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장동혁은 왜 그랬을까

허진 2026. 5. 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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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정치부 기자

지난해 8월 장동혁 대표가 직전 대선후보였던 김문수를 꺾고 국민의힘 당권을 거머쥐었을 때만 해도 이토록 망가질 거라고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윤 어게인’ 세력을 등에 업은 1.5선 초짜 대표라는 한계가 명확하긴 했지만 예상을 깬 역전 드라마여서 새로운 스타 탄생의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8개월 만에 장동혁은 왜 이리됐을까. 장동혁의 첫 번째 오판은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다. 본인의 행동과 주변 측근의 전언을 종합하면 그는 대권을 꿈꾸는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권 장악 뒤 차기 대선이라는 큰 그림을 그린 듯하다. 남들이 보기엔 6·3 지방선거 직전에 강행한 8박 10일 방미가 어처구니없는 행태지만, 대권 가도의 연장선에서 보면 ‘한·미 관계가 삐거덕거릴 때 미 조야와 통하는 야당 대표’는 매력적 그림이었을 거다.

이런 그림에서 보면 안철수·유승민 같은 유력 경기지사 카드가 왜 성사되지 않았는지 짐작이 간다. ‘강력한 당내 경쟁자가 늘면 선거를 이겨봐야 무슨 소용이지’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을 수 있다. 장동혁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기 못 하는 근성을 달리 활용해 후보 구인에 매달렸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26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장동혁 대표가 당기를 흔드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두 번째 오판은 당원에 대한 과소평가다. 장동혁 측근들은 “지방선거에 져도 장동혁이 다시 당권을 잡는다”는 말을 아예 대놓고 한다. 이거야말로 국민의힘 당원을 핫바지로 보는 소리 아닌가. 물론 장동혁은 한동훈 제명처럼 당원이 원하는 걸 실천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을 질질 끌었고, 친한계까지 총구를 겨누다 장동혁 체제의 무능함만 증명했다.

무엇보다 장동혁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결정적 차이를 간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국민의힘 계열의 대선후보는 당권과 무관했다. 이길 때는 ‘될 사람’, 질 때는 ‘꼬장꼬장한 영남 할배’를 데려다 썼다. 탈당한 홍준표가 대선후보에서 연거푸 미끄러진 걸 그토록 억울해하지만, 그게 당원의 전략적 판단인 걸 어쩌겠나.

장동혁에 대한 당원의 냉정한 판단은 이미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18~20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장동혁의 대구·경북 긍정 평가는 25%로 전국 평균(27.9%)을 밑돌았다. 보수 본진에서조차 장동혁이 버림받을 위기인 것이다.

국민의힘은 정치 초짜가 당을 좌지우지하려다 당을 망치는 유구한 전통이 생길 위험에 처했다. 틀린 길인 걸 안다면 장동혁은 벗어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선거를 패배로 내몰고 복권된 역대 대표는 없지 않나. 김무성과 황교안을 보라.

허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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