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위상 굳힌 시진핑… 美 언론 “미국은 레임덕 슈퍼파워”
트럼프 “쇠퇴는 2년 전 바이든 탓”
레이 달리오 “中 중심 새 조공 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 이후 외신과 전문가들은 중국의 달라진 위상에 주목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미국과 대등한 입지에 올라섰음을 공식화한 데 이어 ‘슈퍼파워’로서 미국의 레임덕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 시사지 디애틀랜틱은 16일(현지시간)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대국 간 정상회담에 걸맞게 예우했지만 이란 전쟁에 대한 해법이나 포괄적 무역협정, 희토류 공급 약속 같은 실질적 성과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저 트럼프 대통령을 달랬을 뿐”이라며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미국 패권의 쇠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은 별다른 노력 없이 미국의 자멸을 통해 이익을 취했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수호자이자 냉철하게 판단하는 국가로, 이제는 미국마저 의지하는 강대국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레임덕에 빠진 ‘슈퍼파워’(미국)는 스스로 후퇴했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미국에 앞섰다는 평가는 성급하지만 적어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왔다는 분석은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줄리언 게비츠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 담당 국장은 이날 워싱턴포스트에 “시 주석은 중국 지도자들이 수십년간 추구해 온 목표인 미국 대통령과의 대등한 위치를 이뤄냈다”며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면전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한 시 주석 발언이 미국의 쇠퇴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전날 트루스소셜에서 “그것은 ‘슬리피(졸린)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4년간 우리가 겪은 엄청난 피해를 언급한 것”이라며 “2년 전만 해도 미국이 쇠퇴하는 국가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 시 주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전임 정부 탓을 하긴 했지만 현직 대통령이 미국의 쇠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자체도 이례적이다.
미 국무부 전직 고위 당국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트럼프 집권 1기와 비교하면 중국의 응대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며 “이는 미국이 계속 쇠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앞서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2017년 11월 집권 1기 방중 당시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포함해 2500억 달러 규모의 ‘선물 보따리’를 풀고 성대한 서명식까지 열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뒤늦게 에어포스원에 탑승시키면서까지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꾸린 이번 방중에선 공동 기자회견은커녕 합의문조차 나오지 않았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대변인과 기자의 문답 형태로 작성한 짧은 입장문에서 “양측이 동등한 규모로 각자 중시하는 제품의 관세 인하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실한 방중 성과로 기대됐던 미국산 농축산물 및 보잉 항공기 거래에 대해서도 중국 상무부는 “실질적인 해결을 추진한다”는 식의 모호한 입장만을 내놨다.
일각에선 시 주석이 트럼프 집권 1기와 2기 사이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주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했다는 분석도 있다. 조지프 크래프트 도쿄국제대 부학장은 후지TV에 “트럼프 1기 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인간은 현재를 보지만 하늘은 미래를 본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해 미·중 간 대립을 경계한 적이 있다”며 “시 주석이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을 톈탄공원(하늘에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국가 의례 공간)에 데려간 것은 펜스의 발언을 되돌려준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가에서도 미국의 쇠퇴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월가의 ‘헤지펀드 거물’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창업자는 이날 블룸버그TV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미국이 더는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중국과의 관계에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며 “많은 지도자가 중국을 찾아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조공 체제다. 중국의 힘을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되고 위안화의 입지도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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