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의 어프로치] 설 자리 잃어가는 금융위 엘리트
(서울=연합인포맥스) 국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의 주요 국장급 자리가 수개월째 직무대리 체제로 연명하고 있다. 자본시장국장 보직은 작년 10월 박민우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승진하면서 넉 달째 공석으로 고영호 자본시장과장이 대리하고 있으며, 대변인 보직도 손영채 국장이 국민성장펀드 추진단장으로 발령받았지만 후임 국장 인사가 나지 않으면서 한 달 넘게 겸직하고 있다.
업무 연관성이 없는 자리에 한 발씩 담그고 있거나 과장이 국장 역할까지 하는 이 어중간하고 애매모호한 역할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으니 답답하다. 이미 내부적으로는 후임 국장들이 정해졌지만,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조직이 어수선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부동산·자본시장의 정상화를 강조하며 하루가 멀다고 '숙제'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금융위가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바로 고위공무원 정원 초과 문제다. 금융위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4조에 따르면 금융위 고위공무원은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1명을 포함해 9명으로 묶여있다. 누군가 새로운 보직을 맡기 위해선 누군가는 나가줘야 한다. 현재 금융위는 정원이 차있는 상태다. 외부로 이동할 국장급 인력이 자리를 찾지 못해 그대로 본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통 1급이나 국장급 공무원은 퇴직 후 금융 공공·유관기관장 또는 임원으로 임명된다. 특히 금융과 관련한 유관기관은 처우가 좋고, 더러는 3년 재직후 민간 재취업이 가능한 '신분 세탁'이 가능한 자리도 있어 타이밍을 잘 맞춰 퇴직하는 것도 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정부들어 이러한 공식이 깨져버렸다. 관료 출신들이 인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면서 인사 스텝이 꼬여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단행한 금융 공공·유관기관장 인사에서 관료들은 단 한 명도 임명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장은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18기) 동기로 노동법학회에서 함께 활동한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김성식 예금보험공사 이사장도 대통령과 사시 동기로 과거 대통령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적 있다. 직전 금융위 출신이 맡았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국정기획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성주 전 국회의원이 임명됐다.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도 금감원 부원장을 지낸 학계 출신이다.
금융위 관료들이 이름을 올렸던 국책은행장도 모두 내부 출신이 기용됐다. 작년 9월과 11월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 황기연 수출입은행장이 취임한 데 이어 최근 기업은행장에 장민영 IBK자산운용 대표가 임명됐다. 직전 금융위 관료 출신이었던 KDB생명 대표에도 최근 김병철 수석부사장이 꿰찼다. 모두 금융위 출신이 대대로 자리를 이어오거나 기재부 출신과 번갈아 맡아오던 자리다.
현 인사 기조가 유지된다면 다른 산하기관 및 유관기관장 역시 비모피아 출신들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남은 자리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신용정보원장, 금융결제원장, 한국예탁결제원장, 여신금융협회장, 금감원 수석부원장, 서울보증보험 사장 정도다.
금융위 한 고위직은 "이번 정권 들어 1급이 일괄 퇴임했지만 아무도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면서 "관료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 말라는 분위기라 조직이 적지 않게 동요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금융위는 행시 성적이 우수한 인재들만 모이는 최고 엘리트 집단이다.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하지만, 소수의 인력이 광화문에서 금융의 중심을 움직인다는 자부심으로 불가능한 일도 만들어내는 힘을 10년 넘게 지켜봤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부실 사태, 레고랜드발 부동산 PF 위기 등으로 나라가 낭떠러지에 몰렸을 때 유동성 지원과 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다시 일으켜낸 중심에는 언제나 금융위가 있었다.
우수 인재는 출신과 상관없이 적재적소에 기용해야 한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적임자라 판단되는 인물은 그 자리가 어디가 됐든 계속 쓰여야 마땅하다. 같은 맥락에서 공무원 퇴직 관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고 엘리트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국가적 손해다. 적어도 이들이 선배들을 보며 '차라리 일찍 민간으로 이직해 돈이나 많이 벌자'며 이탈하는 일이 더는 없길 바란다. (금융부 이현정 기자)

hjlee@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9시 01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Copyright © YONHAPINFOM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