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3분의 2가 문을 닫아놓고 있었다"
[윤준식 기자]
지난 3월 26일, 대전광역시 새터말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하 마사협)이 운영하는 공간 '정말센터'에서 도시재생 주민당사자인 마사협 중심의 현장 포럼이 열렸다. 전국에서 78개 조합이 이 자리에 함께 했고, 각계 관계자들을 포함 120여 명이 참석했다. 포럼은 사회적협동조합들의 자발적인 연합 행사 치고 이례적인 규모라 많은 관심을 받았다.(오마이뉴스 기사 https://omn.kr/2hkqs 참조)
이 자리를 준비한 것은 '도시재생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연합회 추진단(가칭)'이다. 당시의 포럼을 계기로 전국 단위 연합회 설립을 공식화했고, 5월 15일 발기인 대회에 이어 5월 28일 창립 총회를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추진단장을 맡은 광주광역시 오월첫동네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박영준 이사장을 만났다. 3월 초 포럼 준비를 시작으로 맡은 단장직이지만 5월 말의 창립 총회가 끝나면 3개월의 짧은 임기를 마치게 된다. 이번 인터뷰는 추진단장으로서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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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재생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연합회 추진단(가칭)’ 박영준 단장. 전국에서 유일한 대학타운형 도시재생 지역인 광주광역시 오월첫동네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기도 하다. |
| ⓒ 매거진S |
"공청회 당일에 행정과 용역업체가 와서 도시재생 계획을 처음 발표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바로 활성화 계획에 동의하게끔 유도하는 거예요. 계획이 공유된 지 10분 만에 '이거 좋은 계획이니까 동의하십시오'라는 거죠. 막상 주민들은 머뭇거리기만 하고, 제가 나서서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절차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용역사가 수립한 계획서에는 어디에도 주민 이야기가 없었다. 통닭거리를 만들자고 했지만, 막상 이 동네에 통닭집이 몇 개 있는지도 조사하지 않은 계획이었다. 억 단위 용역비를 들여 만들었다는 마을 브랜드 이름도 지금의 '오월첫동네'가 아니라 대체 무슨 의미로 만들었는지 납득할 수 없는 '키다리 마을'이었다.
"우선 동의해 주면, 중간에 수정하며 가겠다고 했지만, 이게 총리실까지 올라가는 계획이라는데 지금 여기서 바로 잡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바꿀 거냐고 맞섰지요."
당시 박영준은 이 동네에 정착한 지 1년도 채 안 된 외지인이었다. 사리를 따지며 발언이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우리는 이 동네에서 30년, 40년 살아온 사람인데, 당신은 이제 1년 산 사람이잖아요. 언제 나갈지 모를 사람이 이 동네에 무슨 애정이 있다고 그렇게 말해요?"
뜨내기 소리를 들으면서도 마을에 대한 애정이 있어 협의체에 남았다. 처음에는 주민으로, 나중에는 간사로 함께 했다. 협의체에 소속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브랜드를 정하는 일-이름을 바꾸는 일이었다.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했다. 결국 주민협의체를 통해 '오월첫동네'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5.18 민주화 운동이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시작됐어요. 실제로 1호 사적비가 우리 마을에 있어요. 여기에 5월이 가진 푸르름, 대학 새내기들이 가진 처음이라는 의미를 담자고 했어요. 5.18 민주화 운동의 역사성이 지닌 무거움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이 우리에게 돌려준 자유와 기쁨으로 미래를 향해 승화시키자는 의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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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민주화운동 1호 사적지인 전남대학교 정문 인근에 자리한 오월첫동네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
| ⓒ 오월첫동네 마사협 제공 |
"한 달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300만 원 수준인데, 유지하는 데 드는 인건비만 900만 원이 나왔어요. 계산이 안 나오는 구조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마사협 설립에 찬성했던 건, 구청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익이 날 수 있는 주차장과 대규모 거점 시설 등의 부동산 자산들을 마사협에게 맡겨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박영준이었지만, 협의체라는 한 배를 탔기에 발기인으로서 동참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구청의 입장이 바뀌었다. 약속했던 주차장은 구청 직원 전용 주차장이 됐고, 거점 시설은 구청이나 유관 기관의 사무공간으로 채워졌다. 수익이 나지 않는 건물들만 마사협에 넘어왔다. 마사협 설립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다른 주민들이 그를 찾았다.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사무국을 맡아줬으면 좋겠다."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장이 된 후 박영준이 처음 했던 일은 구청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단체장조차 '나는 약속한 적이 없다. 실·국장, 과장들이 임의로 잘못된 약속을 한 거다'라는 거예요. 구청의 바뀐 입장은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라. 도시재생으로 조성된 공간은 38만 구민을 위한 용도로 쓰는 게 맞다'는 논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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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월첫동네가 운영하고 있는 공간 나비잠센터 전경. 아동 대상의 맞춤형 돌봄 서비스와 공유주방을 제공하고 있다. |
| ⓒ 오월첫동네 마사협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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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봄서비스를 통해 어린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으며, 공유주방은 주민들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사회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
| ⓒ 오월첫동네 마사협 제공 |
한편 박영준이 도시재생 사업이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건 뜻밖의 일에서 시작됐다. 지역사회와 인연을 맺은 건,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되기 직전인 2018년에 광주에서 카페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막 정착한 곳에서 도시재생이 시작된다고 하자 지역의 변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관심-주민이자 시민으로서의 적극적 참여-은 그가 광주로 오게 된 계기이자, 그의 주요 경력인 국제 NGO 활동 경력에서 출발한다.
광주에 오기 전 그는 라오스에서 활동했다. 그가 소속된 NGO가 라오스에서 했던 활동은 베트남전 당시 라오스에 공격으로 인한 피해자를 구호하고 자활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9년간 베트남과 인접한 라오스를 공격했다. '호치민 루트'라고 부르던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의 베트콩에게 병력과 물자를 보급하는 경로가 라오스를 통과했기 때문인데, 보급선을 끊겠다는 이유로 공격은 장기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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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오스에서 NGO 활동 중이던 박영준의 모습. 라오스 어린이들은 '페탕크'라는 구슬치기 놀이를 즐긴다. 이때 사용하는 구슬의 모양과 크기가 투하된 폭탄의 자탄과 비슷해 아이들이 폭탄을 주워 놀다가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장애아동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워크샵을 운영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
| ⓒ 박영준 제공 |
"그 친구 소원이 뭐였냐면, 가족이 땅을 파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자기는 다행히 두 팔만 잃는 거로 끝났지만 아내와 아이는 항상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었으니까요."
케이를 위해 찾아낸 답은 커피 재배였다. 아라비카 나무는 높이가 2미터 안팎이라 두 팔이 없는 케이도 커피를 재배하고 열매를 딸 수 있었다.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있는 케이의 마을은 커피 재배의 최적지이기도 했다. 한 번 나무를 심고 나면 열매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일뿐이라 더 이상 땅을 파지 않아도 된다.
다행히 NGO와 주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7년부터는 커피 열매 판매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소농에 불과한 케이와 마을 사람들에겐 판로 개척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들을 돕고자 했던 박영준은 커피 사업을 개척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2018년 광주 전남대 정문 앞에 공정무역 카페를 열었다. 이때만 해도 자신의 삶이 도시재생과 관련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450개 소상공인과 함께하는 지역 경제 생태계
오월첫동네 마사협 사무국장을 맡게 된 건 2023년 가을이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2023년에는 아무런 사업도 진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사회에 동의를 구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남은 3개월 동안 2024년 계획과 중장기 계획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비즈니스 모델이 없으면 이 조직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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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월첫동네 카탈로그에서 소개하고 있는 지역 맛집 리스트. 지역 경제 생태계와 함께하기 위한 다양한 일들을 고민하며 하나씩 실현해 가고 있다. |
| ⓒ 오월첫동네 마사협 제공 |
자연스럽게 전통 발효주와 옹기, 지역 먹거리가 한 공간에 모이는 복합문화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식당들을 엮어 관광과 식박(食泊)으로 이어지는 모델도 구상하게 됐다. 지역 상인들의 제품을 고향사랑기부제에 등록해 판로를 뚫는 노력도 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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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월첫동네가 개발한 자체 상품들 |
| ⓒ 오월첫동네 마사협 제공 |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며 오월첫동네를 꾸려가는 동안에도 박영준은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예전에 하던 공정무역과 관련한 강의 요청이 와서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는 길이면, 사전에 반드시 방문지역 근처의 도시재생 사업지를 조사해 짬을 내어 둘러봤다. 그렇게 들른 곳이 지금까지 180여 군데나 된다.
거기에도 분명 같은 마사협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러 현지 마사협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고 이미 나와 있는 주소에 의지해 찾아가 보곤 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찾아가 보고 놀랐던 건, 3분의 2 정도의 마사협이 문을 닫고 있는 상태였던 거예요. 소재지 주소도 맞지 않고..."
전국에 설립된 마사협은 305개. 각각의 조합원을 최소 30명으로만 잡아도 조합원 수는 9천 명을 추산한다.
"바꿔 말하면 9천 명 이상의 주민 조직이 그대로 쓰러져서 무너져 있는 상태인 거예요."
실제로 지난 3월 포럼 과정에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가 수치로 뒷받침한다. 37개 마사협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0.3%가 수익사업 발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59.5%는 아직 초기 운영 단계에 머물고 있었고, 연간 예산 5천만 원 미만인 조합이 40.5%, 사무국 운영 인력이 없는 조합도 35.1%나 된다.
마사협의 생존이 어려운 이유
박영준이 보는 마사협이 부진한 원인은 여러 층위에 걸쳐 있다.
도시재생 주무부처가 만든 가이드 라인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지침일 뿐, 실질적인 결정권은 기초 지자체에 있다. 현장의 목소리가 관련 부처에 닿는 공식 경로는 없다시피 하다. 현장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관련 부처에서 안 된다고 했대요"라는 말이지만, 정작 관련 부처와 직접 접촉해 소통해보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도시재생 지원센터 인력의 구성도 문제다. 거점 대학들이 관련 대학원에서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지만 대부분 건축·토목·부동산 전문가들이지 주민, 마을, 비즈니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사업을 해본 사람이 없어요. 매출을 일으켜 직원 월급을 줘본 건 고사하고, 부가세와 법인세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주민 조직에게 창업 컨설팅을 하고 있는 상황이예요."
마사협 출발점의 문제도 있다. 협의체를 구성하는 주민들은 주로 주민자치회, 새마을부녀회, 사회보장협의체 등 지역에서 봉사 활동을 해온 분들 대부분이다.
"출발점부터 '우리가 기업을 운영해야 돼, 반드시 생존해야 해'라는 의지이 아니라, '행정에서 도와주겠다고 하니 받은 공간 가지고 계속 마을에서 봉사활동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는 거예요."
한편 같은 기초 지자체 안에서도 어떤 마사협은 설립 전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어떤 마사협은 초기 사업비조차 받지 못하고 허덕인다. 개중에는 아무것도 못 받고 3~4년을 보낸 곳도 있다. 오월첫동네 마사협도 그런 케이스였다. 이에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오픈채팅방으로 시작된 연합회 결성
먼저 광주의 9개 마사협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중 8곳과 함께 광주 지역의 협의회를 구성했다. 이후 전남 각지의 마사협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돌아오는 반응이 한결같았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희도 그것 때문에 힘들어요."
다행히도 박영준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버티고 있었다. '백번째 원숭이 효과'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모두가 연대와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들을 하나로 연결한 건 2025년 가을 만들어진 오픈채팅방이었다. 현재 연합회 추진단 류승민 부단장(당시 충남 합덕 마사협 사무국장)이 모종의 계기로 마사협 간의 교류를 위해 만든 카카오 오픈채팅방에 전국의 마사협 실무진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힘이 3월 26일 대전 포럼에서 터졌다. 78개 조합, 120여 명.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전국 단위 연합회 설립에 공감대를 모았고, 이 자리에서 추진단은 설립을 공식화했다. 이 과정에서 종합된 연합회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각 조합의 생존을 위한 판로 개척, 주무 부처를 향한 현장의 목소리 전달이다.
"각각의 현장에 적합한 지속가능한 운영 방식은 용역사가 채워줄 수 없어요. 주민 조직인 마사협, 우리 스스로 그 역할을 해내야만 합니다. 78개 마사협이 모였다고 하지만 전체의 4분의 1도 안 되는 숫자예요. 나머지 4분의 3은 아직 통로나 창구를 발견하지 못하는 거예요."
연합회 창립 총회를 향하여
전국의 마사협의 연대와 협력 가능성을 확인한 3월 포럼을 마친 후 박영준에게는 몇 가지 신상의 변화가 생겼다. 그 사이 오월첫동네 마사협은 협동조합 정기총회를 했는데, 이번 총회에서 박영준은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도시재생이 시작되던 당시 뜨내기 소리를 3년이나 들었던 사람이 주민 조직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연합회 추진단 또한 전국 연합회 창립을 위한 발기인 대회를 개최했고, 이 과정에서 박영준은 발기인 대표를 맡게 됐다. 이에 창립 총회를 열흘 남짓 앞둔 지금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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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준 단장을 인터뷰한 장소는 ‘서울로 7017 외곽 도시재생사업’ 당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 중림창고 인근 카페였다. 인터뷰 당일 마포에서 일정이 있다 하여 서울역과 마포 사이의 장소를 정하다 보니 때마침 이곳을 찾게 된 것이다.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전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진 촬영을 마칠 즈음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에도 광주로 돌아가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다며 빗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
| ⓒ 매거진S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잡지 「매거진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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