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미술가가 빚은 역대급 숲속 작업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숲속에 자리 잡은 신상호 작가의 스튜디오는 그의 60년 예술 인생을 집약한 지성소다. 오직 앞을 향해 돌진하는 종마처럼 1960년대부터 도예를 시작한 이래 그는 좀체 뒤돌아본 적이 없다. 한국 전통 도예 장인, 도자 조각과 건축 도자의 선구자, 도예의 배신자 혹은 이단아, 교수, 기획자, 컨테이너 단위로 물건을 실어 오는 역대급 컬렉터. 신상호를 향한 이 수식어들은 그저 새로움을 찾기에 바빴던 행보를 신통하게 여기거나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붙인 것일 뿐, 정작 본인은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를 ‘흙장난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미술 대학을 다니다 별안간 옹기쟁이가 되겠다며 이천 도예 공방에 들어간 청년 신상호의 치기는 올해 78세가 된 노장의 여유로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다. 1976년 허름한 우사가 놓인 부지에 집과 작업실을 짓고 살아온 지 50년. 그간 건물에는 지붕부터 출입문, 벽과 바닥, 계단과 문 손잡이, 테이블과 의자에까지 세라믹이 덧대어졌고, 수백 점의 작품은 물론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지는 방대한 수집품들이 구석구석 각을 맞춰 정리돼 있었다. 2015년 대중에게 공개한 야외 전시 공간과 카페, 미술관은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로에베가 후원한 대규모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가 화제였어요. 한국적 깊이가 느껴지는 전통 도예부터 강렬한 아우라를 풍기는 도자 조각, 기존 도예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자 타일과 방대한 수집품까지. ‘이게 정말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게 맞나?’ 싶었습니다 60년간 해온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는 건 저도 처음입니다. 솔직히 말해 잊고 있던 작업도 많았는데, 스스로 돌아볼 수 있었죠. 살면서 갖기 어려운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무한 변주’라는 말이 그간의 여정과 잘 어울려요 저는 가만히 못 있어요. 성공한다 싶으면 도망쳐요. 사람들이 내 작품을 원하고 찾기 시작하면 장사꾼이 된 것 같아요. 성공한 작업을 반복하는 건 결국 자기복제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게 싫어 늘 특정 시점에서 다른 작업으로 넘어갔어요.




지붕과 벽, 바닥을 가득 채운 타일 작품과 철판, 세라믹과 접목된 가구들까지. 그야말로 작가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네요 필요에 따라 공간을 조금씩 넓히고 손보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커미션 작업하고 남은 작품이나 재료를 가져와 덧댄 부분도 있고요. 공간에 결합된 작품이 시간이 지나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 파티나를 지켜봐 왔죠.


국적과 용도, 값어치가 각기 다른 방대한 수집품도 인상적입니다. 신상호에게 수집이란 수집은 작품과는 다르지만 작품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콘텐츠가 나와요.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상상합니다. 예를 들어 저 창가에 놓인 촛대는 성당에서 사용했고, 그 아래 놓인 박스는 아메리카 남부에서 옷을 보관하던 거예요.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사물이죠. 이런 것들이 만나면 상상의 여지가 생깁니다. 박스에 넣었다 빼며 컬렉션을 조합하다 보면 형태와 의미가 자유자재로 변해요. 그 과정에서 영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1968년 학부생 시절 이천 도예 마을을 방문한 이후 쭉 흙을 만져오고 있어요. 앞길 창창한 청년에겐 의외의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20대 때의 저는 반항의식이 강했습니다. ‘공부해라, 의사 돼라’ 하는 집안과 당시 사회를 향한 저항의 몸짓이기도 했어요. 그때는 도예라는 개념도 없었고, 흙을 만지는 사람은 그저 옹기쟁이라고 불렸습니다. 저는 흙을 만지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어요. 마음이 편했고, 부자가 될 필요도 못 느꼈죠. 그런 경향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흘러온 거죠. 사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제목도 처음엔 ‘흙장난’으로 하려고 했는데, 다소 가벼워 보여 바꾼 거예요.

흙이 왜 좋은가요 흙만큼 재미있는 재료가 없어요. 금속이나 나무, 돌, 유리 등의 재료는 이미 저마다 성질과 방향성이 있지만, 흙은 그냥 흙입니다. 그 자체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고, 물에 섞어서 만져야 형태가 나타나죠. 흙장난이라고 해서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다뤄보면 굉장히 어려운 재료입니다. 동시에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기도 하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예요. 쉽게 소진될 것 같지만 계속해서 연구하면 끝없이 생성되니까요. 제 작업은 고갈되지 않는 두 가지, 흙과 아이디어가 만나는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전통 도예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안주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도자를 이용한 조각과 회화 그리고 건축 외벽까지, 그야말로 흙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왔죠 새롭지 않으면 못 견뎌요. 지루한 건 정말이지 못 참습니다. 전통 도예로 자리를 잡고 나니 순수 미술과의 연계를 고민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작업한 분청 항아리들은 당시 제가 느낀 갈등의 집합체예요. 물레로 만들었기 때문에 형태는 다 원형이지만, 표면은 칼로 긁고 흙을 채우며 그림을 그렸죠. 캔버스에서 그림을 그리고 지우며 반복하듯이요. 몇 년 지나고 나서 분청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이걸 끊어내야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흙으로 빚은 동물 형상의 조각을 보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운이 느껴집니다. 원시미술의 시작이 염원이듯 이 조각 작품에도 작가님의 염원이 담겨 있나요? 신상호에게 이 토템은 어떤 존재일까요 흙장난으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어요. 흙으로 먹고살며 가족을 부양했죠. ‘계속 작업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마음이 들어가 있었어요. 저는 토템을 ‘내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존재’로 여기고 만들었어요. 묘하게 시선이 따라오는 것 같고, 볼 때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하죠. 특정 동물을 지칭하진 않았고 지구상의 여러 동물 이미지가 혼재된 상상 속 형상입니다. 그 조각들은 제 감정과 생각이 사람에게 닿도록 도와주는 전달자예요. 다리가 여러 개로 된 말은 제가 아프리카에서 느낀 ‘힘’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동물들이 먹고살기 위해 쫓고 도망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어요. 그 다리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과 에너지가 정말 압도적이었죠.






신상호의 다음 변주는? 예술가로서 어떤 바람을 품고 있나요 여기까지 왔다’거나 ‘이제 끝이다’ 같은 말은 할 수 없어요. 그냥 살다가 어느 날 탁, 그렇게 끝나겠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좀 더 바란다면 계속 수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집은 작업에 비하면 아주 ‘익사이팅’해요. 골머리도 안 아프고요. 앞으로는 ‘묵시록’ 연작을 계속 이행하면서 수집품을 활용한 설치미술 작업에만 매진하려 합니다. 그래서 계속 모으는 거예요. 모아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려고요. 그럼 사람들이 이렇게 묻겠죠. “신상호는 왜 정신병자처럼 저런 걸 계속 모을까?” 그때 전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놈아, 이게 예술이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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