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탱크 데이' 낯설지 않단 아이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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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18일 교내 '오월길 걷기 프로젝트' 때 곳곳에 카드 뉴스 형식의 자료를 게시했고, 518m를 걸은 뒤에 복습 퀴즈를 풀도록 했다. 아이들이 5.18을 수험용 지식으로 공부하는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 |
| ⓒ 서부원 |
알다시피,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 '동호'는 도청이 계엄군에 함락된 마지막 날 총격으로 사망한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문재학 열사를 모티프로 한 인물이다. 문재학 열사는 지금 국립 5.18 민주 묘지에 잠들어 있다.
소설의 제목을 모르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나, 정작 문재학 열사의 이름을 낯설어했다. 줄거리는 들어 대충 알고 있다는 한 아이는 시중에 소설 요약본이 돌아다닌다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소설을 마치 수험용 지식처럼 대하고 있는 세태가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5.18을 모르는 아이도 없지만, 아는 아이도 없다
내친김에 요즘 아이들의 5.18 관련 지식의 수준을 확인해 봤다. 지난 5월 18일 당일 교내의 '오월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QR 코드를 활용해 출제했던 퀴즈의 정답률은 참담했다. 이미 카드 뉴스 형식으로 안내된 내용인데도 다섯 문항을 모두 맞힌 경우는 채 10%가 안 됐다.
참고로, 출제한 문항은 다음과 같다. 5.18 당시 희생된 우리 학교 출신 인물을 말하는 것과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일갈, 당시 계엄군이 애국가를 발포 명령 삼아 금남로에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 날짜를 물었다.
또, 광주를 품은 산의 이름을 적게 했다. 등급이 없다는 사전적 의미를 통해 평등을 넘어선 수평적 공동체 정신을 일컫는 용어라는 점을 일깨우려는 취지였다. 마지막은 시대순 배열 문제로 매조지었다. 부마 민주항쟁과 12.12 군사 반란, 5.18,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파악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일 테다.
한강 작가의 일갈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문항은 별도의 예습 없이도 모두 맞힐 줄 알았다. 선물의 개수도 그러한 예상에 맞게 준비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교내 시험이나 모의평가 때 흔히 출제되는 시대순 배열 관련 문제조차 틀린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솔직히 5.18을 모르는 아이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아이도 없다. 5.18에 대해 말해보라면, 대번 시민군, 민주주의, 주먹밥, 전두환, 신군부, 비상계엄 등의 단어를 줄줄 읊는다. 그런데, 그 말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진 못한다. 그것이 5.18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 안다.
그나마 시험 덕이다. 5.18은 수능과 모의평가에 심심찮게 출제되는 내용인데, 지문과 답이 늘 틀에 박힌 듯 똑같다. 예컨대, 신군부가 지문에 나오면 시민군이 답이고, 시민군이 지문에 나오면 5.18과 전두환 신군부가 답이다. 최근엔 <소년이 온다>가 지문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5.18정신이 수험 지식에서 멈춰 섰다. 5.18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과 드라마, 영화가 줄을 이었지만, 삭막해진 아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데엔 역부족이다. 5.18뿐만 아니라 역사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는 요즘 아이들에게 '비추'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볼거리가 SNS에 넘쳐난다고 답한다.
만시지탄이지만, 교육의 '주도권'이 이미 유튜브 등 SNS로 넘어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곳에서 떠들어대는 '아무 말 대 잔치'가 아이들에게 가랑비에 옷 젖듯 '사실의 영역'으로 들어와 버렸다. 교과서의 공인된 서술과 자웅을 겨루는 단계에까지 진입한 느낌이다.
더욱이 교과서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라면, SNS에는 '꽃놀이패'다. 대놓고 왜곡과 폄훼를 일삼아도 교사들조차 일일이 사실을 확인하며 문제 삼기란 불가능하다. 하물며 아이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5.18 민주화 유공자 명단 공개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이유를 대도 막무가내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이름을 왜 감추냐"는 조롱 섞인 반문으로 응수하고, 혐오로 비화하며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SNS가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인 아이들에겐 5.18 유공자 명단에 가짜가 많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져 간다.
머지않아 교과서의 5.18 관련 단원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북한군 개입설'과 '유공자 명단 가짜설'과 같은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 수록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대법원의 판결문까지 부정하는 막장 행태도 대응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진실처럼 믿게 된다. 무시무시한 SNS의 힘이다.
지엽말단적인 부분을 꼬투리 잡아 역사적 의미를 훼손하는 경우도 흔하다. 한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사망자와 행불자의 숫자가 기관마다 다르다는 걸 문제 삼기도 했다. 이는 희생자의 유가족조차 '빨갱이'로 내몰아 진상규명을 방해해 온 독재정권의 책임인데도 나 몰라라 한다.
현대사 수업을 비롯한 민주시민교육이 강화되는 건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함께 성찰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단언컨대, 그저 수업 시수를 늘리는 등의 낡은 방식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 수록하고 시험에 출제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교사들은 시작도 전에 학년말 민주시민교육 이수 시간을 보고하라는 공문을 내리는 걸로 퉁칠 게 뻔하다고 말한다. 공문의 숫자와 교육의 효과를 동일시해 온 교육청의 오랜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거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병폐로 낡은 관료주의를 꼽는 교사들이 많다.
우선,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어 버젓이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 5.18과 4.3 항쟁 등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을 '빨갱이'로 낙인찍는 것부터 범죄다. 역사 왜곡에 대해 일벌백계하는 건 아이들이 불의에 휩쓸리지 않는 특효약이 될 것이다.
SNS에 떠도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내용을 걸러내는 힘은 토론과 설득을 통해 길러진다. SNS가 교과서를 조롱하는 마당에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이른바 AI가 지배하는 시대에 유용한 지식이란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일상 속 민주주의의 실천'이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라 할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교실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야 비로소 가능하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곳임을 몸소 깨닫고 행동할 때라야 교육의 형해화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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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에 진행된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5·18민주화운동 영령과 유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드렸다"며 "그룹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사진은 19일 서울 시내의 한 스타벅스 매장 모습. |
| ⓒ 연합뉴스 |
놀라운 건, 대통령까지 나서서 "저질 장사치의 막장 행태"라며 격분할 만큼 엄청난 파문이 인 사안이지만, 정작 아이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는 점이다. 대개 '선을 넘긴 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기획'이라는 식이었다. '5.18 탱크 데이'라는 말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고도 했다. 아이들은 '5.18 탱크 데이'가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줄 거라는 생각까진 못한 듯하다. 영역을 가리지 않고 난무하는 혐오 표현에 길들어진 탓일 게다.
아이들의 이런 반응은 이번 사달을 이렇게 끝낼 순 없는 이유기도 하다. 굴지의 대기업에서조차 '일베식 사고'가 횡행하는 현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중추가 될 20여 년 뒤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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