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딸에게 '엄미새'라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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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민 기자]
20대 초반의 딸들에게서 가끔 '이상한' 신조어를 '학습한다'. 신조어나 은어는 그 말을 쓰는 세대와 시간을 관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50대인 나는 애초 학습할 수 없다. 그저 학습하려는 척 할 뿐이다. 두 딸들이 저희들끼리 신조어를 주고받을 때도 그러려니 한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언어 문화려니 생각하지만, 가끔 '킹 받는'(아직도 이 말의 뉘앙스를 정확히 모른다는 게 함정) 언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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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을 엄미새라 부르는 나의 '새끼'들 |
| ⓒ 안소민 |
여하튼 처음에는 듣기 거북하더니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딸들이 정색한다. 하나의 언어 변화를 두고 과거의 인식과 기준을 들이대며 언어 순화론을 펼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그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엄미새는 좀 너무 하지 않니?라고 말하는 나 자신도 30년 전, 고딩 시절 담임 선생님을 우리끼리 '담탱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나저나 '엄마에 미쳤다'는 건 뭘까? '엄미새'라는 말보다 '엄마에 미쳤다'는 그 인식이 흥미로웠다. 엄마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걸까? 엄마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걸까? 딸아이가 하는 말을 유추해 보면 "나는 엄미새야", "내가 엄미새잖아"라고 농담하듯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나 때는 '엄마를 존경한다',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은 했어도 '엄마에 미쳤다'고는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많이 지나치고, 사랑하는 것보다는 더 일방적인 표현인 걸까? 아니면 좋아한다는 말을 더 강조하고 싶은데 사랑한다는 표현은 왠지 낯간지러워서 하는 말?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극대화의 표현일까. '개어렵다' '개힘들다'처럼(이 단어를 처음 애들한테 들었을 때의 그 생생한 충격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신조어나 은어는 하나의 이론이나 원인으로 명료하게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사회, 문화,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정동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원인을 완벽히 분석해서, 올바르게 '계몽'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미친 거다. 다른 의미로.
그런데 또 엊그제 딸아이로부터 희한한 얘길 들었다. 친구들끼리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를 '동결건조'시키고 싶다는 이야기다. 물론 '넝담'이다. 동결건조라면, 참깨라면에 들어있는 건조달걀 조각 같은 건가? 엄마가 귀여워서, 늙는 게 싫어서, 죽는 게 싫어서 동결건조하고 싶다고 말한단다.
이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나만 이상한 사람 된다. 다만, 그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챗지피디나 AI 도구를 이용해 엄마의 말투, 엄마의 대화를 학습시키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엄마가 없을 때를 대비해 엄마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쓰기 위해서란다. 소오~~름.
내가 70대 엄마에게 '엄미새'라고 한다면
그런데 표현과 방식만 차이가 있을 뿐, 나도 어떤 사람에 한해서는 '동결건조'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령 아이들이 아주 어린 시절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이 아이가 영영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 말은 퍽 아련하고 아름답게 들리는데 동결건조는 섬뜩하다.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 좋아', '곱고 예쁜 우리 엄마가 영영 늙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참으로 이질적이고 발칙한 조합으로 배치했다. '엄마'+'미친', '엄마'+'동결건조'.
외국어는 어느 정도 배울 수 있고 익히고 소통할 수 있지만, 딸아이 세대 20대 신조어는 배울 수는 있지만 익히기는 불가능하다. 언어는 몸에서 나오는 건데, 내가 그 몸이 아니니, 익힐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설령 익혔다 해도 쓰고 싶지 않다.
내 언어가 아니기도 하지만, 그들의 언어 세계는 그들만 쓰고 즐길 수 있는 영역으로 존중해 줘야 한다. 내가 '킹받아', '개힘들어' 라는 표현을 쓰면 애들은 저희끼리 웃는다. 내가 정확히 잘 모르고 쓴다는 거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mother, 오카상보다 더 익히기 어려운 인식의 폭.
내가 올해 70세 중반을 넘어가는 나의 엄마에게 "나는 엄미새야", "엄마를 동결건조시키고 싶다"라고 하면 엄마는 뭐라 할까? 오히려 재밌다고 할지도. 아... 그럼 진짜 킹받을 거 같은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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