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석태 (14) 23년 만에 닿은 고향 소식… 평생 ‘침묵의 기도’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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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가을, 영국 런던 구세군사관학교.
유학 생활 중 간절한 마음으로 인편을 통해 북한 고향 집에 소식을 띄웠던 나는 6개월 만에 답신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기도는 북한 정권의 멸망이나 저주가 아니다.
나의 육신은 고향에 갈 수 없게 되었지만, 기도로 쌓은 길은 언젠가 휴전선을 넘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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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만에 온 답신은 아버지 부고
“위험하니 연락하지 마시오” 경고도
북에 남은 그리운 가족 찾는 대신
그리움을 하루 세 번 기도로 바꿔

1973년 가을, 영국 런던 구세군사관학교. 유학 생활 중 간절한 마음으로 인편을 통해 북한 고향 집에 소식을 띄웠던 나는 6개월 만에 답신을 받았다. 제3국을 통한 간접적 소통이었지만 23년 만에 닿은 고향의 소식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 내용은 비보였다. “당신의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임종도 지키지 못한 불효자는 먼 이국땅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살아 있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그 안도감 뒤로 서늘한 현실이 밀려왔다. 편지 말미에 적힌 우체국 직원의 경고 때문이었다. “남조선에서 온 편지는 위험하니, 앞으로는 직접 연락하지 마시오.”
그 순간 깨달았다. 나의 그리움이 도리어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는 칼날이 될 수 있음을. 내가 그들을 찾으려 할수록, 내가 남한에서 유명해질수록, 그들은 ‘월남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쓰고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내와 딸, 동생들의 이름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꾹 눌러 삼켰다. 통일부나 이산가족찾기본부에서 연락이 와도 나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남들은 무심하다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만 여기서 편안하면 그만인가. 나 때문에 그들이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
지금 내 나이 100세. 강산이 열 번은 변했을 세월이다. 이제 북에 두고 온 가족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70년 넘는 세월은 생사의 경계마저 희미하게 만들었다. 이제 와서 그들을 찾는다는 건 욕심일지 모른다. 대신 나는 그리움을 기도로 바꿨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나는 북한을 위해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나의 기도는 북한 정권의 멸망이나 저주가 아니다.
“하나님, 기독교를 가장 핍박했던 사울이 변하여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저 북녘의 지도자들, 김일성 일가가 회개하게 하옵소서. 그들이 사울처럼 변화되어 오히려 북한 땅에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이게 하옵소서.”
이것이 내 평생의 기도 제목이다. 미움과 원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오직 회개와 용서만이 그 척박한 땅을 녹일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의 육신은 고향에 갈 수 없게 되었지만, 기도로 쌓은 길은 언젠가 휴전선을 넘으리라 확신한다.
영국 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구세군사관학교 교관으로 복귀했다. 북한에 대한 미련을 ‘침묵의 기도’로 승화시킨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사명뿐이었다. 6·25전쟁 때 절두산에서 살아남으며 드렸던 “평생을 주님께 바치겠다”는 서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더욱 일과 후배 양성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건조하지만 치열하게 사명을 감당하던 어느 날, 강의실 한구석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학생이 있었다. 임정선 사관 후보생. 서울대 음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그녀가 구세군 사관이 되겠다며 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정리=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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