
- 이스라엘 나포 한국인 2명 석방에 청와대 "환영, 앞으로도 원칙있게 대응"
- 광주 고교생들, 스타벅스 사태에 "5·18 비하 마케팅 안돼"
- 6년 만의 야외 수업, 이 행복이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니겠지?
-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과문, 5월 31일 '게시 기한' 논란 일자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