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데스크 직원, 핸드폰 수리의 달인이 되다 [한우물보고서]

백재연 2026. 1. 3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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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수리 전문가’ 최수정 엔지니어 이야기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전자서비스 모바일삼성강남센터에서 최수정(34) 엔지니어가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고객을 맞이할 때마다 최씨의 자세는 이처럼 늘 상대를 향해 먼저 기울어진다. 백재연 기자


“서비스센터 만족도가 브랜드 전반에 대한 만족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기 쉽지 않은데,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삼성전자서비스 모바일삼성강남점 최수정(34) 엔지니어가 실제 고객에게 받았던 평가다. 그는 지난해 광주 광산센터에 이어 올해 서울 강남에서도 2년 연속 ‘CS(Customer Satisfaction·고객 만족) 달인’에 선정된 휴대전화 수리 전문가다. 2019년 제도 도입 후 7년간 전국 약 5300명 엔지니어 중 달인에 뽑힌 이는 93명(1.7%), 이 중 두 번 이상 이름을 올린 사람은 27명(0.5%)뿐이다.

최씨는 엔지니어가 아닌 ‘안내 데스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스물두 살이던 2014년, 전남 여수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인포데스크에서 고객을 맞고 자재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밝게 웃으며 맞이했던 고객이 만족스럽게 나갈 때가 제일 좋았다”는 최씨는 언젠가부터 고객을 엔지니어에게 안내하는 역할만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지방이다 보니 장년층 고객들이 많이 오셨어요. 안내데스크에 와서 ‘전화가 안 된다’고 하시는데 비행기 모드가 켜져 있으시더라고요. 간단한 설정만 바꿔도 문제가 해결되는 걸 보면서 고객을 끝까지 책임져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던 것 같아요.”​

2022년, 서른 살이 되던 해 그는 엔지니어 전환 교육에 지원했다. 고향인 여수에서 독립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마침 회사에서 엔지니어 직무 전환 기회가 열렸다. 그는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 내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그다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광주광역시 광산센터에서 새 출발을 했다.

최씨의 사원증에 달린 CS 관련 배지 12개. 손에 쥐자 제법 묵직한 무게가 전해졌다. 백재연 기자


지난 26일 모바일삼성강남점에서 만난 최씨의 목에 걸린 사원증은 묵직해 보였다. 사원증 줄에는 동그란 은색 배지 12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고객 만족도 최상위 1.3%를 차지한 엔지니어들에게만 수여되는 배지들이다.

인터뷰 도중 오후 2시가 되자 최씨는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라며 휴대전화로 어딘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전날 센터를 찾은 고객에게 보내는 문자라고 했다. 해당 고객은 오후 2시 전후가 되면 특정 지역에서 네트워크 연결이 원활하지 않다며 수리센터를 찾았고 전날 방문으로 휴대전화를 열어 하드웨어 점검까지 마친 상태였다. 오늘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객이 문제를 호소했던 시각에 맞춰 직접 문자를 보낸 것이다. 이렇듯 그의 하루는 고객을 기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엔지니어로 직무를 전환한 이후 최씨가 받아온 상장들. ‘1위’, ‘최우수’, ‘명예의 전당’ 등 수상 내역 대부분이 최상위 평가를 의미하고 있었다. 백재연 기자


문과 출신인 최씨는 대학에서 보건 분야를 전공했다. 엔지니어와는 전혀 관련 없는 길을 걸어왔기에 직무 전환 후에는 전류의 흐름 같은 기초 개념부터 배워야 했다. 납땜도 그때 처음 해봤다. 처음부터 휴대전화 메인보드를 건드릴 수는 없어 동판 위에 납땜을 했다. “얼마나 녹여야 적당한 크기가 나오는지, 어디까지가 쇼트(합선) 라인인지부터 익혔어요.”​

직무를 바꾼 첫해, 그는 곧바로 시험대에 올랐다. 엔지니어 발령 8개월 만에 사내 기술 경진대회 지역 대표로 나가게 된 것이다.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고객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그는 센터에 혼자 남아 휴대전화를 분해하고 일부러 고장 내고 다시 고치는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했다.​

“당시 광산센터 건물 보안 시스템이 오후 10시부터 작동했는데 제가 부탁드려서 오후 11시까지 1시간 더 연장해 주셨어요. 수리 기구를 들고 퇴근할 수는 없으니 밤 11시까지는 센터에 남아서 연습을 하고 그 이후에는 근처 24시간 독서실에 갔습니다. 새벽 1~2시까지 기구 전개도를 외우고, 고장 사례 요약본을 보고, 이해가 안 되는 건 메모하는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최씨의 자리에 놓인 2024·2025년 CS 달인 상패와 모범상. 엔지니어 수천명 중 극소수만 오를 수 있는 성과다. 백재연 기자


퇴근 후 ‘나머지 공부’를 하며 생긴 궁금증은 다음 날사내 기술 강사에게 묻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9개월간 농축된 삶을 보낸 끝에 최씨는 2022년 11월 사내 기술 경진대회 휴대폰 부문 지역별 예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듬해 열린 대회에서도 한 번 더 최우수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맡는 기기는 스마트폰과 워치, 무선이어폰 등이다. 단말기 하나당 분해·진단·수리·테스트를 끝내는데 평균 60분 정도가 걸린다. “전화가 안 된다”는 단순한 민원 뒤에도 실제로는 여러 경우의 수가 숨어 있다. “테스트 모드에 들어가 유심 인식과 신호 수신 상태를 먼저 확인해요. 고객이 사용하는 환경에서 비롯된 현상인지를 구분한 뒤 회로 교체가 필요한지, 다른 방식의 조치가 필요한지 등을 판단합니다.”

광주와 서울을 거치며 지금까지 그가 만난 고객은 4000명이 넘는다. 붐비는 날엔 하루 30명까지 응대한다. 강남점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에도 돌아가며 근무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최씨는 일부러 ‘설명 시간을 늘리는’ 선택을 한다. “정확한 수리도 중요하지만 왜 이 부품을 바꾸는지 이해 못하시면 고객 입장에서는 돈만 쓰고 간 느낌일 수 있잖아요.”

고장을 설명할 때는 교육용 자료와 유사 제품 사례 등을 활용해 고객의 이해를 돕는다. “안테나 모듈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면서 ‘이게 신호를 주고받는 부품인데, 충격이나 전류 문제로 손상되면 전화가 안 된다’고 말씀드려요. 그러면 수리 시간이나 비용 얘기도 훨씬 쉽게 받아들이세요.”​

이 과정은 통상 5분 안팎, 길면 10분까지 이어진다. “설명이 길어지면 뒤에 기다리시는 분들께 꼭 양해를 구합니다. ‘앞선 고객님 제품을 꼼꼼히 점검 중이라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려요. 차례가 오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만큼 더 꼼꼼히 보겠습니다’라고 꼭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최씨가 지키고 있는 상담 '육하원칙'의 내용. 백재연 기자


최씨는 자신만의 상담 원칙을 ‘육하원칙’이라고 부른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불편했는지 짧은 시간 안에 인터뷰하듯 묻는 방식이다. “처음엔 ‘갑자기 안 돼요’라고 말씀하시던 고객님들과도 언제부터,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안 됐는지 차근차근 대화하다 보면 ‘사우나에서 쓰고 난 뒤부터’ ‘특정 앱 쓸 때만’ 등 중요한 힌트가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고객 과실을 찾는 질문’이 아니라 ‘생활 패턴을 이해하는 질문’을 던지려 한다. 좋은 CS와 나쁜 CS를 나누는 기준도 여기서 나온다고 말한다. “좋은 CS는 고객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거고, 나쁜 CS는 엔지니어의 잣대로 먼저 판단해 버리는 거예요. ‘이 증상이면 이 부품’이라고 단정 짓기 전에 그 증상이 고객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꼭 듣고 시작하려고 해요.”​

갤럭시 Z 플립 6를 분해하고 있는 최수정 엔지니어. 백재연 기자


갤럭시 Z 플립 6 내부. 빨간색으로 표시된 작은 부품은 보통 '저항'으로 불리는데, 최씨는 엔지니어로 직무 전환한 뒤 이 같은 미세 부품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기구 전개도를 빠짐없이 외웠다고 한다. 백재연 기자


휴대전화 서비스 센터는 크고 작은 불편함이 모이는 곳이다. 특히 강남센터에는 연차나 반차를 내고 찾는 직장인들이 많다. ‘내돈내산’ 휴대전화가 고장 나 연차를 써야 하면 예민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고객일수록 그는 더 귀를 기울인다.

“그런 분들이 오히려 제품의 불편함을 가장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고객님 덕분에 저희가 개선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실제로 회사에 건의하기도 합니다.”

불편함을 느끼던 고객의 감정은 그의 응대에 따라 실시간으로 누그러진다. 처음엔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고객이 시간이 흐를수록 의자에 기대앉고, 그가 건넨 생수를 마시기도 한다.

“고객님이 마지막엔 ‘엔지니어한테 화낼 일은 아니었네요. 이렇게 신경 써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신뢰가 회사와 서비스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질 때 제 역할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씨는 지난달 센터 안에서 ‘CS 연구회’를 만들었다. 현재 최씨를 포함해 네 명이 활동 중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분명 최선을 다했는데 왜 고객 만족도 점수는 가끔 미묘하게 떨어질까’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최씨의 책상에 놓인 수리 기구들. 핀셋, 전동드릴, 솔, 헤라 등이 가득 담겨있다. 백재연 기자


최씨가 헤라를 이용해 갤럭시 버즈3 프로를 분해하고 있다. 백재연 기자


안내 멘트 한 문장만 바꿔도 고객이 받아들이는 인상은 달라진다. 연구회 멤버들은 서로 쓰는 멘트를 공유하며 “이 말이 더 부드럽게 들린다” “이 표현이 더 명확하다”는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CS 연구회 멤버인 김봉용(43) 엔지니어 파트장은 “연구회를 시작한 뒤 실제로 고객 만족도 점수가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후속 케어 부문에서 점수가 애매하게 낮게 나오는 문제를 겪고 있던 그는 연구회에 이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자 연구회 멤버들은 고객에게 보내는 문자 예시, 휴대전화를 인도할 때 미처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지 등의 구체적인 표현을 함께 짚어줬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서비스 모바일삼성강남센터 안내 화면에 최씨에게 배정된 고객 번호가 표시돼 있다. 백재연 기자


최씨가 직무를 바꾸던 2022년만 해도 휴대전화 엔지니어는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부터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냐”는 걱정을 먼저 꺼냈다.

“‘여성 엔지니어’라는 말 안에는 능력보다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섞여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보다 계속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할 수 있다는 약속보다는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태도를 입증하려고 했습니다.”

최씨는 내년에도 달인을 노리고 있을까. 그는 “안 되면 안 되는 것이지만, 마음만큼은 늘 달인을 기준으로 일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고객들한테는 물음표를 던져요. ‘어떤 점이 불편하셨어요?’ ‘설명이 이해되셨나요?’라고요. 저한테는 느낌표만 던지려고 해요.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느낌표요. 달인이라는 타이틀이 없더라도, 제가 하는 일의 기준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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