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위해 필요했던 '빨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성호 평론가]
국가가 너무나 비겁하다. 보는 내내 그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개봉해 현재까지 전국 각지를 돌며 공동체상영을 이어가고 있는 <사북 1980> 이야기다. 1980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운영되던 민영탄광 동원탄좌에서 일어난 비극, 사북항쟁과 그 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아는 이는 알지만 여전히 모르는 이가 많은 사건이다. 그러나 이대로 잊혀선 안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다큐는 1980년 봄, 한 달 여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사북항쟁과 광주민주화항쟁의 여러 면모가 꼭 닮아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공화국이 사북항쟁의 의의를 더욱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에 깊이 동의한다.
2005년 참여정부에서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뤄진 모든 국가폭력으로부터 피해를 입고 숨죽여 왔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첫 국가단위의 발걸음이었다. 항일독립운동 및 해외동포사 정리, 한국전쟁 전후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사건, 군부독재 세력과 그 부역자들에 의해 이뤄진 국가폭력 등을 조사대 위에 올려 들여다보았다. 권력이 짓밟고, 역사가 돌아보지 않았으며, 민중 또한 관심 두지 못했던 수많은 사건들이 이로부터 바로잡혔다. 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2008년에 이르러서 진실화해위는 1980년 사북에 닿았다. 동원탄좌 광부와 그 가족들이 겪어낸 오랜 비극을 이제야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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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북 1980 스틸컷 |
| ⓒ 엣나인필름 |
더욱 중요한 문제는 사북 넘어 한국사회에 있었다. 때는 1980년 4월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죽은 뒤 장기간 계엄령이 지속됐고, 12월 12일 군사반란이 성공해 실권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돌아갔으나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크게 일던 복잡한 시기였다. 혹자는 이 시기를 서울의 봄이라 말했다. 시민사회가 국회를 압박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서 가결되리란 분석이 힘을 얻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민주화, 군이 아닌 시민이 권력의 주체로 복귀하는 것이다.
사북에서 파업 광부에 대한 강경진압을 요구한 군과 경찰에 대해 당시 도지사가 대화와 타협 방침을 고수한 건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결과였다. 덕분에 정부와 파업 주체인 광부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 광부들은 자진 해산했다. 약속이 이행되길 기대하며 업무로 돌아간 광부들은, 그 뒤 비극이 자리할 걸 전혀 알지 못하였다. 시민사회가 서울의 봄이 박살나고 신군부가 민주화의 열망을 짓밟을 걸 알지 못했듯이.
훗날 진실화해위가 밝힌 사실은 이렇다. 경찰은 파업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광부들을 수백 명이나 잡아들였다. 광부 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파업에 관련이 있다는 판단이 들면 마구잡이로 체포했다. 체포 과정에서의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졌다. 구치소에서부터는 더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을 당했다. 물고문과 각목구타, 당시 유행했던 온갖 기발한 가혹행위가 이뤄졌다. 50명 가까운 여성들에겐 성고문까지 이뤄졌다. 체포돼 고문당한 이가 모두 200여 명에 달했다. 고문당한 이들 중 다수가 이미 짜여진 각본에 따라 제 죄를 인정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파업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저 지나가다 사진에 찍히거나 해도 체포, 구금, 고문의 대상이 됐다. 재판정에 서는 족족 유죄판결이 떨어졌다. 체포된 200명 중 31명이 육군 제1군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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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북 1980 스틸컷 |
| ⓒ 엣나인필름 |
부존자원이 박약한 땅에서 급격한 산업발전을 이어가던 시대다. 석탄은 이 나라가 가진 대표적 자원이었다. 석탄을 더 많이 캐야 국가 발전 또한 빨라진다는 논리가 충실히 작동하던 때다. 한국 최대 석탄 생산산지로 꼽히던 동원탄좌는 산업의 근간을 마련하는 업체였다. 막장으로 내려가 석탄을 캐어 올리는 광부들은 그대로 한국의 산업전사였다. 당시 실제로 국가가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또 그들 스스로 가졌던 자긍심이 그러했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다른 많은 탄광보다도 동원탄좌가 특히나 더욱 그러했다. 수천에 이르는 광부들의 편의시설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고, 읍내에서 한참 산으로 올라야 하는 탄광마을 점포에선 읍내보다 더 비싼 가격에 생활용품을 판매했다. 조합이 운영하는 가게였으나 유일한 노조이자 어용노조였고보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비리 또한 심각했다. 업체가 기록하는 이를 제 사람으로 앉혀 석탄 채굴량을 조작해 광부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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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북 1980 스틸컷 |
| ⓒ 엣나인필름 |
영화는 1980년 일어난 파업으로부터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복원한다. 당시 현장간부였던 이원갑이 중심이 되어 기존 어용노조 지부장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가 있었는데, 사복 경찰관이 현장서 발각돼 도주하는 과정에서 일이 생긴 것이다. 사복 경찰관을 성난 광부들이 추격했고, 경찰이 막아선 광부들 앞으로 지프차를 몰아서며 2명이 크게 다친 것이다.
"경찰이 광부를 죽였다"는 소문은 가뜩이나 분노한 광부들을 격분케 했다. 통제 불가능한 흐름은 광부와 그 가족까지 30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다. 지프차가 도망쳤다 여겨진 정선경찰서 사북지서로 몰려가 그곳을 때려 부쉈고, 탄좌로 들어갈 수 있는 도로와 철도를 바리케이트로 막고 농성을 시작했다. 앞의 진압 경찰관 사망사건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1980년 4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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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북 1980 스틸컷 |
| ⓒ 엣나인필름 |
순순히 인정할 리 없으니 고문이 이어졌다. 이미 이근안으로 대표되는 국가폭력이 상시적으로 작동하던 국가가 아닌가. 광부들을 무리하게 진압하려다 경찰관 한 명이 숨지고 여럿이 중상을 입은 정선경찰서는 적극적이었다. 다큐 속 피해자들의 증언은 필설로 옮기기도 참담하다. 이근안이 행했던 것과 얼마 다르지 않은 기발한 고문이 여럿 자행된다. 광부의 아내인 부녀자들에겐 성폭력도 꺼리지 않았다. 그 정도가 일제강점기 고문경찰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전두환 이하 권력자들과 그에 부역한 군과 경찰은 사악했다. 제 노동자들이 피를 보는 걸 차라리 기꺼워한 듯한 기업 또한 그러했다. 이들은 이 사건으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사과조차 없었다. 군사법원 또한 참담하다. 법무관 경력을 살려 변호사 활동을 한 당시 재판관들은 군인 신분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심지어는 저들이 신군부에 저항해 형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듯한 인터뷰까지 한다. 영화는 그를 전면에서 다루지 않기를 택했으나, 재판부가 부당한 재판 과정에서 고문의 증거를 외면하고 직권 조사를 하지 않으며 유죄판결을 내렸단 것까지 외면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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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북 1980 포스터 |
| ⓒ 엣나인필름 |
영화는 보는 이의 감성을 건드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인 인트로에서부터 비감을 불러일으키는 현악기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삽입한다. 시종 보는 이의 감정을 지펴 영화 속 비극에 무리 없이 이입하도록 이끈다. 영화의 지향이 명확한 때문이겠다. 이성으로 알도록 하는 것을 넘어 운동으로 바꿔내길 원하는 까닭이겠다. 이날 상영회에서도 '늦은 메아리 운동'으로 관람과 후원, 서명으로 이어지는 참여로 국가로부터 사과의 이행을 요구하겠다는 목적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이와 같이 목적이 작품에 앞서 있는, 관객대중보다 작가가 위에 있음을 드러내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많은 경우 그 괴리가 작품을 해한단 걸 알아서다. 그러나 다음의 말을 듣고서 이 영화에 대한 판단을 보다 너그럽게 하게 되었다.
상영이 끝난 뒤 박봉남 감독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침묵을 강요했습니다. 상처는 계속됐습니다. 피해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 증오하고 대립했습니다. 그러기를 40년이 넘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답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북 광부들의 이름을 대한민국 노동운동사에 기록해야 합니다. 동원탄좌 처우가 이후에 좋아졌는데 다 전두환이 한 거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들을 폭도가 아니라 산업전사, 노동운동의 주역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과연 그러하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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