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백신, 이번엔 아들 차례... 그런데 왜 4가일까?
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올바른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말>
[엄두영 기자]
2016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9가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9가 국내에 처음 출시되었습니다. 그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백신은 2가(서바릭스)와 4가(가다실)뿐이었는데, 9가는 기존 4가가 막아주던 사람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 아래 HPV) 유형에 다섯 가지를 더해 자궁경부암 예방 범위를 70%대에서 90%까지 넓힌 백신이었습니다.
저는 그 무렵 9가 백신을 세 차례 직접 접종했습니다. 남자도 HPV에 감염되고, 그로 인해 항문암, 음경암, 구인두암, 그리고 생식기 사마귀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의사로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가 백신은 식약처 허가 사항에도 남성 접종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보험도 안 되고 국가지원도 없었기 때문에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했습니다.
이후 제 아들에게도 망설임 없이 자궁경부암 백신, 정확히는 HPV 백신을 맞혔습니다. 물론 9가 백신으로 맞혔습니다. 비용은 들었지만, 의사로서 제가 알고 있는 가장 폭넓은 예방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럴 것입니다.
HPV 백신은 만 11~12세 접종이 표준 권장사항입니다. 성접촉이 시작되기 전, 면역 반응이 가장 강하게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국가예방접종사업이 12세를 대상으로 정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궁이 없는 아들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히는 게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의학적으로 보면 너무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진료실에서 보호자분들께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자궁경부암 백신은 우리 딸한테만 맞히면 되는 거죠?" 그동안 이 질문에 답하기는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아니요, 아들도 맞아야 합니다"가 정답이지만, 국가가 무료로 지원해온 대상은 여성청소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는 권합니다"라는 말과 "국가에서 무료로 해줍니다"라는 말은 보호자에게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많은 분들이 "그럼 일단 딸만…" 하고 미루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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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는 5월 6일부터 12세 남자아이도 HPV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 질병관리청 |
오는 5월 6일부터 12세 남자아이도 HPV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질병관리청은 4월 21일 공문을 통해 사업 시행을 안내했습니다. 2016년 우리나라 HPV 국가예방접종사업이 시작된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남성청소년이 사업 대상에 포함되는 변화입니다.
기존 사업 대상은 12~17세 여성청소년(2008~2014년생)과 18~26세 저소득층 여성(1999~2007년생)이었습니다. 여기에 2014년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새로 추가됩니다. 백신은 4가 백신이고, 첫 접종 후 6개월 간격으로 두 차례 접종하면 됩니다(만 9~14세는 2회 접종으로 3회 접종과 동등한 면역효과를 얻을 수 있어, 2회 일정이 표준입니다). 5월 6일부터 2014년생 남자아이를 둔 보호자에게는 무료접종 안내 문자가 발송될 예정입니다.
질병관리청은 매년 한 살씩 대상을 늘려 2027년에는 2015년생, 2028년에는 2016년생을 추가하고, 17세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HPV=자궁경부암 바이러스'라는 절반의 진실
HPV는 흔히 '자궁경부암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입니다. HPV 감염으로 생기는 암은 자궁경부암 외에도 항문암, 음경암, 구인두암, 외음부암 등이 있고, 이 중 상당수는 남성에게도 발생합니다. 특히 구인두암은 최근 미국 등에서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해, HPV 관련 암 중 남성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자리잡았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HPV는 성접촉으로 옮는 바이러스입니다. 한쪽 성별만 접종해서는 집단면역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가 백신을 맞는 일은 본인의 미래 암을 예방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 파트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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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PV는 성접촉으로 옮는 바이러스입니다. 한쪽 성별만 접종해서는 집단면역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가 백신을 맞는 일은 본인의 미래 암을 예방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 파트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 ⓒ pixels.com |
여기서 또 하나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그냥 9가로 맞으면 안 돼요?"
답을 드리기 전에 백신을 잠깐 비교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2가 백신(서바릭스)은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인 HPV 16형과 18형을 막아 자궁경부암을 약 70% 예방합니다. 그다음에 나온 4가 백신(가다실)은 여기에 생식기 사마귀를 일으키는 6형과 11형을 더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9가 백신(가다실9)은 4가에 31, 33, 45, 52, 58형 다섯 가지를 추가해 자궁경부암 예방 범위를 약 90%까지 끌어올린 백신입니다.
문제는 국내 여성의 고위험 HPV 감염에서 16형 다음으로 52형과 58형이 흔하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나라 자궁경부암의 상당 부분은 4가 백신만으로는 예방되지 않습니다. 4가 백신을 만든 미국은 정작 2017년부터 자국 내 4가 가다실 사용을 중단하고 9가로 일원화했습니다. 우리만 여전히 4가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지난해부터 의료계 안에서도 9가 전환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감염내과, 산부인과, 비뇨의학과, 이비인후과 등 HPV 관련 진료를 하는 여러 학회들이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국회에서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4가에서 9가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약 53억 원 예산을 증액 항목으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이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이 증액분은 최종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번 5월 6일부터 시행되는 무료접종 백신은 4가 백신으로 결정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흥미로운 자료가 하나 있습니다. 2025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의원실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서라도 백신을 맞은 남성청소년 중 83.2%(1만 8000여 건)는 9가 백신을 선택했고, 4가는 16.2%(3600여 건)에 그쳤습니다. 부모들이 어떤 백신을 더 신뢰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4가를 고수했을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비용입니다. 9가 백신은 4가보다 단가가 높아 전체 국가예방접종사업 대상에 적용할 경우 상당한 추가 예산이 필요합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정부는 '대상 확대(남아 포함)'와 '백신 고도화(9가 전환)' 가운데 전자를 먼저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아 역차별을 해소하고 남녀 동시 접종을 통해 집단면역 효과를 높인다는 명분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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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PV는 성접촉으로 옮는 바이러스입니다. 한쪽 성별만 접종해서는 집단면역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가 백신을 맞는 일은 본인의 미래 암을 예방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 파트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 ⓒ 질병관리청 |
이번 5월 6일 시행으로 새로 생겨날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미 4가 백신을 (자비든 무료든) 다 맞은 아이들이, 추가로 9가를 맞을 필요가 있을까요?
여기서 국제 권고와 국내 권고가 갈립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미국산부인과학회(ACOG)는 추가 접종을 권고하지 않습니다. 자궁경부암 원인의 약 70%를 차지하는 16, 18형은 4가에도 포함되어 있어 한계 효용이 제한적이라는 이유입니다.
반면 대한부인종양학회는 2024년 11월 개정된 권고안에서 "이미 2가 또는 4가 접종을 완료한 여성에게도 9가 추가 접종을 권고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한국 여성에게서 9가가 추가로 막아주는 52형과 58형 유병률이 미국보다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같은 백신을 두고 권고가 갈리는 이유는 정확히 이 역학적 차이에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저는 보호자분들께 이렇게 설명드립니다. "4가 맞은 건 결코 헛일이 아닙니다. 다만 한국 여성에게 흔한 두 가지 유형(52형, 58형)을 추가로 더 막고 싶으시고 비용 부담이 가능하시다면, 9가 추가 접종도 의학적으로 권고되는 선택지입니다." 강제는 아니지만 옵션은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무료로 4가를 맞을 12세 남자아이들의 부모도 비슷한 고민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국내 학회의 9가 추가접종 권고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9가가 4가보다 더 폭넓은 유형을 막아준다는 사실 자체는 남녀에게 동일하게 해당됩니다. 정답은 가족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국가가 4가만 지원한다"는 사실이 "9가는 의학적으로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정책은 단계적 확대 방식이라 2013년생(현재 만 12~13세) 이상의 남자아이는 무료접종 대상이 아닙니다. 여학생의 경우 2016년 사업 시작 당시 12~14세를 한꺼번에 무료지원했는데, 남학생은 한 살씩만 늘리는 방식이라 그 사이 연령대(현재 13~17세 남학생)는 사실상 영영 자비로 맞아야 합니다. 형평성 측면에서 추가적인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진료실에서 드리는 말씀
4가 백신이라고 효과가 떨어지는 백신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궁경부암의 가장 큰 원인인 16, 18번 유형을 모두 차단하기 때문에, 4가 무료접종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예방이 됩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어떤 백신을 맞든, 이미 4가로 시작했다면 같은 종류로 마무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질병관리청도 HPV 백신간 교차접종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5월 6일 이후 2014년생 남자아이를 둔 보호자분들께서는 가까운 보건소나 위탁의료기관에서 접종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접종은 첫 접종 후 6개월 뒤에 받으면 됩니다. HPV 백신은 성접촉이 시작되기 전에 맞을수록 예방 효과가 큽니다. 자녀가 사춘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기 전, 부모와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시기에 맞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보호자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딸이든 아들이든, 가능한 시기에 맞히는 게 정답입니다."
이 말은 의사로서 환자에게 드리는 권고이자, 한 아이의 부모로서 제가 직접 따른 결정이기도 합니다. 이번 5월 6일 시행되는 12세 남아 무료접종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출발입니다. 딸의 백신이었던 HPV 백신이 마침내 아들에게도 닿았습니다. 4가에서 9가로, 12세에서 17세까지... 남은 길도 멀지 않기를, 한 명의 의사로서 그리고 한 아이의 부모로서 기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1. 질병관리청, 「2026년 HPV 국가예방접종 사업 12세 남아 확대 시행 안내」(예방접종관리과-1759, 2026.4.21.) 2. 대한의사협회, 「2026 HPV 국가예방접종 사업 12세 남아 확대 시행 안내」(2026.4.23.) 3. 대한부인종양학회, 「HPV 백신 권고안 개정」(2024.11.) 4. US CDC, 9-Valent HPV Vaccine: Supplemental Guidance 5. US Drugs.com, Gardasil FDA Approval History (4가 가다실 마지막 도즈 2017.5.1. 만료) 6. ACOG Committee Opinion, Human Papillomavirus Vaccination 7. 식품의약품안전처, 가다실9프리필드시린지 의약품 정보(품목허가일 2016.1.25.) 8. WHO, Human papillomavirus vaccines: WHO position pape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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