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의 책섶]AI가 넘치는 회의실에서, 다시 사람을 생각하다
기술 시대, 디지털 서비스 기획이 다시 묻는 '고객 경험'
데이터·AI로 가득한 사회, 기획은 여전히 사람에서 출발
회의실 테이블 위에 기획서 몇 장이 흩어져 있다. 요즘 기획서에는 빠지지 않는 단어가 하나 있다. AI다. 추천 알고리즘, 데이터 분석, 자동화. 슬라이드 몇 장만 넘기면 미래가 이미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기획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묘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이 서비스는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술은 빠르게 진화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데이터 분석이 화두였고, 그 이전에는 모바일이 세상을 바꿀 것처럼 이야기됐다. 지금은 AI다. 기술은 언제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서비스가 실패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혜경·한윤의 '디지털 서비스 기획과 비즈니스 모델'은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디지털 기획 교과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을 넘기다 보면 저자들이 기술보다 먼저 붙잡는 것은 '고객 경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술을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로 사람의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묻는다.
디지털 서비스 기획이라는 말은 종종 기능 설계나 화면 배치 같은 문제로 축소된다. 메뉴는 어디에 둘 것인가, 버튼은 어떤 색으로 만들 것인가 같은 질문들이다. 물론 그것도 기획의 일부다. 그러나 저자들은 기획의 출발점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한다. 고객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서비스를 찾는지를 먼저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그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한다. 기초적인 e-비즈니스 개념에서 시작해 데스크 리서치와 데이터 분석을 거쳐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고, 페르소나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한 뒤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된다. 기획이라는 일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여러 단계의 판단과 선택을 거쳐 완성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요즘 많은 책이 AI를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은 기술의 구조나 가능성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 책이 조금 다른 이유는 AI를 거대한 기술 담론이 아니라 기획자의 도구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각 장에 들어 있는 'AI 실습'은 생성형 AI를 실제 기획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데이터 분석을 돕는 도구로, 아이디어 발굴을 위한 보조 장치로, 혹은 서비스 설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도구로 AI를 다룬다.

저자들의 이력도 흥미롭다. 한 사람은 기업 현장에서 오랫동안 CX와 UX 전략을 다뤄온 실무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AI가 소비자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온 학자다. 현장에서 쌓인 감각과 학문적 분석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책이 지나치게 이론적이지도, 그렇다고 단순한 실무 지침서로 흐르지도 않는 이유다.
디지털 서비스라는 말은 종종 기술의 언어로만 설명된다. 알고리즘, 데이터, 플랫폼 같은 단어들이 앞에 놓인다. 하지만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경험이다. 앱이 얼마나 편리한지, 문제를 얼마나 빨리 해결해주는지, 사용 과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서비스의 경쟁력은 종종 기술의 수준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갈린다. 같은 기술을 가지고도 어떤 서비스는 오래 살아남고, 어떤 서비스는 금세 잊힌다. 차이는 결국 사람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었느냐에 있다.
이 책은 그 오래된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기획의 출발점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고, 그 경험을 새로운 가치로 연결하는 일. 디지털 서비스 기획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모든 작업은 결국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기술은 계속 바뀐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고, 새로운 플랫폼이 생긴다. 그러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같다. 사람은 왜 이 서비스를 찾는가. 그리고 그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 다시 설계될 수 있는가.
디지털 시대의 기획을 다룬 책이지만, 이 책이 결국 말하는 것은 기술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다.
디지털 서비스 기획과 비즈니스 모델: AI 시대의 고객경험(CX) 혁신 전략|박혜경, 한윤|청람|240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빠, 이제 전화하지 마세요"…Z세대 5명 중 3명 "불편하면 연락 끊어"
- "눈에 보이면 일단 사라"…다이소 또 '5000원 꿀템' 품절 대란
- '연봉 1억' 주장한 남편, 알고보니… "남편이 불쌍"VS"배신감 문제"
- '두물머리 시신' 유기男의 과거…여중생에 150명 성매매 강요
- "올해만 893% 폭등"…너무 올라 불안한데 더 오른다는 이 주식[주末머니]
- "재고 진짜 없나요"…다이소 또 '5000원 꿀템' 품절 대란
- "그냥 비염 아니었다"…석 달째 코막힘 '이것' 때문이었다니[콕!건강]
- "약국에서 사면 비싸잖아요"…단돈 '3000원'에 대신 달려가는 곳[지금 사는 방식]
- "섬 전체가 한통속" 제주도 장악한 '그들만의 룰'…"싸게 팔면 보복" 주류협회 '짬짜미' 들통
- "살목지에 진짜 뭐 있나봐"…소름돋는 소리의 정체는[실험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