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여윳돈 수십조지만…‘마이너스 FCF’ 어디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6. 5. 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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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그룹 성적표

국내 10대 그룹(삼성·SK·현대차·LG·HD현대·한화·포스코·롯데·GS·신세계) 간 재무 체력 양극화가 뚜렷하다. 인공지능(AI)·반도체·조선 등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삼성·SK·현대차·HD현대는 막대한 여윳돈을 쌓는 반면, 유통·석유화학·배터리 중심 그룹은 투자 부담과 업황 부진에 짓눌리는 모습이다. 나이스신용평가가 발표한 주요 그룹의 잉여현금흐름(FCF, 잠깐용어 참조)을 보면, 삼성은 지난해 35조1539억원, SK와 현대차도 각각 22조3914억원, 11조1355억원 수준의 현금을 남겼다. 반면 LG, 한화, 포스코, 롯데는 나란히 수조원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같은 ‘10대 그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저조한 성적 LG·한화·포스코

배터리 투자 힘썼던 LG, 차입금 증가

2021년만 해도 롯데·LG·포스코는 10대 그룹 내에서도 ‘여윳돈 부자’에 속했다. LG는 3조원에 가까운 FCF를 기록해 재계 4위에 올랐고, 포스코가 2조758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롯데도 2조원 수준의 FCF를 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업 유지나 확장을 위한 투자에 쓸 돈을 빼고 수조원이 여윳돈으로 남았던 셈이다.

하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FCF가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2025년 기준으로는 LG가 -2조8317억원으로 10대 그룹 중 가장 저조했고, 한화(-1조1668억원)와 포스코(-1조4472억원), 롯데(-1조311억원)가 뒤를 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FCF 마이너스 상태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점이다. 한화와 포스코는 2023년부터 마이너스고, LG, 롯데는 2022년부터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LG의 경우 2022~2025년 FCF 마이너스 누적 규모가 23조2687억원에 달한다. LG가 연이어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화에 나선 이유다. 이규희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책임연구원은 “LG전자의 인도법인 지분 추가 매각,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추가 매각, LG에너지솔루션의 혼다 합작법인 유형자산 매각 등이 예정돼 있다”며 “다만 그룹의 약화된 이익 창출력을 고려하면 차입금 감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대 그룹 중 여윳돈 4위에서 10위로 떨어진 배경에는 배터리 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LG의 지난해 CAPEX(설비투자) 규모는 21조6486억원이다. 10대 그룹 중 삼성과 SK 다음으로 많다. 현대차(19조5116억원)보다 설비투자 부담이 크다. 상당 부분은 2차전지(배터리) 부문에 집중됐다.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10조9000억원의 설비투자를 집행했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의 에비타가 3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차입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순차입금은 2021년 5조6852억원에서 2025년 18조7324억원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시장에선 여전히 배터리 사업에 의문 부호를 던진다. 이규희 책임연구원은 “2026년 매출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으며, 고정비 부담 확대로 수익성 역시 저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포스코도 상황은 비슷하다. 배터리 소재(포스코퓨처엠,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신사업이 발목을 잡았다. 포스코는 2021년 이후 리튬·양극재·음극재·리사이클 등 배터리 밸류체인 전반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문제는 대규모 투자 직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리튬 가격 급락이 겹쳤다는 점이다. 2023년 영업적자 전환 이후 흑자를 못 내고 있다. 같은 기간 설비투자 부담은 수조원에 달한다. 배터리 소재 부문은 2025년에도 1조6002억원을 설비투자에 집행했다. 투자 비용 대부분은 외부 차입으로 조달했고, 이 과정에서 배터리 소재 부문의 에비타 대비 순차입금 배율도 49.9배까지 치솟은 상태다. 그나마 철강(포스코)과 인프라(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이앤씨·포스코디엑스·포스코플로우) 부문이 버티고 있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실제 포스코 철강 부문은 지난해 약 2조원 수준 영업이익을 기록해 그룹 전체 현금 창출력을 떠받쳤다.

수익성 개선에도 쓸 돈 많은 한화

롯데, 현금 창출력 하락에 유동화 카드

한화의 경우 수익성 자체는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한화의 에비타는 5조8557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4조539억원)과 비교하면 44.4% 증가다. 좀 더 직관적인 지표인 영업이익도 3조2708억원으로 전년 대비 60.2% 늘었다.

문제는 방산과 조선 부문 투자 부담이다. 2025년 한화가 설비투자에 쓴 돈은 4조8937억원이다. 여기에 운전자금 부담도 2조원 이상 불어났다. 결국 손에 남는 돈은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커지는 재무 부담에 한화는 지난 2년간 자산 매각과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 등 대규모 자구책을 시행했다. 그럼에도 재무 부담이 해소되지 않아 주요 계열사별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이어지고 있다. 2023년 이후 주요 유상증자 내역(신주 상장일 기준)을 살펴보면, 한화오션은 2023년 1조4970억원을 조달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2025년 2조9187억원 규모 자본 확충에 나섰다. 최근에는 한화솔루션이 대규모 유증을 추진했다.

롯데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주력 사업 양대 축이 모두 흔들린다. 특히 2021년만 해도 그룹 영업이익의 55% 이상을 차지하며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석유화학(롯데케미칼)이 휘청이고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이후 매년 영업손실이다. 2022년 7626억원 손실을 기록했고, 2023년 3477억원, 2024년 8940억원 적자를 냈다. 2025년에도 9435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유통·호텔 부문(롯데쇼핑·코리아세븐·호텔롯데·부산롯데호텔)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게 시장 평가다. 문아영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책임연구원은 “유통·호텔 부문은 2026년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로 인한 민간 소비 개선을 기대해볼 만하지만, 가계 채무 부담과 인구 구조 변화를 고려하면 유의미한 반등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전반적인 수익성 개선세는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요 사업의 현금 창출력이 부족한 탓에 차입 부담도 커지고 있다. 2025년 기준 에비타 대비 순차입금 배율은 8.8배까지 상승했다. 10대 그룹 중 가장 높다. 상황이 이렇자 각종 유동화 카드도 꺼내들고 있다. 2025년에도 롯데건설 퇴계원 부지 매각, 호텔롯데 아볼타 지분 매각, 코리아세븐 ATM 사업 매각 등을 진행했다.

10대 그룹 중 석유화학 부문과 배터리 소재 부문 계열사를 보유 중인 곳들이 현금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성장 정체 돌파하려다…

신세계도 ‘현금 압박’ 커진다

신세계도 경고등은 들어온 상태다. LG·한화·포스코·롯데처럼 FCF 자체가 장기간 마이너스인 상태는 아니다. 다만 시장에선 현금 창출력 대비 차입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에비타 대비 순차입금 배율은 4.6배다. 롯데(8.8배)와 한화(5.2배)에 이어 10대 그룹 중 세 번째로 높은 편이다.

배경에는 유통 산업이 마주한 구조적 한계가 있다. 국내 소비 시장 성장률이 둔화된 데다 쿠팡·네이버 중심의 이커머스 경쟁까지 격화돼 기존 백화점·대형마트만으로는 예전 같은 성장세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표로도 확인된다. 2025년 그룹 합산 매출(36조1205억원)은 2021년 대비 4.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3% 감소했다.

재계 관계자는 “가만히 있어도 일정 수준의 돈은 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 사업 구조만으로 미래 성장까지 담보하기 어렵다”며 “주요 그룹 중 가장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딜레마 속에서 신세계는 투자를 선택했다. 일단 신세계 계열(백화점·신세계인터내셔날 등)은 ‘점포망’ 관련 투자를 택했다. 2024년에는 광주신세계 유스퀘어 터미널 사업권 확보에 약 4700억원을 투입했고, 인천신세계 역시 2022~2025년 총 850억원 규모 유상증자가 진행됐다. 이마트 계열(이마트·스타필드·SCK 등)은 새 먹거리를 위한 신사업 투자에 속도를 냈다. 지마켓 지분 인수에 3조1000억원이 들어갔고, 스타벅스 운영사 SCK컴퍼니 추가 지분 인수(4800억원), 패션 플랫폼 더블유컨셉코리아 인수(2600억원), 미국 와이너리 쉐이퍼빈야드 인수(약 3000억원) 등도 이어졌다.

투자 과정에서 외부 차입이 늘었다. 특히 신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이마트 계열의 차입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마트 계열의 순차입금은 2021년 9조2000억원에서 2025년 11조3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정진원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선임연구원은 “지속되는 투자에 반해 에비타 창출력은 유의미하게 개선되지 못해 에비타 대비 순차입금 배율은 6배 내외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신세계 계열도 기존 투자 부담에 더해 이마트 계열 지원 등으로 차입 부담이 확대됐다는 게 나이스신용평가 시각이다. 신세계는 최근 수년간 이마트 계열의 신세계라이브쇼핑, 영랑호리조트, SSG푸드마켓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각각 약 2255억원, 750억원, 1300억원 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이 영향으로 신세계 계열 순차입금은 2021년 4조4000억원에서 2025년 4조8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정진원 선임연구원은 “그룹 내부 사업 재편과 계열사 지원 성격이 강한 거래”라며 “점포망 투자와 계열 지원 부담이 이어지며 당분간 높은 수준의 채무 부담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잠깐용어]

*잉여현금흐름(FCF)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이 실제로 손에 쥔 ‘남는 현금’을 뜻한다.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공장 증설·설비 투자(CAPEX) 등에 들어간 돈을 제외한 값이다. 쉽게 말해 빚을 갚거나 배당·자사주 매입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이다. 잉여현금흐름이 계속 마이너스라면, 본업으로 번 현금만으로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외부 차입이나 증자 등 외부 자금 조달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에비타 대비 순차입금 배율(Net Debt/EBITDA)

에비타 대비 순차입금 배율은 기업의 빚 부담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다. 순차입금(총차입금-보유 현금)을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로 나눠 계산한다. 쉽게 말해, 현재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력으로 빚을 갚는 데 몇 년이 걸리는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배율이 4배라면, 지난해 벌어들인 에비타를 전부 빚 갚는 데만 써도 4년이 걸린다는 의미다. 통상 3~4배를 넘으면 부담이 커졌다고 평가한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0호(2026.05.20~05.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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