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운이 좋아 [김구철의 소프트파워 외교]

레이건 저격 사건
1981년 3월말 미국발 뉴스 하나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취임 한 달이 갓 지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의 고급 호텔에서 총격을 받았다. 총알 1발이 폐를 관통하고 심장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자리에 박혔다.
레이건은 당시 70세, 현직인 민주당의 카터 대통령과의 선거전 내내 노령이란 이유로 공격받았다. 생명이 위독했으니 미국과 세계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은 현장에서 다섯 발을 쐈는데 그 중 한 발은 경호원 팀 매카시가 몸으로 육탄방어했다. 매카시는 복부에 총탄을 맞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고 훈장까지 받았다. 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 1993)에서 이 장면을 오마주한다.
레이건은 일련의 조크로 미국민과 세계인을 안심시켰다. 달려온 부인 낸시에게 “여보, 미안해, 더 킹(권투에서 상체를 숙여 상대의 펀치를 피하는 동작)을 잊어버렸어”라고 말했다. 수술실에서는 “의료진이 전원 공화당원이면 좋겠는데(I hope you are all Republicans)”라고 농을 건넸고 집도의(실제 민주당 지지자였다)는 “오늘만큼은 전원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받았다.
결국 레이건은 사건 2주일도 안돼 거뜬하게 백악관에 복귀했고 철인같은 정신력과 여유에 체력으로 ‘세계의 대통령다운 모습’을 과시했다. 사건 전 60%던 레이건의 국정 지지율은 사건 이후 70%를 훌쩍 넘겨 인기 절정에 이르렀다.
트럼프는 운도 좋아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2026년 4월 24일 워싱턴 힐튼 호텔. 정확하게 같은 장소에서 트럼프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이 벌어졌다. 하필이면 백악관 출입기자를 위한 만찬 행사였다. 경호요원이 중상을 입은 것까지 똑같았다.
다만 달랐던 것은 대통령이 흉탄을 맞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981년에는 오찬 후였고, 2026년에는 만찬 직전이란 작은 차이도 있었다. 트럼프 개인으로서는 2025년 대선 캠페인 당시 지지율 격차가 좁혀져 고전할 때마다 때마침 발생한 두 차례 피습 사건으로 지지율 격차를 벌리곤 했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이란 전쟁 장기화로 난처한 상황이었다. 전쟁 마감은 다가오는데 이란은 물고 늘어지고 군 수뇌부가 잇따라 사퇴했다. 중간선거도 가까워지는데 물가는 오르고 지지율이 계속 떨어졌다. 어찌 천우신조가 아니랴. 하느님이 보우하사 자신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하늘이 미국을 돕는 한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고 주장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민은 위기 때마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한다.(rally around the Flag.)
트럼프의 서사
트럼프는 자신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선배인 레이건처럼 국정 지지율을 높이고 중간 선거에서 압승할 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당시 레이건의 선거 슬로건은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이었는데 트럼프는 여기서 Let’s를 떼내고 Make America Great Again만 썼다. 그 약어가 MAGA다. 트럼프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역시 레이건이다. 1980년대 보수혁명을 주도하고 연임과 정권 재창출까지 모두 성공한 20세기 유일한 대통령, 위대한 대선배 레이건의 뒤를 따를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아마 트럼프나 지지하는 유튜버들이 한국 고전의 지식이 있다면, 미주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하시니, 하며 용비어천가 1장을 외지 않겠나? 여기서 천복은 당연히 미국인의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이고 고성은 레이건 대통령일 것이다.
무슨 고성이냐 하겠지만 250년 미국 역사에서 45년전 인물이면 고성이라 할 수도 있지 않겠나? 미주 육룡은 누가 들어간들 무슨 대수랴, 레이건과 본인 이름만 들어가면 충분하겠지. 그런 서사로 트럼프는 자신을 미화하면서 지지율 회복을 꿈꿀 것이다.

운장 트럼프의 선택
육사 11기 동기 가운데 12. 12 쿠데타의 주역이 된 ‘북극성회’가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등 5명의 운명을 놓고 시중에 농반 진반의 이야기가 유행했다. 열심히 공부하기는 전두환, 머리 좋기는 김복동이었는데, 사관학교 성적이 가장 우수했던 김복동은 대통령이 못 됐다. 머리도 나쁘고 아부도 못하는 전두환이 맨 먼저 대통령이 됐고, 특별한 재주는 없지만 전두환의 비위를 잘 맞춘 노태우도 대통령이 됐다.
결론은 공부 열심히 해도 머리 좋은 놈 못 당하고, 머리 좋아도 아부 잘 하는 놈 못 당하며, 아무리 아부 잘 해도 운 좋은 놈 못 당한다. 용장(勇將)보다 지장(智將), 지장보다 덕장(德將), 덕장보다 운장(運將)이라는 것이었다.
운장 트럼프는 이제 이란전쟁에서 본격적인 출구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하느님의 계시 운운 할지도 모른다.) ‘휴전’ 상태로 호르무즈 해협만 외곽에서 봉쇄한 채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고 끝내는 것이다.
어차피 이란도 무기가 고갈되고 돈 떨어져 전쟁을 계속할 수는 없다. 대신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2000억 달러 이상인 하메네이 비자금의 실태를 이란 국내로 계속 흘려 넣는 것이다. 1차 협상에 참석한 70명의 대규모 이란 협상단을 통해 하메네이 비자금의 전모가 이란 국내로 들어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테니 이 참에 불쏘시개를 본격적으로 던져넣고 모른체 내버려두는 것이다.
트럼프 운이 통할까?
이란에는 다우레(Dowreh)라고 친척, 친구, 동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정치와 사회를 논하는 폐쇄적 네트워크가 있다. 이란 특유의 소규모 사교활동 다우레(Dowreh)가 본격화되면 이란 국내에는 하메네이 비자금 소문이 급속도로 퍼질 것이다. 전쟁 중 집회와 결사, 언론이 극도로 통제되던 시절과는 다를 것이다. 다우레와 바자르를 통해 하메네이 비자금은 미국의 미사일보다 이스라엘의 전폭기보다 훨씬 더 큰 위험으로 자라날 것이다. ‘카더라’ 만큼 무서운 게 없다. 그냥 내버려두면 이란은 내부에서부터 와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다. 미국은 지난달 사상 최고의 에너지 수출을 기록했다. 수출량만 많은 게 아니라 수출 가격도 사상 최고니 겹경사라고나 할까? 에너지기업 등으로걷은 폭리세(windfall tax) 재원으로 중간선거 전 국민에게 2000~3000달러씩 현금을 뿌리면 어떻게 될까? 이란 전쟁으로 세입이 고갈되고 재정이 어려운 한국도 지방선거 앞두고 현금을 뿌리는데, 현금 넘쳐나는 미국이 그까짓 거 못할까?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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