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외모, 이야기' 세 단어만 보고 고른 책
[박서정 기자]
지난 4월 2일부터 8일까지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된 '2026 디어마이리더 북페어'에 간 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냥 구경만 하다 오려고 했다. 그런데 한 부스 앞에서 발이 멈췄다. 표지가 화려한 것도 아니었고 제목이 특별히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책들과 다르게 이 책만 포장지로 꽁꽁 싸매여 있었다.
"얼굴에 대한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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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페어에서 만난 포장지에 싸인 책 북페어 현장에서 구매한 책들. 가운데 베이지색 포장지에 싸인 책이 『나의 이상하고 사랑하는 얼굴』이다. 키워드로 '얼굴, 외모, 이야기'라고만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어 내용을 알 수 없었지만, 그 비밀스러움이 오히려 손을 뻗게 만들었다. |
| ⓒ 박서정 |
몸무게가 바뀌자 사람들이 바뀌었다
20살 이후로 줄곧 말랐던 내가 세 달 만에 12kg이 쪘다. 158cm에 60kg, 과체중이었다. 그때 나는 홍보대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많은 활동이었다.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저체중이었다. 영상 촬영이나 학교 홍보 사진을 찍을 때면 묘하게 나를 빼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상한 건, 나도 그 분위기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예쁜 사람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게 맞지, 라고 스스로 납득하며 뒤에서 일을 더 열심히 했다. 내 얼굴과 몸이 공적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활동을 관리하던 어른이 내 앞에서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얘가 예쁘다고?!" 그 말이 농담처럼 던져졌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그러다 스트레스로 식욕이 줄면서 살이 빠졌다. 길거리에서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이 생겼다. 주변에서 예쁘다는 말이 늘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태도도 묘하게 달라졌다. 나는 달라진 게 없었는데, 숫자가 바뀌었을 뿐인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홍보대사를 할 때 살이 빠진 상태였더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씁쓸하다. 그리고 그 씁쓸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선명하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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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이상하고 사랑하는 얼굴』 표지 웜그레이앤블루 출판사에서 펴낸 『나의 이상하고 사랑하는 얼굴』 표지. 강원, 곽민지, 구달 등 17명의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주제로 쓴 글이다. |
| ⓒ 웜그레이앤블루 |
얼굴의 생김이 아니라 얼굴이 가진 권력을 싫어한다.
예쁜 얼굴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많은 것을 허락받는 세상. 몸무게가 바뀌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던 그 경험이, 내 앞에서 던져졌던 그 말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나는 달라진 게 없었는데, 세상이 나를 다르게 대했다. 나는 그 권력의 작동 방식을 이미 몸으로 느껴온 사람이었다.
그 경험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외모가 권력이라는 걸 몸으로 배우고 나니, 오히려 외모에 더 집착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얼굴에 시술을 받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0.1g만 늘어도 불안했다. 이게 나만의 유별난 강박이 아닐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세상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외모 강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외모를 권력으로 만들어버린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다.
조금 틀려도 될 것 같은 공간,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핫플이 되었으면 하는 '나만 알고 싶은 얼굴'.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비로소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이야기.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이 다른 것은, 그 말을 설교처럼 건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쓰고 실패하고, 여전히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포장지를 벗기고 나서야 보이는 것
책 표지를 감싸고 있던 포장지처럼, 우리도 얼굴 위에 무언가를 덧씌우며 살아간다. 더 예뻐 보이려고, 더 괜찮아 보이려고. 그 포장을 걷어냈을 때 남는 얼굴이 진짜 내 얼굴인데, 그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늘어가며 늙어가는'을 쓴 저자 정형화씨는 책 마지막에서 모든 나이의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그 나이에 맞게 변하는 얼굴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만족스러운 매끄러움보다 거친 나다움을 선택하겠다고. 그 문장을 읽으며 나도 같은 다짐을 하고 싶어졌다. 뒤에서 열심히 일했던 그때의 나를 탓하는 대신, 숫자가 아닌 나 자체로 충분했던 그 사람을 이제는 안아주고 싶어졌다.
외모 때문에 오래 흔들려온 사람에게, 거울 앞에서 자주 한숨을 쉬어온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의 얼굴은 이상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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