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왱구’님들에게

조효석,산업2부 2026. 1. 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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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석 산업2부 기자


안녕하세요. ‘취재대행소 왱’ 유튜브 채널 구독자, ‘왱구’님들. 2년 넘는 시간 동안 영상 콘티 속에서 수도 없이 이름을 불렀지만, 영상을 위해 쓰지 않은 글에서 이렇게 불러보기는 처음입니다. 그간 쓴 콘티를 전부 세어보니 100개가 훌쩍 넘더군요. 돌이켜보니 매번 영상 끝머리에 ‘좋댓구알’을 부탁하기만 했지 정작 영상을 봐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진 못했습니다. 담당 부서를 떠나며 이제야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여러분이 보신 영상에서 다룰 주제를 찾으려면 고려해야 할 게 많았습니다. 자칫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 주제를 선정했다간 언제 채널이 알고리즘의 파도에서 이탈할지 모르니까요. 얼마간의 클릭 수를 보장하는 아이템을 먼저 찾다 보면 다룰 수 있는 주제의 범위란 갈수록 줄어듭니다. 심지어 그렇게 찾아낸 아이템이라 해도 꼭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영상을 구상하는 일이란 그 두려움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획자가 봐도 참신하고, 사람들 역시 좋아하는 주제를 찾기가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할 만큼 창의적이고 반응까지 좋았던 아이템도 몇몇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그런 걸 생각해내기가 쉬울 리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오해를 사기도 하고, 영상 내용과 상관없는 이유로 댓글창이 쑥대밭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이유로 ‘싫어요’가 눌리고 구독자 수가 실시간으로 줄어들면 식은땀이 납니다. 기사를 쓸 때는 그만큼 신경 쓰이진 않았던 일입니다.

사실 유튜브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무한대의 콘텐츠를 너무나 가볍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려고 편성표를 뒤져 정해진 시간까지 두근대며 채널을 고정할 필요도 없고, 예매해 놓은 영화의 평론이나 소개글을 찾아 잡지를 뒤적일 필요도 없습니다. 휴대전화 화면에서 손가락을 몇 번 옆으로 휘젓다가 내키지 않을 땐 ‘구독취소’를 누르면 그만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견디지 않습니다. 약간이라도 불편하고 지루한 이야기라면 화면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설령 양질의 콘텐츠라는 걸, 혹은 입바른 소리란 걸 어렴풋이 느낄지라도 말입니다. 스스로가 고른, 또는 알고리즘이 골라준 것 이외의 선택지는 철저하게 배제됩니다. 결국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껏 외면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얼핏 무한대로 취사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불편한 모든 걸 피해 각자의 도피처에 숨는 것에 가깝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건 불편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이제 각자의 세상 바깥으로 철저히 쫓겨납니다. 예전이라면 TV 방송이나 비디오, 영화관 같은 플랫폼의 제약 때문에라도 조금 더 지켜봤겠지만 이젠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관점이나 취향, 정체성은 시야에 들어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각자의 세상은 타인의 그것과 단절됩니다. 물론 비슷한 사람들끼리야 더 강하게 뭉치고 커지겠지만 그 세상이 더 넓게 확장될 가능성은 없다시피 합니다. 자유가 곧 고립으로 이어지는 역설입니다.

갈수록 미디어는 세상에 필요하고 중요한 질문을, 적절한 방식으로 다루길 주저할지 모릅니다. 그 기준 자체가 흐릿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끝도 없이 범람하는 영상의 바다에서 선택을 받으려면 그런 주관이 그저 사치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영상 아닌 활자를 다루는 매체라 해서 그런 세상으로부터 영영 자유롭지만도 않을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저부터도 신문을 다루는 회사에서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으니까요. 손에 익은 신문 부서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이 글이 어쭙잖은 변명과 푸념으로 읽혔을 것 같아 송구합니다. 바라건대 그보단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고 있는가를 고민한 기록으로 읽혔으면 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좋아요’를 많이 받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더 필요한 질문을 할 테고, 흔치 않은 수고를 들여 그런 결과물을 찾아보는 이도 있을 테니까요. 아무쪼록 취재대행소 왱을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왱구님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조효석 산업2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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