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지능 아동, 학교 안에서 변화의 길을 찾다
또래보다 조금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 '느린학습자', '달팽이', '거북이',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 경계선지능을 가진 아동을 부르는 말은 다양하지만, 그 이름이 아동들의 삶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경계선지능'이라는 말은 여전히 낯설고, 누군가에게는 조심스럽다. 아동을 이해하기 위한 말이 낙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복권위원회 복권기금으로 진행되는 '경계선지능 아동(느린학습자) 사회적응력 향상 지원사업'은 2020년부터 지역 내 아동복지시설, 복지관, 학교 현장에서 이들을 만나고 있다. 올해는 전국 약 780개 기관이 경계선지능 아동의 성장을 함께할 예정이다. 각 지역 수행기관들과 함께 경계선지능 아동 지원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기자말>
[느린IN뉴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관계를 맺는다. 경계선지능 학생의 어려움은 단순한 학습 부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래 관계와 학교 규칙 이해, 일상 적응의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는 2022년부터 학교사회복지실을 기반으로 한 '나답게.아름답게.가치롭게.기쁘게(이하 나아가기)' 사업을 운영하며, 경계선지능 아동을 지원하고 있다. 임효정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팀장을 만나 현장의 변화와 남은 과제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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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아가기 사업 운영 사진. |
| ⓒ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
임효정 팀장은 "교실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학습이 아니라 관계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학교 안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를 사는 경우가 반복되는 것이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답을 하거나, 수업시간 내내 멍하니 앉아있어 학급 운영에 '걸림돌'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경계선지능 학생의 특성은 '태도 문제'로 오해받기 쉽다.
임 팀장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으로 판단하면 아이의 어려움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행동들은 '태도'보다 이해 속도와 정보 처리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학생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학교사회복지사들이 경계선지능 아동의 특성을 알고 접근해야 한다"며 "협회도 보수교육과 연수를 통해 관련 이해 교육을 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사회복지실의 역할은 이러한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아동을 중심으로 한 체계를 함께 움직이는 데서 출발한다. 교실에서 드러난 어려움을 또래 관계와 정서 상태, 가정 환경과 함께 살피고 담임교사나 보호자와 협력해 개입 방향을 정한다. 필요하면 상담기관이나 지역 자원과 연계해 지원을 확장하는 사례관리 거점 역할도 맡는다.
임 팀장이 학교사회복지실을 '학교 안의 사회복지관'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학교라는 일상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변화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와 보호자, 지역사회 자원을 연결해 아동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조정하는 구조가 갖춰져 있다는 점이 학교 기반 지원의 강점이다.
지원과 낙인 사이, '경계선지능'이라는 벽
아동의 특성을 포착하더라도, 나아가기라는 지원사업으로 연결되기까지 가장 큰 관문은 사업 안내 단계다. 경계선지능 아동을 위한 지원사업이라는 설명 자체가 일부 보호자에게 장벽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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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임효정 팀장이 느린인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 느린인뉴스 |
협회는 인식을 넓히기 위해 '나아가기'라는 사업명과 함께 경계선지능 아동 지원이라는 표현을 공식 문서에 병기하고 있다. 임 팀장은 "제도화나 법제화를 논의하려면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다"며 "경계선지능 아동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자리 잡아야 지속적인 정책과 예산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호자의 수용 여부는 지원 방향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기도 한다. 아이의 특성을 '문제행동'이나 '성격'으로만 이해하면 대응 역시 훈육이나 통제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배움의 속도와 인지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가정과 학교의 접근 방식도 달라진다. 임 팀장은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던 보호자도 아이의 변화를 함께 경험하면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낙인이 아니라 이해"라고 말했다.
현장은 두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낙인을 최소화하면서도, 지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일. 임 팀장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면서도, "부정적인 선입견을 넘어 적절한 지원이 있으면 충분히 자립해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함께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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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경계선지능 아동의 사회적응력 향상 지원사업 '나.아.가.기' 소개 자료. |
| ⓒ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
나아가기는 학교사회복지실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학교사회복지사는 담임교사, 보호자의 의견을 듣고 아동의 특성에 맞는 인지학습과 사회적응력 활동을 기획한다. 파견전문가는 학교를 찾아 인지학습과 사회적응력 활동을 진행하며, 프로그램 운영 중 발견된 아동의 변화와 특성을 학교사회복지사와 공유한다. 파견전문가가 학교를 찾아 인지학습과 사회정서 활동을 진행하며, 아동의 특성에 맞춘 개별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인지학습은 1대 1을 원칙으로 하고, 파견전문가 1명이 최대 3명까지만 맡도록 했다. 학생의 학습 수준과 욕구를 고려해 개별 지원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다. 중학생은 시험 대비와 함께 고교 진학 준비도 지원한다. 특성화고 진학을 희망하면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 연습, 입시 요강 탐색을 함께하기도 한다.
사업 과정에서 한 차례 이상 가정 방문도 이뤄진다. 학교에서의 관찰과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보호자를 직접 만나 아이의 생활 환경을 살피고, 가정에서의 역할을 함께 논의한다. 학교 안 지원이 가정으로 이어지도록 구조를 설계했다.
이처럼 나아가기의 핵심은 학습 성취 향상에만 있지 않다. 임 팀장은 "경계선지능 아동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초학습을 넘어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나아가기는 일상생활 기술, 진로 탐색, 자립 지원을 아동 특성화 활동의 세 축으로 운영한다. 활동에서는 위생과 건강 관리, 생리 관리 등 기본 생활 영역을 점검하고, 여가 계획 세우기, 범죄예방 교육, 돈 관리, 사회생활 스킬 같은 자립 기술을 다룬다. 온라인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도 포함한다. 학교 안 활동에 그치지 않고 외부 공간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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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열린 나아가기 사업설명회에서 사업교 담당자가 운영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
| ⓒ 느린인뉴스 |
나아가기에서는 아동의 어려움뿐 아니라 활동 과정, 그 속에서 발견한 강점을 주기적으로 보호자와 함께 공유한다. 프로그램을 통한 성취와 변화가 전달되면서, 아동과 학교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임 팀장은 "학교에서 오는 전화가 아이를 돕기 위한 연락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보호자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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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12월 수원 산남초에서 진행된 나아가기 성과발표회. |
| ⓒ 산남초등학교 |
최근에는 집단 프로그램을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참여 학생이 교실에서 함께 어울리고 싶은 친구를 직접 초대해 공동 활동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을 특정 학생만의 지원으로 보지 않도록 설계해 자연스럽게 또래 관계를 넓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필요하면 복지사가 교실에 들어가 학급 단위 이해 활동을 진행하며 분위기를 조정한다. 개별 학생 지원이 교실 전체의 관계 변화로 이어지도록 연결 고리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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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 지원을 위한 제도적 방안 모색 토론회'. 학교 내 경계선지능 아동의 어려움을 짚고,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
| ⓒ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
오는 3월 시행을 앞둔 학생맞춤통합지원 정책이 현장에서 경계선지능 학생 지원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제도 설계와 실제 운영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은 교사, 상담교사, 보건교사 등 기존 인력을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돼 있으나, 복지 전문 인력의 역할과 권한은 명확히 구조화돼 있지 않다. 학습 지원과 복지 개입을 함께 다뤄야 하는 경계선지능 학생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담 인력 없이 협의체 중심으로만 운영할 경우 실질적 개입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학교사회복지사의 낮은 배치율도 한계로 지적된다. 전국 1만여 개 학교 중 학교사회복지사가 배치된 곳은 약 1900곳으로 17.7% 수준에 그친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시도별로 보면 인천은 41.3%로 비율이 가장 높지만, 경기(6%), 경남(8%), 충북(8.8%) 등 한 자릿수에 머무는 지역도 있다. 일부 지자체 차원에서 학교사회복지사 배치를 늘리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전국 단위의 제도화는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
임 팀장은 "경계선지능 아동은 다른 속도로 배우는 것뿐"이라며 "그 속도를 이해하는 어른이 많아질수록 학교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사회복지실에서 시작된 '나아가기'는 그 속도를 읽어내려는 시도다. 과제는 이 시도가 특정 학교의 경험에 머물지 않고 공교육 체계 안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26 경계선지능(느린학습자) 아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통합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경계선지능 아동 지원사업은 느린학습자의 사회적응력 향상과 생활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복권위원회가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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