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 넘어 일상이 된 말러… 올해도 1년 내내 연주된다

장지영 2026. 1. 2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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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콘서트홀에서는 1년 내내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들을 들을 수 있다. 지난 7일 울산시향이 부산콘서트홀에서 임헌정 지휘로 1번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10번(미완성)까지의 교향곡과 교향적 성악곡 '대지의 노래'가 연간 20차례 이상 연주된다(아래 표). 연간 프로그램을 아직 공개하지 않은 지역 오케스트라들도 있어서 올해 말러 교향곡 연주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정명훈 감독이 2010~2011년 서울시향에서 말러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이 말러의 교향곡에 친숙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이후 해외 유학 시절 '말러 인기'를 경험하고 학습한 젊은 지휘자들의 욕구와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력 향상이 맞물리면서 말러 교향곡 연주가 경쟁하듯 많아졌다. 예전엔 지휘자, 연주자, 오케스트라 등 각자의 역량을 시험하는 지표처럼 과시적으로 도전했지만 이제는 일상적인 단계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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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문화]
거대한 사운드에 카타르시스
주요 악단 필수적 레퍼토리로
전국서 연간 20회 이상 연주
구스타프 말러는 생전에 작곡가로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사후 50년이 지나면서 그의 교향곡들은 전 세계 오케스트라의 필수 레퍼토리가 됐다. ⓒ퍼블릭 도메인


올해 국내 콘서트홀에서는 1년 내내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들을 들을 수 있다. 지난 7일 울산시향이 부산콘서트홀에서 임헌정 지휘로 1번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10번(미완성)까지의 교향곡과 교향적 성악곡 ‘대지의 노래’가 연간 20차례 이상 연주된다(아래 표). 연간 프로그램을 아직 공개하지 않은 지역 오케스트라들도 있어서 올해 말러 교향곡 연주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필요하지만, 말러 교향곡은 이제 국내 클래식계에서 어렵고 특별한 레퍼토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레퍼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편성과 긴 연주시간이 특징

말러는 생전에 유럽과 미국에서 뛰어난 지휘자로 평가받았지만 작곡가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작곡가로서 그의 음악적 본령은 교향곡으로, 피아노곡이나 실내악·오페라 등은 남기지 않았다. 가곡을 남겼지만 이 역시 여느 작곡가의 가곡과 달리 교향악과 깊은 관계가 있다.

말러의 교향곡들은 앞선 작곡가들이 보여줬던 형식미와 음악 자체의 완결성을 벗어났다. 1시간을 훌쩍 넘을 정도로 긴 연주 시간, 많은 악기가 필요한 복잡한 구조, 2 3 4 8번과 ‘대지의 노래’에서 보여준 성악의 적극적 사용이 특징으로 꼽힌다. 여기에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잦은 죽음과 오스트리아제국 보헤미아 출신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말러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줬다. 인간의 숙명적인 고뇌와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은 그의 교향곡에도 짙게 배어 있다.

지금이야 클래식계에서 후기 낭만주의 대표 작곡가인 말러가 베토벤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지만 생전엔 평단과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말러의 교향곡 1번이 1889년 11월 발표됐을 때 비평가들은 “교향곡의 규칙과 질서를 파괴한, 통속적이고 끔찍하게 과장이 심한 작품”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후에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교향곡들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말러 부활’ 이끈 주역은 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

하지만 말러는 아내 알마에게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온다”며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나치 정권 시절 ‘퇴폐 음악’으로 찍혀 유럽에서 사라졌던 말러의 음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부활했다. 말러의 제자였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뉴욕 필하모닉에서 활동하며 스승의 음악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발터의 연주를 듣고 자란 미국의 스타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말러의 부활을 주도한 주역이다. 번스타인은 1960년 말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필의 페스티벌을 기획하는가 하면 1960년대와 1980년대 두 차례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 앨범을 내며 전 세계에 말러 붐을 일으켰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말러 열풍의 이유로 전문가들은 오디오 기기의 기술적 발전을 들기도 한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말러 음악의 풍성하고 거대한 사운드가 현대 오디오 기기를 통해서 비로소 근접하게 재현됐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대 관객들이 말러의 음악적 세계관에 깊이 공감하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덕분에 말러의 교향곡은 매년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에서 빠질 수 없는 연주 레퍼토리가 됐다.

한국선 부천필 전곡 연주가 전환점

임헌정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말러가 인기를 얻었을까. 지휘자 홍연택은 1970~80년대 국립교향악단(현 KBS교향악단)에서 국내 음악계에 낯설던 말러 교향곡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임헌정이 지휘하는 부천필이 예술의전당과 손잡고 말러 전곡 연주를 선보인 것은 한국의 열성적인 ‘말러리언’(말러 애호가)들을 콘서트홀로 모이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국내 오케스트라들에 말러 교향곡 도전 의지를 일깨워줬다. 이후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현 국립심포니) 등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잇따라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자타 공인 말러 교향곡 전문 지휘자인 정명훈이 2006~2015년 서울시향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에 말러 열풍을 일으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말러 탄생 150주년과 서거 100주년이 이어진 2010~2011년에는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말러 교향곡 연주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서울시향 외에 부산시향, 대구시향 등 여러 오케스트라가 말러 연주에 동참했다.

지휘자·악단의 역량 지표로 여겨져

이후 잠시 열기가 가라앉는 듯했던 말러 교향곡 연주는 롯데콘서트홀이 개관한 2016년 무렵부터 다시 활발해졌다. 당시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들은 물론이고 지역 오케스트라들도 앞다퉈 말러 교향곡에 도전장을 내기 시작했다. 부천필은 2015~2020년 지휘자 박영민과 함께 두 번째 말러 전곡 연주를 완성하기도 했다. 이런 말러 인기와 관련해 국내 클래식 팬들 사이에선 말러 교향곡에서 압도적인 감정의 고조를 한 번 느끼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뜻에서 ‘말러 뽕필’이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정명훈 감독이 2010~2011년 서울시향에서 말러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이 말러의 교향곡에 친숙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이후 해외 유학 시절 ‘말러 인기’를 경험하고 학습한 젊은 지휘자들의 욕구와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력 향상이 맞물리면서 말러 교향곡 연주가 경쟁하듯 많아졌다. 예전엔 지휘자, 연주자, 오케스트라 등 각자의 역량을 시험하는 지표처럼 과시적으로 도전했지만 이제는 일상적인 단계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정명훈·츠베덴·최수열 등 지휘


올해 말러 교향곡 연주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국내 양대 악단인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이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과 함께 2024년 1번 ‘거인’을 시작한 서울시향은 지난해 2번 ‘부활’과 7번에 이어 올해는 3번(3월)과 4번(11월)으로 ‘말러 사이클’을 이어간다. 판 츠베덴 감독은 임기 5년간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 및 녹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명훈 음악감독과 함께 지난해 2번을 선보였던 KBS교향악단은 올해 5번(3월)과 4번(10월), 전 음악감독인 요엘 레비와 함께 6번 ‘비극적’(5월)을 연주한다. 정명훈 감독의 경우 5번과 함께 말러의 가곡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중 6곡, 4번과 함께 ‘뤼케르크 가곡’ 중 5곡을 들려준다.

지역 오케스트라와 민간 오케스트라도 말러 사이클을 이어간다. 최수열이 이끄는 인천시향은 9번을 시작으로 올해 ‘대지의 노래’(4월), 8번 ‘천인’과 7번을 연주한다. 후기작부터 역순으로 연주하는 것이 독특하다. 최수열은 부천필에서 10번 중 ‘아다지오’(2월)를 연주하기도 한다. 또 2017년부터 말러 전곡 연주를 위해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말러리안 오케스트라’를 꾸린 진솔은 지난해까지 1 3 4 5 6 7 9 10번을 지휘했다. 올해는 8번 ‘천인’(4월)을 선보인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말러는 이제 관객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케스트라들이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레퍼토리”라면서 “관객들은 짧은 숏폼이 유행하는 요즘 말러가 주는 거대한 음향과 구조적 복잡함에서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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